어느 공안검사의 쓸쓸한 퇴장 - 세계일보 블로그
#1.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검사장급 승진 1순위에 올랐던 박만 성남지청장은 이번 인사에서도 제외돼 희비가 엇갈렸다. (경향신문, 2005년 4월5일)


#2. 승진 0순위로 거론되던 박만(朴滿?21회) 성남지청장이 지난해에 이어 이번에 또 다시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한 것은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동아일보, 2005년 4월5일)


#3. 재독사회학자 송두율씨 구속수사를 지휘했던 박만 성남지청장(사시 21회)은 지난 인사에 이어 연거푸 검사장급 승진에 탈락하자 항의 표시로 이날 사표를 제출했다. 검찰의 한 고위간부는 “김종빈 총장이 내부 평가가 좋은 박 지청장을 승진시키려 했으나 청와대 등의 거부반응이 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2005년 4월5일)



 ▲ 박만 검사.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 대검 공안기획관 등을 거쳐 수원지검 성남지청장으로 재직해온 그는 2005년 4월 단행된 검찰 인사에서 검사장 진급에 실패하자 사표를 던졌다.

    법무부가 4월4일 단행한 검사장급 이상 검찰 고위간부 인사 내용을 분석해놓은 5일자 조간신문의 기사들 가운데 일부입니다. <경향신문>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에 ‘박만’이란 이름 두 글자와 함께 그가 검사장급 진입에 실패했다는 소식이 실렸군요. 특히 <중앙>은 그가 낸 사표를 ‘항의의 표시’로 단정한 다음 ‘검찰 고위간부’의 입을 빌어 그의 ‘탈락’을 둘러싼 정치적 배경까지 소개했습니다. 도대체 승진 ‘1순위’, 아니 ‘0순위’라던 검사가 왜 검사장 반열에 오르지 못하고 좌절했을까요? 검사장 승진이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란 것을 잘 알면서 왜 언론은 특정 검사의 진급 실패에 이토록 호들갑을 떨까요?


    박만 검사. 올해 54세이니 수사 일선에서 뛸 나이는 지난 노(老)검찰관입니다. 인천 제물포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거쳐 1979년 제21회 사법시험에 합격, 검사의 길에 들어섰죠.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5년 후에야 사시에 붙어 또래에 비해 법조계 입문이 늦은 편입니다. 대부분의 검사들이 사시를 ‘패스’한 다음 법무관(장교)으로 군 복무를 마친 것과 달리 그는 육군 단기사병 출신입니다. 젊은 시절 나름대로 힘든 시간을 체험했다는 이야기죠. 하지만 검사가 된 다음부턴 승승장구해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과 1차장, 대검 공안기획관?수사기획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최근까진 수원지검 성남지청장이었습니다.



 ▲ 백태웅씨(좌)와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사노맹 사건’에 연루된 백씨는 박만 검사로부터 사형을 구형받았다. 정 회장은 국민당을 만들고 정치에 뛰어든 1992년 “공산당을 합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가 박만 검사의 내사를 받았다.

 

    1981년부터 시작, 20년을 훌쩍 넘긴 박만 검사의 검찰 경력을 들여다보면 유난히 ‘공안’이란 두 글자와 자주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는 검찰의 내로라하는 ‘공안통’입니다. 최근 이철우 前 열린우리당 의원의 ‘간첩’ 여부 논란 때문에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은 그가 1991~93년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 검사 시절 수사한 대표적 사건입니다. 당시 갓 마흔을 넘긴 한창 ‘물오른’ 공안검사였던 그는 중부지역당 총책 황인오씨가 북한 공작원과 접촉했다는 강화도 일대에서 현장검증까지 몸소 지휘했습니다.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낙중?손병선씨를 직접 구속기소했고 법정에선 손수 사형을 구형했습니다.


    1980년대의 대표적 반정부단체인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도 박만 검사의 손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이 단체의 주모자는 그의 서울대 법대 후배인 백태웅 前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죠. 박 검사는 1992년 6월 백씨 등 사노맹 관계자 21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한데 이어 그해 7월엔 법정에서 몸소 백씨에게 사형을 구형했습니다. (백씨는 이후 사면돼 지금은 미국 뉴욕주 변호사로 활동 중이죠.) 심지어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조차 한때 그의 수사 대상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1992년 국민당을 만들고 정치에 뛰어든 정 회장이 한 토론회에서 던진 “공산당을 합법화해야 한다”는 발언 때문이었습니다.    



 ▲ 김기춘 前 검찰총장(좌)과 김태정 前 검찰총장. 이들 외에 신승남 前 검찰총장도 퇴임 후 박만 검사의 조사를 받았다. 박 검사는 검찰의 전직 총수 3명을 자기 손으로 조사하고 기소한 기록을 갖고 있다.

 

    하지만 박만 검사가 검찰 안팎의 주목을 받은 계기는 따로 있습니다. 검찰 고위간부 출신 인사들의 재직시절 비리를 파헤치는 ‘저승사자’ 역할을 유난히 많이 맡아서입니다. 그는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 검사이던 1992년 이른바 ‘초원 복국집 사건’을 수사하면서 김기춘 前 검찰총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김 前총장이 부산지역 기관장 모임에 참석, 김영삼 당시 대통령 후보의 지지를 호소했다는 사건이죠. 1999년 대검 감찰1과장 시절엔 ‘옷로비 사건’ 및 ‘사직동팀 보고서 유출 사건’ 주임검사로서 김태정 前 검찰총장, 박주선 前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직접 구속했습니다. 검찰의 전직 총수 2명과 ‘악연’을 맺은 셈입니다. 


    검사로서 선배 검사를 수사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을 겁니다. 검찰 내부에선 ‘배은망덕한 놈’으로 찍히고, 검찰 바깥에선 ‘제 식구 감싸기’란 비난을 듣기 십상이니까요. 유독 박만 검사에게 이런 일이 자주 맡겨진 것은 그저 그의 운명 탓일까요? 그는 서울중앙지검의 ‘이용호 게이트’ 수사가 ‘총체적 부실’ 논란에 휘말린 2001년 9월 검찰사상 처음 꾸려진 특별감찰본부의 수석검사를 맡아 수사 책임자였던 임휘윤 前 부산고검장, 임양운 前 광주고검 차장을 직접 조사한 뒤 이들에게서 사표를 받아냈습니다. 감찰이 끝난 2002년엔 대검 수사기획관으로 옮겨 신승남 前 검찰총장과 대통령의 아들 김홍업씨를 기소하는 ‘악역’도 떠맡았습니다.



 ▲ 2003년 10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수감되는 송두율 교수(좌). 송 교수의 구속수사를 지휘한 사람이 박만 검사다. 하지만 송 교수는 이듬해 항소심에서 혐의 대부분에 무죄를 선고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났다(우).

    박만 검사에게 ‘파국’이 찾아든 것은 2003년 서울중앙지검 1차장에 임명돼 재독사회학자 송두율 교수 수사를 지휘하면서부터입니다. 당시 여론은 송 교수에 우호적이었습니다. 고영구 원장이 이끄는 국가정보원도 형사처벌에 소극적이었고, 노무현 대통령 역시 국회 연설을 통해 공개적으로 선처를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다물고 송 교수를 구속한 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징역 15년이 구형된 송 교수에게 1심 재판부가 징역 7년을 선고하자 “형량이 낮다”며 투덜대기도 했죠.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송 교수의 혐의사실 대부분을 무죄로 판단, 집행유예를 선고했고 이것이 그에게 ‘치명타’로 작용했습니다.


    지난 3월 대법원이 경상대학교 장상환 교수 등의 저서 <한국사회의 이해>에 대해 11년 만에 무죄 판결을 내린 것도 박만 검사에겐 ‘악재’(惡材)였습니다. 1994년 여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한국사회의…> 사건은 당시 창원지검 부장검사로 근무하던 그의 작품입니다. 대학 교양교재에 불과한 책을 섣불리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로 단정, 공동저자인 교수 2명을 상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기각 당했고 기소 후에도 1?2심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됐죠. 이 사건에서 내려진 대법원 판례는 최근 검찰이 조정래씨 소설 <태백산맥>을 둘러싼 국보법 위반 고발사건을 ‘무혐의’ 처분으로 끝내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 대법원이 <한국사회의 이해>에 무죄 판결을 내린 직후인 2005년 3월26일 경상대학교에서 <한국사회의 이해와 국가보안법> 출판 기념회가 열렸다. 박만 검사는 창원지검 재직 시절인 1994년 이 책의 저자인 경상대 교수 2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일부 언론의 분석대로 청와대가 박만 검사의 검사장 승진을 원치 않은 것은 사실인 듯 합니다. 아마 신임 김종빈 검찰총장은 그의 발탁을 강력히 주장했을 겁니다. 김 총장과 그는 2002년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된 김홍업씨를 구속수사할 당시 대검 중수부장 및 중수부 수사기획관으로 호흡을 맞춘 사이니까요. 하지만 대통령의 거듭된 선처 요구에도 불구, 송두율 교수를 구속한 그의 ‘배짱’이 참여정부엔 영 부담스러웠나 봅니다. 설상가상으로 그가 기소한 <한국사회의 이해> 사건마저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무죄 선고시 해당 검사에게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은 김승규 법무부장관이 누차 강조한 인사 원칙입니다.


    지난해 6월 1차로 검사장 진급에 실패, 성남지청장으로 전보된 박만 검사가 서울중앙지검 기자실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성남지청이면 서울에서 가깝고 좋잖아요?”(기자들) “좋긴 뭐가 좋아. 사람이 때가 되면 걸맞은 자리에 앉아야지.”(박 검사) ‘걸맞은 자리’란 물론 검사장이었겠죠. 그런데 올해도 그 검사장이 되지 못했으니 이젠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듯 합니다. 그의 퇴장은 어쩌면 참여정부와 공안검사의 ‘숙명적 불화’를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고 ‘학식은 사회의 등불, 양심은 민족의 소금’이란 좌우명을 가진 박만 검사. 그가 앞으로 우리 사회의 소금 같은 존재로 남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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