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여기도 '직무대행' 저기도 '직무대행' - 세계일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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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7월14일 퇴임식을 갖고 검찰을 떠난 문성우 대검찰청 차장, 신상규 광주고검장,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왼쪽부터). 선배를 제치고 차기 검찰총장에 발탁돼 검찰 간부 용퇴 ‘릴레이’의 원인을 제공한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맨 오른쪽)도 이날 밤 사의를 밝혔다.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의 낙마로 검찰이 7월15일부터 사상 유례 없는 직무대행 체제에 들어갔습니다. 대검찰청과 각 고등검찰청의 기관장이 모두 공석인 채 차장이나 선임자가 조직을 이끄는 파행적 운영이 이뤄지고 있죠.


    법무부·검찰 소속 기관 중 수장 자리가 빈 곳은 대검, 법무연수원, 서울·대전·대구·부산·광주고검, 서울중앙·동부지검, 인천지검 10곳입니다. 이들은 새 검찰총장 임명과 검사장급 이상 간부 인사를 통해 기관장이 정해질 때까지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됩니다.


    대검의 경우 6월 초 임채진 전 검찰총장 사퇴 이후 한달 넘게 직무대행을 맡아온 문성우 전 차장마저 물러나면서 한명관 기획조정부장이 직무대행을 넘겨받았습니다. 대검 직제상 총장, 차장 다음은 기조부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부장은 사법연수원 15기인 반면 노환균 공안부장, 김진태 형사부장 등 다른 몇몇 참모는 연수원 14기입니다. 한 부장이 선배들을 이끄는 이상한 모양새가 됐습니다.


    더욱이 지방 검사장 중에는 한 부장보다 두 기수 선배인 연수원 13기 출신이 많습니다. 차동민 수원지검장, 박한철 대구지검장, 박용석 부산지검장, 박영렬 광주지검장 등이 모두 13기죠. 이 때문에 한 부장 직무대행 체제 아래에서 ‘과연 검찰에 영(令)이 제대로 설까’라는 의문을 표시하는 이가 많습니다.


    광주고검 사정은 더욱 딱합니다.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민유태 전주지검장이 법무연수원으로 좌천된 뒤 공석이 된 전주지검장 자리를 채우기 위해 법무부는 광주고검 차장이던 이재원 검사장을 빼내 전주지검으로 보냈습니다. 이렇게 차장 자리가 공석인 상태에서 신상규 전 고검장마저 사퇴하고 말았습니다. 광주, 전남, 전북, 제주 4개 지역 검찰을 지휘하고 감독해야 할 고검 지휘부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셈이죠.


    천 전 후보자가 사퇴 의사를 밝힌 뒤 서울중앙지검은 정병두 1차장이 직무대행을 맡았습니다. ‘재계 저승사자’ 이인규 전 검사장이 물러난 대검 중앙수사부는 홍만표 수사기획관이 임시로 이끌고 있죠. ‘사정의 중추’인 서울중앙지검과 대검 중수부가 나란히 조직 수장을 잃었으니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대형사건 수사는 어려워 보입니다.


    검찰 내부에는 “세대교체라는 명분 아래 무리하게 단행한 발탁 인사가 파국을 불렀다”는 견해가 많습니다. 너무 젊은 천 전 후보자를 총장에 기용하려 한 탓에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줄줄이 옷을 벗었습니다. 그런데 총장 후보자가 낙마해버리니까 이젠 그 공백을 메울 사람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겁니다.


    일각에선 총장 후보자 지명 직후 연수원 선배와 동기들이 우르르 한꺼번에 퇴직하는 검찰 관행에 재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예전과 달리 인사청문회 등 변수가 많아진 만큼 일부는 새 총장이 정식으로 취임할 때까지 잔류하며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검사들이 이렇게 하긴 앞으로도 어려울 겁니다. 새 총장이 정해졌는데도 안 나가는 선배나 동기가 있다면 주변으로부터 ‘행여 후보자가 낙마하면 자기가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음흉한 속셈을 가진 사람’이란 오해를 받기 십상일테니까요.

 

    “직원과 지역 주민들의 우려와 불안감을 떨쳐버리고 수원지검의 위상을 바로 세울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성원과 응원에 힘입어 새로운 도약과 큰 성취를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떠납니다.”

    1월16일 수원지검에서 열린 이임식에 참석한 천성관(사진) 검사장의 이임사 일부입니다. 그는 최근 검사장급 이상 인사에서 고검장으로 승진해 ‘검사장의 꽃’ 서울중앙지검장 부임을 앞두고 있었죠. ‘지역 주민들의 불안감을 떨치고 수원지검 위상을 바로 세웠다’는 대목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집니다.


    2000년대 들어 검찰 안팎에서 수원지검은 ‘검사장의 무덤’으로 불렸습니다. 앞서 수원지검장을 지낸 김규섭(22대·2003년 퇴임), 김재기(24대·2005년 〃), 이기배(25대·2006년 〃), 문영호(26대·2007년 〃), 이동기(27대·2008년 〃)씨가 모두 수원지검장을 끝으로 옷을 벗었기 때문입니다. 23대 윤종남(2004년 〃)씨의 경우 수원지검장을 마치고 서울남부지검장으로 이동했으나 결국 고검장 승진에 실패해 검찰을 떠났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천성관 수원지검장의 고검장 승진, 더욱이 서울중앙지검장 임명을 점친 이는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법무부가 내놓은 인사 관련 보도자료를 펼쳐든 기자들이 의아해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게다가 후임 수원지검장은 차동민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정해졌습니다. 검찰의 인사·예산권을 쥔 검찰국장을 지내면 고검장 승진은 따논 당상입니다. 차기 서울중앙지검장도 넘볼 수 있습니다. 이번 인사를 놓고 수원지검장 자리가 일약 ‘서울행 고속철 정차역’으로 떠올랐다는 분석이 나오는데, 아무튼 수원지검장이 ‘검사장 무덤’에서 ‘실세’로 바뀐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정병두 수원지검 1차장도 이번에 사법시험 26회 출신 중 처음 검사장으로 승진했습니다. 서울중앙지검 1차장에 임명된 그는 수원지검에 이어 천성관 지검장을 계속 보필해야 할 처지입니다. 수원지검 수뇌부가 고스란히 서울중앙지검으로 옮겨가는 셈이니 수원지검 입장에선 ‘겹경사’를 맞은 셈입니다. 여기에 김경수 수원지검 2차장도 곧 있을 검찰 중간간부 인사에서 ‘중용’이 점쳐집니다. “경기 남부 700만 주민을 관할하는 수원지검이 인사 때마다 소외됐다는 피해의식이 있었는데 이번에 깨끗이 불식시켰습니다. 우리 직원들은 물론이고 지역 내 다른 관공서와 주민들도 아주 기뻐하고 있습니다.” 기자와 통화를 나눈 수원지검 간부의 목소리는 무척 밝았습니다.


    그런데 천성관 지검장과 정병두 차장이 서울중앙지검에 부임하자마자 큰 사건이 터졌습니다. 1월20일 오전 서울 용산의 재개발지역에서 경찰이 철거민들의 건물 점거농성을 진압하던 도중 화재로 6명이 숨지는 참극이 빚어진 겁니다. 검찰 수뇌부는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이 사건 수사본부를 원래 용산을 관할하는 서울서부지검 대신 서울중앙지검에 꾸렸습니다. 검사 7명을 지휘하는 수사본부장엔 정 차장이 임명됐죠. 마침 천 지검장은 수원·부산지검 공안부장, 대검 공안1과장, 서울중앙지검 공안 1·2부장, 대검 공안기획관 등 검찰의 공안 분야 주요 보직을 모두 거쳤습니다. 검찰의 내로라하는 ‘공안통’인 천 지검장이 우리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안긴 초대형 공안사건을 맡아 어떻게 처리할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