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이자)란 무엇일까? - 세계일보 블로그
우리가 모은 돈을 은행에 예금하거나 그 반대로 필요한 돈을 은행에서 빌릴 때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은 이자율 즉 금리가 얼마나 될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상품의 가격이나 주식의 시세와 같이 우리가 경제활동을 하는 데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금리란 무엇이며 어떤 종류가 있는지 알아보자.
금리란?
우리들이 일상생활을 하다보면 돈이 부족하여 은행이나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려야 할 때도 있고 남은 돈을 은행에 예금을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돈을 빌린 사람은 일정기간 동안 돈을 쓰고 난 다음 갚을 때에 당초에 빌린 원금 외에 돈을 쓴 데 대한 대가를 지급하는데 이를 이자라 하며, 이자의 원금에 대한 비율을 이자율 또는 금리라고 한다.

이처럼 오늘날 이자는 돈을 빌려 쓴 대가로 지급하는 금전이자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 경제생활에서 돈이 쓰이기 전에는 곡식이나 귀금속 등이 이자로 지급되기도 하였다.


인류역사에서 최초의 이자에 대한 기록을 보면 기원전 3세기경 은과 보리를 빌리는데 대한 이자율이 각각 연 33⅓와 연 20였던 것으로 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옛날 농촌에서는 봄에 씨앗을 빌려주었다가 가을에 이자를 붙여 되돌려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리스·로마시대에는 돈을 빌려주거나 이자를 받는 행위를 도덕적으로 좋지 않게 생각하였으며 특히 중세시대에 들어와서는 이자를 주고 받는 것 자체를 죄악시하여 교회법으로 금지하기까지 하였다. 그 후 종교개혁과 함께 이자를 금지하던 제도가 완화되기 시작하였으며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모든 금융거래에서 이자를 자연스럽게 주고받게 되었다.
금리의 기능
금리는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데 가장 먼저 손꼽을 수 있는 것이 돈을 빌리려고 하는 자금의 수요와 돈을 빌려주고자 하는 자금의 공급을 조절하는 기능이다. 예를 들어 나라 전체적으로 자금의 공급보다 수요가 많으면 더 높은 금리를 주려고 해야 돈을 빌려 쓸 수 있기 때문에 금리는 오르게 된다. 한편 금리가 오르면 돈을 빌리는 데 드는 비용이 커지기 때문에 자금에 대한 수요는 점차 줄어드는 반면 돈을 빌려주는 데 대한 대가로 받는 이자가 많아지기 때문에 자금의 공급은 늘어나게 되어 결국 수요와 공급이 같아지게 된다.


금리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은 자금의 배분기능이다.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금리가 오를 경우에는 자금의 공급이 늘어나는 한편 돈을 잘 이용하여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는 산업부문은 더 높은 금리를 줄 수 있기 때문에 결국 금리는 이익을 많이 낼 수 있는 산업으로 더 많은 자금이 흘러가도록 함으로써 나라 전체적으로 자금이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한다.
금리의 종류
먼저 금리는 그 계산방법에 따라 단리와 복리로 나눌 수 있는데 단리는 원금에 대해서만 이자를 계산하는 방법이고 복리는 원금에 대한 이자뿐만 아니라 이자에 대한 이자도 함께 계산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100만원을 연 8의 금리로 2년간 은행에 예금할 경우 만기에 받게되는 원금과 이자의 합계액은 단리방식으로는 116만원[100만원×(1+0.08×2)]이 되지만 복리방식으로는 116.6만원[100만원×(1+0.08)2]이 된다.


또한 금리는 돈의 가치 즉 물가의 변동을 고려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명목금리와 실질금리로 구분할 수 있다. 명목금리는 돈의 가치변동을 고려하지 않은 금리이며 실질금리는 명목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금리이다. 우리가 돈을 빌리고 빌려줄 때에는 명목금리로 이자를 계산하고 있지만 실제로 기업이 투자를 하거나 개인이 예금을 하려고 할 때에는 실질금리가 얼마나 될 것인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1년 만기 정기예금의 명목금리가 연 8일 경우 물가상승률이 연 2.5라고 하면 실질금리는 연 5.5에 불과하게 되므로 정기예금에 가입한 사람의 실질이자소득은 물가가 이보다 더 안정되었을 때에 비해 훨씬 줄어들게 된다. 그리고 금리는 표면금리와 실효금리로도 구분할 수 있는데 표면금리는 겉으로 나타난 금리를 말하며 실효금리는 실제로 지급받거나 부담하게 되는 금리를 뜻한다. 표면금리가 동일한 예금일지라도 복리, 단리 등의 이자계산방법이나 이자에 대한 세금의 부과여부 등에 따라 실효금리는 서로 다르게 되며 대출의 경우에도 이자계산방법 등에 따라 실효금리는 달라진다.
흑인 노예를 해방시킨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 링컨의 마지막 눈을 감긴 것은 저격범의 총알이 아니었어요. 미국의 영웅을 쓰러뜨린 것은 총알이었지만 이승의 ‘커튼’을 내린 것은 바로 50센트짜리 은화 두닢이었습니다.

1865년 4월14일, 링컨은 광신적 남부지지자인 배우 존 부스에게 피살되었어요. 밤 10시 무렵, 저격범은 포드 극장에서 관람하던 링컨에게 다가가 데린저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어요.
'탕, 탕, 탕'
조용하던 극장 안에 총소리가 울려퍼졌습니다. 링컨은 왼쪽 머리를 맞아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극장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어요.

링컨은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고 전국에는 비상사태가 선포되었습니다. 그는 간간이 신음소리를 내며 9시간이나 버텼어요. 부인 메리 여사가 침대 옆에 앉아 그의 얼굴에 입을 맞추고 연신 이름을 불러댔어요.

다음날 아침 7시, 링컨의 신음소리가 잦아지자 국방장관 스탠턴은 “이제, 이 분은 역사 속으로 가셨습니다”라고 울음섞인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링컨의 손을 잡고 있던 군의관 릴은 그의 눈꺼풀 위에 50센트 은화 두닢을 올려놓았어요. 죽은 자의 눈 위에 돈을 얹어놓은 미국의 풍습에 따른 것이었지요.

이처럼 사람이 죽었을 때 동전을 이용해 죽은 이의 눈을 감기는 일은 미국과 영국 등 서양에서 오래전부터 풍습으로 전해져 내려왔어요. 죽은 사람의 눈을 빨리 감겨주지 않아 죽은 이의 눈에 산 사람의 상이 굳어지면 그 사람에게 나쁜 일이 생긴다고 사람들은 믿었던 거죠. 고고학자들은 2세기경에도 죽은 이의 눈을 감기기 위해 동전을 사용했다고 증언하고 있어요.

장례 역사학자인 파렐에 따르면 1880년 이전 미국에서는 시신을 널빤지로 싸서 두개의 의자 사이에 놓고 하녀들로 하여금 시신을 깨끗히 하도록 했답니다. 이 때 하녀들은 동전을 죽은 이의 눈꺼풀 위에 놓아 눈을 감겼다고 해요.

‘티끌로 변하는 죽음, 시신에서 무슨 일이 생기나?’의 저자인 아이저슨은 “이런 관습이 오늘날에도 계속되는 이유는 돈이 살아있는 사람에 못지 않게 죽은 이에게도 매우 중요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미국에 사는 아프리카계 흑인들은 오늘날에도 죽은 이의 손에 동전을 쥐어 줌으로써 죽은 이가 저승에 들어가는 비용으로 쓰도록 하고 있어요. 그들은 동전을 묘지 주위의 나무에 놓아두기도 합니다.

죽은 사람에게 노잣돈을 쥐어주는 풍습은 그리스와 로마시대에도 널리 행해졌다고 합니다. 유가족들은 죽은 이의 입에 동전을 얹어주었어요. 이승을 떠나는 영혼이 저승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승과 저승 사이에 있는 스틱스강을 건너야 하는데, 돈으로 사공의 배삯을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이런 믿음은 기원전 6세기경 그리스인들이 즐겨 부른 노래에서도 잘 나타나 있어요.
“죽은 사람의 입에 배삯으로 오볼로스 은화 하나를 물려주면 뱃사공 샤론은 죽은 이를 조각배로 싣고 황천강을 건너게 해준다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의 고분에서도 자주 돈이 발굴되는 것도 비슷한 이유라고 생각해요. 이승에서 소중한 돈이 사후에도 가장 요긴하게 쓸 수 있는 물건으로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퇴계 이황이 벼슬에서 물러나 경북 안동에서 생활하던 때였어요. 집 앞에 흐르는 낙동강에는 은어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은어는 맛이 좋아 나라에선 진상품으로 정해 누구든 고기를 잡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했어요.

그것을 알 턱 없는 동네 아이들이 강에서 멱을 감다 은어를 자꾸 잡는 것이었어요. 퇴계의 아들도 거기에 끼어 있었죠. 퇴계는 은어를 잡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러지 말라고 꾸짖었어요. 어느 촌노가 이 광경을 보고 퇴계 선생을 나무랐어요.
“아이들이 물놀이하면서 고기를 좀 잡기로서니 뭐가 나쁩니까? 그런 법을 만든 나라가 잘못된 거지요.”

가만히 듣고 있던 퇴계는 “노인장의 말이 옳소. 그런 것까지 제지하는 법이 물론 잘못된 것이지요. 하지만 악법이라고 안 지키면 나라의 질서는 어찌 되겠소”라고 대답했어요.
그 후에 아무리 타일러도 아이들은 말을 듣지 않았어요. 그러자 퇴계는 차마 이를 지켜볼 수 없어 멀리 떨어진 동네로 집을 옮기고 말았습니다.

이 일화에는 위대한 철학자, 퇴계 선생의 꼬장꼬장한 선비정신이 숨어 있답니다. 1975년 한국은행이 1000원권 지폐에 퇴계의 얼굴을 실으면서 가장 고심했던 대목도 조선시대의 선비상을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것이었어요.

 퇴계의 얼굴은 원로 한국화가인 현초 이유태 화백이 맡았어요. 먼저 고증위원들이 문헌과 기록을 참조해 퇴계의 얼굴 생김새와 의상을 설명하면 이를 근거로 화가가 스케치하는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됐습니다. 고증위원들과의 여러번에 걸친 협의 끝에 비로소 퇴계의 초상화가 세상에 나왔어요.

퇴계 선생의 얼굴은 여느 인물에 비해 여위고 마른 편으로 묘사됐어요. 청년기에 유독 병이 많고 초식을 즐겼다는 고증에 따른 것이었지만 여윈 얼굴과 눈매는 그의 꼿꼿한 성품을 대변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