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돈에 웬 일본 왕실 나무? - 세계일보 블로그
 
 
◇ 1000원권 지폐에 실린 도산서원 전경. 타원형 표시한 것이 일본 자생종인 금송이다.
우리 돈에도 왜색 자취가 남아 있어요. 자기 나라의 문화를 외국에 알리는 최고의 수단인 화폐에 ‘남의 것’이 버젓이 실려 있다는 사실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지요.

 우리가 사용하는 1000원짜리 지폐에는 퇴계 선생의 덕을 기리는 도산서원이 실려 있어요. 문제는 서원 뜰 앞에 우뚝 선 한 그루의 나무입니다. 10m가 넘게 훌쩍 자란 이 나무는 다름 아닌 일본 고유의 수종인 금송(錦松)입니다.
이 나무는 일본 천황궁이 기념식수로 애용하는 최고의 조경수라고 해요.

 금송은 1970년 도산서원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이곳으로 옮겨 심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요. 한국은행이 75년 8월 1000원권에 도산서원 전경을 실으면서 지폐 왼쪽 아래에 금송을 그려넣었지요. 이후 화폐 도안을 바꾸는 작업이 한 차례 있었으나 금송의 모습은 사라지지 않았답니다. 국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30년째 꿋꿋이 자리를 지켜온 셈이죠.

금송을 둘러싼 논란은 몇해 전 지방대의 한 생물학자의 제기로 불거졌습니다. 2000년 제자들과 도산서원을 찾은 계명대 김종원 교수는 이곳에 일본 나무가 자라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는 서원 바깥에 나무를 옮겨 심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여지껏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며 기자에게 안타까워 했어요.

당시 그의 주장이 지방언론에 실리자 정보기관 직원이 찾아와 그를 조사까지 했다고 해요. 감히 ‘나랏님’이 심은 나무에 흠집을 냈다는 이유에서죠. 김 교수는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장소에 일본 천황을 상징하는 나무를 심은 것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어요.

딱히 잘잘못을 가리자면 실제 있는 나무를 돈에 그린 ‘죄’밖에 없는 한은으로선 억울할 법도 하죠. 한국은행 관계자는 “앞으로 화폐개편 때 금송의 처리문제도 충분히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5000원권 뒷면에 실린 강릉 오죽헌(왼쪽)과 율곡 선생의 위패가 모셔진 파주 자운서원의 전경.

율곡 이이 선생의 추모제는 매년 두 곳에서 치러진답니다. 오죽헌이 있는 강원도 강릉시와 경기도 파주시가 ‘율곡 선생 모시기’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죠. 제사 봉양을 꺼리는 요즘 세태와는 달리 성현을 서로 모시겠다는 데야 비난할 이유가 없겠지만 거기엔 지방자치단체간 묘한 경쟁심리가 숨어있어요.

두 자치단체간의 해묵은 갈등은 올해로 16년째를 맞고 있어요. 강릉시가 율곡 영정을 모신 오죽헌에서 1962년부터 제사를 올리자 선생의 묘와 위패가 있는 파주시가 89년 뒤늦게 성대한 문화행사를 열기 시작됐습니다. 이들은 각기 율곡제와 율곡문화제란 이름으로 매년 축제를 벌인답니다.

이들의 갈등은 선생이 생존했던 아득한 4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율곡은 1536년 오죽헌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생가(태어난 곳)’의 사전적 의미에서만 본다면 강릉시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처지죠. 하지만 이곳은 그의 고향이라기보다는 어머니 신사임당의 친정입니다.

율곡은 오죽헌에서 여섯 해를 보낸 뒤 조상 대대로 살아온 파주 법원읍 동문리에서 수학하며 9번이나 장원급제를 했어요. 훗날 지방의 유림들은 이곳에 자운서원을 지어 그의 위패를 모셨지요. 선생과 신사임당도 여기에 묻혀 있지요.

따지고 보면 이런 분쟁의 불씨는 율곡 선생이 제공한 것이 아닐까요? 급기야 양측의 마찰은 화폐논쟁으로 번졌어요. 파주시가 5000원권 뒷면에 실린 오죽헌의 전경을 자운서원으로 바꿔야 한다고 거론하고 나선 것이죠. 파주시의회는 지난해 7월 한국은행 등 7곳에 이런 내용의 건의문을 냈어요.

입장이 난처해진 한은은 “현재 화폐개편 논의가 진행 중인 만큼 앞으로 화폐도안 변경 때 자치단체들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답변을 하고 있어요.
돈이 있는 곳엔 위조범이 있어요.
화폐 위조의 역사는 아득한 기원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요. 기록상으로는 기원전 540년에 인류 최초의 위조범이 나타났다고 전해집니다. 이때부터 돈을 찍는 기관과 위조범 사이에 끝없는 머리싸움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어요.

중세 중국에선 위폐를 뿌리뽑으려고 전국에서 뛰어난 위조범들을 조폐기관의 직원으로 특채를 했을 정도였어요. 12세기 영국의 헨리1세는 위폐가 성행하자 조폐기관 직원중 100여명의 손목을 자른 일이 있다고 해요.

오늘날 우리 주화의 테두리에 새겨진 톱니바퀴 무늬도 이런 화폐 위조의 역사와 무관치 않아요. 구리, 니켈이 주재료인 요즘과는 달리 17∼18세기엔 금화와 은화가 주종을 이뤘어요. 당시 시중에서 주화의 테두리를 조금씩 잘라내 이득을 챙기는 일이 종종 있었어요. 나라에서 법까지 만들어 처벌했으나 별 소용이 없었죠. 그래서 주화의 테두리에 톱니바퀴 모양을 새겨넣는 묘안이 나왔어요. 무늬를 넣으면 조금만 떼어내더라도 육안으로 쉽게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죠.

현재 통용중인 우리 주화에 새겨진 톱니바퀴는 금액의 크기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어요. 50원짜리 109개, 100원 110개, 500원 120개씩 새겨져 있으나 10원짜리 이하 주화에는 아무 무늬가 없어요. 다른 나라에선 주화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 톱니바퀴 대신 나라 이름이나 기념문구, 액면 크기, 문양 등을 옆 테두리에 새겨넣기도 한답니다.

이런 주화들은 제조과정에서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고 원가도 많이 먹히죠. 그런 까닭에 예전엔 기념주화등 일부에만 사용됐으나 지금은 일본, 네덜란드 등 여러 국가에서 채택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선 1993년 발행된 대전엑스포 기념주화 테두리에 문자를 새긴 적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