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 불로초, 우리 돈에 있어요 - 세계일보 블로그
 

 


 우리 돈 5000원권과 1000원권을 자세히 살펴보면 불로초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인 1983년에 처음 지폐에 등장했어요. 실제 있지도 않은 전설 속의 불로초가 왜 우리 돈에 실렸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그 내막은 이렇답니다. 당시 한국은행은 우리 지폐의 디자인에 대한 전면 개편작업을 단행했어요. 새 지폐 디자인의 주제는 조선시대 문신들이 가슴에 차고 다니는 ‘흉배’로 정해졌습니다. 화폐 인물의 주인공인 율곡 이이와 퇴계 이황이 문신이기 때문에 모두 흉배를 차고 다녔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 지요.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조선시대 문신들의 흉배에는 장수를 축원한다는 뜻에서 십장생(산,물,해,불로초,사슴,구름,학,대나무,거북,소나무)의 수를 새겼다고 해요. 물론 불로초도 그중의 하나죠. 그런 연유에서 한국은행은 5000원짜리와 1000원짜리 돈에 구름, 산, 사슴 등의 십장생을 그려넣으면서 불로초 그림도 함께 실게 되었어요. 

 이런 영생의 소망은 달러화를 비롯한 외국 화폐에도 종종 발견되고 있어요. 달러 뒷면에는 13층의 피라미드와 신성한 눈이 그려져 있답니다. 일설에 의하면 피라미드는 물질계와 천계를 이어주는 건축물이며, 13은 초월을 상징하는 숫자라고 합니다. 또 빛을 뿜어내는 신비스러운 눈은 전지전능한 신의 눈을 뜻한다고 해요.


 독수리의 왼쪽 발톱이 잡고 있는 13개의 입이 달린 월계수 줄기는 고대 유대교의 신비주의를 상징하고 13개의 화살은 지구가 13년간 겪게 될 변화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1935년 신비주의자였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과 헨리 월레스 농무장관의 주도로 이런 문양이 지폐에 실렸답니다. 21세기 과학의 시대에도 다양한 기복신앙의 요소들이 지폐에 담겨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지 않나요?



 


                                          
 
 제주도 서귀포시가
 진시황의 불로초 전
 설을 재현하기 위해
 개최하는 축제 행사
 의 모습
   




 영생불사는 아주 먼 옛날부터 인간들의 간절한 소망이자 욕망이었어요. 영원히 살기를 갈망했던 중국의 진시황은 불로장생의 비약을 찾아 천하를 헤맸죠. 기원전 228년, 황제는 서복에게 동방의 나라로 가서 불로초를 구해오라고 명령했어요. 
 
 서복은 선남선녀 3000쌍을 뽑아 비단옷을 입혀 함께 길을 떠났어요.  동방의 나라에 도착한 서복은 지리산과 한라산 등지를 돌아다녔어요. 서복이 거쳐간 고장에는 그의 여정에 얽힌 전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답니다. 하지만 황제가 그토록 바라던 신비의 약초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어요. 


 경남 남해 금산에는 ‘서시(서복의 별칭)가 일어나 일출을 보고  예를 올렸다’는 글씨가 새겨진 마애석각이 있죠. 제주도 정방폭포의 암벽에도 ‘서복이 이곳을 지나가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어요. 서귀포란 지명도 따지고 보면 서복과 깊은 연관이 있지요.  서귀포의 뜻이 ‘서씨 성을 가진 사람이 귀향한 항구’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서씨의 전설을 가진 서귀포시는 중국 용구시와 공동으로 서복 일행의 불로초 이야기를 재현하는 축제행사를 매년 10월 열고 있어요.


 이런 장생불사의 소망은 지금 우리 지폐에도 생생하게 담겨 있어요. 우리 돈 5000원권과 1000원권에 불로초 그림이 그려져 있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닌가요?  왜 이런 그림이 실렸을까요? 지폐를 꺼내 어느 것이 불로초인지 직접 살펴 보세요. 해답은 다음번에 글과 그림을 함께 올리면서 알려드릴 생각입니다.

 
담배 잎
담배 꽃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해버린 담배에게도 전성기가 있었습니다. 옛날 미국에서 담배는 단순한 기호식품이기 보다는 돈 그 자체였어요. 1642년 버지니아 의회는 담배를 법정 통화로 지정했어요. 모국인 영국이 금화 반출을 금지해 통화부족이 발생하자 식민지 정부가 특산품인 담배를 공식 화폐로 전격 ‘발탁’한 것이었죠. 담배만이 유일한 화폐였고 금화로 대금을 지불하는 행위는 되레 위법으로 간주되었어요.

 그 당시 젊은 여자들이 버지니아의 식민지 정착자들의 배우자로 많이 수입되었습니다. 처음에 담배 100파운드 가격이 매겨졌던 여성들은 수요가 급증하자 가격이 150파운드로 껑충 뛰었어요. 어느 작가는 담배화폐로 아내를 맞아들이는 남성들의 흥분된 광경을 생생하게 기록으로 남겼어요. 

 “기적소리를 내며 런던으로부터 배가 항구에 도착했다. 배에는 아름답고 정결한 여성들이 타고 있었다. 이들을 기다리던 젊은 남성들은 팔에 최상품 담배를 한 다발씩 들고 급히 배쪽으로 뛰어갔다.”

 법정화폐인 담배의 인기가 치솟자 부자의 꿈을 안고 ‘돈’을 심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어요. 집집마다 담배를 재배한 탓에 시중에 돈이 넘쳐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돈’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 결과 담배의 구매력은 형편없이 떨어졌어요. 돈의 과잉공급을 우려한 버지니아, 메릴랜드, 캐롤라이나 3개 주는 1년간 담배 생산을 중단한다는 협정을 맺기에 이르렀지요. 하지만 협정 후에도 담배의 폭락세는 멈추지 않았어요. 그러자 성난 사람들이 떼를 지어 담배공장을 파괴했어요.


거의 300년이 흘러 20세기 독일에서 담배는 다시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가공되지 않은 예전의 잎담배와는 달리 이번에는 맵시있게 몸을 단장한 궐련(종이로 말아 놓은 담배)이 그 자리를 대신했어요. 나치의 패색이 짙어지자 독일 국민들은 인플레이션으로 구매력을 상실한 마르크화를 불신하고 ‘담배 화폐’에 높은 가치를 부여했어요. 흡연가이든 비흡연가이든 동일한 가치로 담배를 받아들였지요. 전쟁의 공포를 이겨낸 사람들에겐 담배의 해독은 그저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았어요.


 미국은 프랑크푸르트에 공식적인 독미 담배교환소를 설치했습니다. 1947년, 미국에서 1달러도 되지 않던 담배 한 갑이 이 교환소에선 2달러50센트에 거래되었어요. 미 점령군들은 본국으로부터 담배를 우송해 이 교환소에서 비싼 값에 팔았어요. 암 달러상이 호황을 누렸고 떼돈을 번 미국 장병들도 많았대요.


 담배가 귀하다 보니 버려진 꽁초들을 모아 ‘화폐’로 만드는 일도 흔히  있었어요. 점령지구 고급관리사무소의 화장실에는 ‘담배 꽁초를 버리지 말 것’이란 안내문구가 붙었다고 해요. 화폐 제조를 위해 부지런히 꽁초를 주워 모으는 사람이 있었던 거지요.


담배는 다루기 쉽고 낱개로 거래할 수 있는 편리함을 지니고 있었어요. 한 개비의 궐련은 훌륭한 잔돈이고, 한 갑(20개비)이나 한 보루(200개비)는 고액 화폐와 다름 없었죠. 그러나 담배는 국가에서 찍어낸 화폐와는 달리 발행기관으로 결코 되돌아오는 법이 없어요. 농장과 공장에서 끊임없이 생산돼 그저 애연가의 입에서 연기로 사라질 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