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기 검사장 1명, 고검장 승진할 듯 - 세계일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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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채진 전 검찰총장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난 뒤 누가 후임 총장이 되느냐에 검찰 안팎의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임 전 총장은 2년 임기 중 1년 6개월 이상을 채운 상태라 그의 사퇴로 검찰 조직이 ‘확 젊어지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은 파격 인사로 ‘물갈이’를 하기보다는 서열에 충실한 인사로 조직 안정을 꾀할 때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임 전 총장의 사법시험 1년 후배인 사법연수원 10기 출신으로 현재 전국 검사들 중 가장 서열이 높은 권재진 서울고검장 쪽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이런 분위기 때문입니다.

    권재진(사진) 서울고검장이 검찰총장에 임명될 경우 그의 연수원 동기인 명동성 법무연수원장의 ‘거취’가 관심을 끌 수밖에 없습니다. 통상 검찰 고위간부들은 동기나 후배 중에서 총장이 나오면 즉시 사퇴 의사를 밝힙니다. 그런데 법무연수원은 검찰이 아닌 법무부 소속 기관이라 총장의 직접 지휘를 받지 않습니다. 자연히 총장 동기가 법무연수원장을 계속 맡아도 별로 껄끄러울 게 없습니다. 2007년 11월 임채진 전 총장이 취임한 뒤에도 연수원 동기인 안영욱 당시 법무연수원장은 그대로 재직하다가 이듬해 검찰 정기인사 때에야 물러났습니다. 아마 이번에 권 고검장이 총장이 돼도 명 원장은 곧장 사표를 내지 않고 내년 초 검사장 정기인사까지 자리를 지킬 공산이 큽니다.


    그렇다면 권재진 서울고검장의 총장 취임으로 생겨나는 고검장 승진 수요는 딱 한 자리에 그치는 셈입니다. 서울고검은 전국 5대 고검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소속 검사도 많아 고검장 자리를 비워두기 어려운 곳입니다. 법무부는 대전, 광주, 대구, 부산 등 4명의 고검장 가운데 한 명을 서울고검장으로 이동시키고 대신 검사장들 중 한 명을 고검장으로 승진시켜 빈 곳을 채울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검사장급 보직인 광주고검 차장이 공석이라 검사장 승진 수요도 있지만 이는 내년 1∼2월 정기 인사에서나 반영될 전망입니다.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동기인 사법연수원 7기(사법시험 17회)부터 각 기수별로 4명씩 고검장을 달아주고 있습니다. 고검장은 검찰 전체에 9개밖에 없는 영광스러운 자리죠. ‘뒷방 영감’이란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권한이나 업무량은 얼마 안 되지만 검찰의 ‘원로’로 예우를 받는 자리입니다. 일단 고검장이 되면 대망의 검찰총장을 노려볼 수 있습니다. 2007년까진 고검장 승진을 위한 검사장들 간 경쟁률이 2 대 1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해 검사장 자리가 8개나 늘어나면서 요즘은 고검장 달기가 정말 어려워졌습니다. 한 검사장은 “검사장에서 고검장 되는 경쟁률이 3 대 1 정도 되는 것 같다”고 푸념하더군요.



    사법연수원 12기의 경우 이준보 대구고검장, 이귀남 법무부 차관,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 등 3명만 고검장을 단 상태입니다. 앞선 기수와의 형평성을 고려하면 한 명이 더 고검장으로 승진해서 4명을 채워야 합니다. 현재 연수원 12기 출신 검사장은 김종인(57) 서울동부지검장과 김수민(56) 인천지검장 2명뿐입니다. 둘 가운데 한 명이 영예의 고검장 승진 ‘티켓’을 쥐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김종인 검사장은 특별수사와 강력수사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고 김수민 검사장은 검찰의 내로라하는 ‘공안통’이라 선뜻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는 평가입니다.


    물론 고검장 한 자리의 승진 수요가 생기고 거기에 사법연수원 12기 출신 검사장들 중 한 명이 갈 것이란 관측은 권재진 서울고검장이 검찰총장에 임명되는 상황을 전제로 합니다. 이게 어긋나면 모든 예상이 빗나갈 수밖에 없죠. 검찰은 별로 반기지 않겠지만 외부 인사가 총장에 전격 발탁되리란 전망도 나돕니다. 2002년 동생이 비리에 연루된 신승남 당시 검찰총장이 자진사퇴한 뒤 ‘쇄신’ 차원에서 이명재 변호사가 총장으로 기용됐죠. 물론 이 변호사는 검찰에서 서울고검장까지 지낸 인물인 만큼 그를 순수한 의미의 ‘외부 인사’로 보긴 어렵습니다. 그래도 현직 고검장 중 한 명이 검찰총장으로 승진하는 게 당연시돼온 검찰 조직에 이는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이명재 변호사는 젊은 시절 ‘당대의 검사’로 불렸고 다들 ‘차기 검찰총장감’이라고 점찍은 인물입니다. 이 때문에 서울고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난 그가 ‘외부 인사’ 발탁 형식으로 총장에 임명됐을 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다릅니다. 검찰 고위간부 출신 변호사 가운데 선뜻 검찰 총수 자리를 맡길 만한 이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임채진 전 총장(사법연수원 9기)보다는 아래고 현직 검사 가운데 ‘최고참’인 권재진 서울고검장이나 명동성 법무연수원장(10기)보다는 위에 있어야 하는데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기란 불가능합니다. 결국 이번 총장은 외부 인사가 아닌 현직 검사들 중에서 나오는 게 타당할 것 같습니다.
 
◇ 2005년 10월12일 당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김종빈 검찰총장에게 하달한 수사지휘 문서. “동국대 강정구 교수를 불구속수사하라”는 지휘를 담고 있다. 1948년 정부수립 이후 법무장관이 구체적 사건과 관련해 검찰총장에게 문서로 지휘한 건 이게 처음이다.

    2005년 10월12일 오후 7시. 서울 서초동 일대 식당에 흩어져 저녁을 먹고 천천히 서울중앙지검 쪽으로 걷던 법조 출입기자들 휴대전화가 일제히 새 문자메시지 도착을 알렸다. 법무부 정책홍보관리관실(현 대변인실)이 보낸 메시지였다. “동국대 강정구 교수 불구속 수사지휘 관련 보도자료 발송.” 문자를 확인한 기자들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은 검찰청법 8조에 규정돼 있으나 1948년 정부수립 이후 단 한 번도 발동된 전례가 없어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으로 여겨져왔다. 헌정사상 초유의 수사지휘권 발동은 신문으로 치면 1면 톱 스트레이트에 3면 해설박스를 써야 할 중대 사안이 아닐 수 없었다. 당장 기자들 발걸음이 빨라졌다. 몇몇은 벌써부터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며 취재에 들어갔다.


    동국대 강정구 교수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지 말지를 놓고 당시 천정배 법무부 장관과 김종빈 검찰총장은 멀써 며칠 전부터 옥신각신 다퉈왔다. 전남 목포 출신의 천 장관과 여수 출신의 김 총장은 고향만 가까울 뿐 성향은 정반대였다. 강 교수 사태가 불거지기 전부터 둘 사이엔 심각한 불협화음이 있었다. 그해 8월 인천지검의 대상그룹 비자금 사건 수사를 놓고 ‘부실수사’ 논란이 일자 천 장관은 김 총장을 겨냥해 “수사에 일부 미흡한 점이 있었다”면서 “앞으로 재벌 등 거대 권력을 상대하는 주요 사건 수사에선 장관이 직접 지휘권을 행사하겠다”고 말했다. 이튿날 김 총장은 “지휘가 내려오더라도 비합리적인 부분까지 승복할 이유가 없다”며 천 장관에 정면으로 맞섰다. 강 교수 구속을 둘러싼 견해차 이전에 두 사람 관계는 이미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었다.


    법무장관을 보좌하며 검찰을 ‘컨트롤’하는 보직이 바로 검찰국장이다. 법무부·검찰의 4대 요직, 이른바 ‘빅4’의 하나로 통하는 막강한 자리다. 천정배 장관이 김종빈 총장에게 지휘권을 행사해 법무부·검찰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을 때의 법무부 검찰국장이 바로 임채진 전 검찰총장이다. 김 총장에게 하달된 수사지휘 문서는 공안 분야를 담당하는 검찰3과(현 공공형사과)에서 기안돼 정인창 검찰3과장(현 서울고검 검사), 임채진 검찰국장을 거쳐 김희옥 차관(현 헌법재판소 재판관), 천 장관의 결재를 차례로 받았다. 수사지휘서를 받아들고 이틀간 고민한 김 총장은 결국 10월14일 법무부에 사직서를 보낸다. 법무부·검찰을 서로 연결하는 업무 특성상 임 국장이 이를 받아 천 장관에게 전달했다. 임 국장은 본의 아니게 ‘친정’인 검찰의 수장을 사퇴시키는 과정에 깊이 관여한 셈이 되고 말았다.


2005년 10월 지휘권 파동의 주역들. 왼쪽부터 김종빈 검찰총장, 임채진 법무부 검찰국장, 권재진 대검찰청 공안부장. 앞의 두 사람은 이제 전직 검찰총장이 됐고, 권 부장은 현재 서울고검장으로 차기 검찰총장이 유력시된다.

    검찰국장 시절 그렇게 ‘수사지휘권’과 악연을 맺은 임채진 전 총장이 퇴임 직전 수사지휘권을 언급해 파장을 일으켰다. 2009년 6월5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도의적 책임을 지고 검찰을 떠나기 직전 가진 고별 기자간담회에서다. “법무부와 검찰은 항상 긴장관계죠. 어떤 바보 같은 사람이 총장으로 와도 발톱을 세웁니다, ‘검찰 함부로 건들지 말라’고. 수사지휘권 발동 같은 이야기가 가급적 안 나왔으면 좋겠네요. (지휘권 발동 사례가) 강정구 교수 1건밖에 없다는 건 천만의 말씀입니다. 늘상은 아니지만 문서로 내려오는 게 있죠. 조선·중앙·동아일보 광고주 협박사건도 그랬고….”


    이 발언이 보도된 뒤 법무부가 현 정권 들어 수시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검찰 수사에 깊숙이 개입해온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투신자살로 몰아간 ‘박연차 게이트’ 수사 역시 법무부가 기획해 검찰에 지시한 정권 차원의 작품이라는 식으로 논란이 일파만파 확대됐다. 임 전 총장은 조은석 대검찰청 대변인을 통해 황급히 진화에 나섰지만 한번 한 말은 주워담을 수 없었다. 임 전 총장은 일부 언론으로부터 “임기도 못 채우고 불명예스럽게 물러나는 주제에 부적절한 발언으로 분란만 일으켰다”는 핀잔을 들었다.


    재미있는 건 임채진 전 총장의 후임자로 유력시되는 권재진 서울고검장 역시 김종빈 총장의 사퇴로 이어진 2005년 지휘권 파동에 깊이 관련돼 있다는 점이다. 그 시절 김 총장을 바로 곁에서 보좌하며 “강정구 교수를 구속해야 한다”고 건의한 대검찰청 공안부장이 바로 오늘날의 권 고검장이다. 이번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임 전 총장과 동시에 이인규 대검 중앙수사부장의 ‘책임론’이 불거졌듯 당시에도 “김 총장 사퇴는 참모인 대검 공안부장이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기 때문”이란 비난 여론이 검찰 안팎에서 일었다. 조만간 권 고검장이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부상하면 야당 등에서 이런 ‘과거사’를 꺼내들어 그를 공격할 가능성이 높다.


    권재진 고검장이 차기 총장에 낙점될 경우 “수사지휘권 발동 같은 이야기가 가급적 안 나왔으면 좋겠다”는 임채진 전 총장의 바람은 자연스럽게 실현될지도 모르겠다.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고를 졸업한 ‘TK 성골’ 권 고검장은 이미 오래 전에 ‘차기 총장에 내정됐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질 만큼 이명박정부 검찰의 ‘실세’다. 누가 법무장관으로 와도 ‘총장>장관’의 역학구도가 만들어질 개연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 임채진 전 검찰총장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도의적 책임을 지고 2009년 6월5일 퇴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