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보다 배꼽이 크다? - 세계일보 블로그
◇ 우리 돈 중에서 제조비용이 가장 많이 드는 5원짜리와 1원짜리 주화.

 돈의 팔자는 만들어질 때부터 운명처럼 정해집니다. 몸에 문신처럼 새겨진 금액의 크기에 따라 ‘신분’이 결정되기 때문이죠. 단돈 1원에서부터 1만원권의 고액 지폐에 이르기까지 태어난 곳은 같지만 이들이 지닌 위력은 실로 엄청난 차이가 있어요.

놀랍게도 우리 돈 중에서 ‘귀하신 몸(?)’은 정작 따로 있는 듯해요. 세상에 나오기까지 가장 많은 비용이 드는 돈은 최고액권인 1만원짜리가 아니랍니다. 제조원가가 가장 비싼 돈은 5원짜리이고 그 다음이 1원짜리입니다.

주화 하나를 만드는 데 5원짜리는 110원, 1원짜리는 100원이 들죠. 또 10원은 30원, 50원은 40원, 100원은 50원, 500원은 70원씩의 제조원가가 먹힌답니다. 지폐인 1000원권과 5000원권은 40원씩, 1만원권은 50원의 원가가 들어요.

1원과 5원짜리의 제조비용이 1만원권의 두배에 달하죠. 더구나 1원짜리의 제조원가는 몸값의 100배에 이릅니다. 한국은행의 입장에선 10원짜리 이하 주화는 만들면 만들수록 그만큼 손해를 보게 되지요.

일반적으로 제조비용의 차이는 주화의 재질에서 생겨납니다. 1966년 세상에 나올 당시 구리와 아연의 합금이던 1원짜리가 불과 2년만에 알루미늄으로 바뀐 것도 몇푼의 재료값을 아끼기 위해서라고 해요. 엄밀한 의미에서 1원짜리는 동전(銅錢)이 아니죠. 동전은 구리로 만든 돈을 뜻하니까요.

그러나 1원과 5원짜리가 귀하신 몸이 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어요. 시중에서 이들 주화가 거의 쓰이지 않다보니 대량으로 생산하는 다른 동전과는 달리 1개를 만드는 단가가 높아진 때문이죠.

한국은행 관계자는 “많은 제조비용이 드는 주화들이 대부분 돼지저금통 등에 오랫동안 머물고 있어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 되고 있다”고 말했어요.
 
◇ 우리 지폐의 인물 한켠에 실린 유품들. 사진 왼쪽부터 세종 대왕의 자격루, 율곡 선생의 벼루, 퇴계 선생의 투호.

세종대왕은 위대한 과학자였어요. 그가 살던 궁궐에는 물시계와 해시계, 천문대가 즐비해 흡사 과학기지를 떠올릴 정도였다고 해요.

즉위 4년을 맞은 1422년, 달이 태양의 일부를 가리는 부분일식이 있었어요. 세종은 인정전의 월대(月臺)에서 이를 관측했습니다. 그런데 일식은 천문학자 이봉천이 계산한 시각보다 5분가량 늦게 일어났어요. 당시로선 대단한 성과였지만 이 5분의 오차로 천문학자는 곤장을 맞아야 했습니다.

그후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1434년 ‘자격루’라는 물시계가 비로소 세상에 나왔어요. 물의 흐름에 따라 매 시간 북을 치고 분마다 징을 치는 자동시계였어요. 이런 세계적인 발명품도 관청의 노비였던 장영실을 중용해 벼슬까지 내린 세종의 혜안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지요. 아쉽게도 세종 초기에 만들어진 자격루는 지금 남아있지 않고 1세기 후에 제조된 물시계의 일부만이 전해질 뿐이죠. 우리 지폐 1만원권의 한쪽을 장식한 자격루는 현재 국보 229호로 지정돼 있어요.

5000원권에는 율곡 선생이 어릴 적에 썼던 벼루가 그려져 있어요. 강릉 오죽헌 생가에 보관된 이 벼루는 일생을 배움에 천착했던 선생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의 학덕을 추모한 정조 임금이 오죽헌에 어제각을 지어 선생의 유품인 격몽요결과 함께 벼루를 보관하도록 어명을 내렸다고 해요.

퇴계 선생의 얼굴이 실린 1000원권 지폐 한쪽에는 고풍스런 항아리가 하나 놓여 있어요. 옛날 선비들의 심신수양 도구로 사용된 투호랍니다. 퇴계는 공부를 하다 정신이 흐트러지면 일정한 거리에 놓고 화살을 던져넣는 투호놀이를 즐겼대요. 안동 도산서원 옥진각에 보관돼 있어요.

우리 지폐에 실린 이들 유품은 한낱 ‘엑스트라’에 불과하지만 위인들의 면모를 보여주는 정겨운 소품이 아닐까요.
 
◇ 1만원권 세종대왕이 쓴 익선관(사진 왼쪽부터)과 5000원권 율곡 선생의 정자관, 1000원권 퇴계 선생의 복건.
  조선은 모자의 왕국이다.”
구한말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프랑스의 한 민속학자는 프랑스 여행잡지의 기고에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처럼 다양한 모습의 모자를 본 적이 없다”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해요.

사실 외국인에게 경이감으로 비쳐질 정도로 우리나라는 오랜 모자의 전통을 갖고 있답니다. 조선시대에는 남자라면 거의 모자를 쓰고 다녔을 만큼 모자문화가 발달했어요.
멋으로 쓰는 요즘과는 달리 당시로선 의복의 일종이자 필수품이었어요. 모자의 모양도 신분이나 직업, 용도에 따라 달랐고 독특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죠.

조상들의 이런 생활양식은 우리가 사용하는 지폐에도 이어지고 있어요. 지폐에 실린 인물들이 한결같이 모자를 쓰고 있고 모양도 천차만별이죠. 대부분 맨 머리 모습인 외국 돈의 인물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어요.

1만원권의 세종대왕은 머리에 ‘익선관’을 쓴 근엄한 모습을 하고 있어요. 조선시대에 왕이 신하들과 집무를 볼 때 주로 착용했다고 해요. 꼭대기가 턱이 져서 앞턱은 낮고 뒤턱은 높으며, 뒤에 두개의 뿔이 날개처럼 달려 익선관이란 이름이 붙었답니다.

5000원짜리 율곡 선생이 쓴 ‘정자관’은 사대부들이 즐겨 사용하던 모자였어요. 예의를 숭상했던 양반들은 평소에도 갓을 쓰고 사람을 대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기 때문에 갓을 대신해 간소한 정자관이 등장하게 됐어요. 중국 북송의 대유학자인 정자가 처음 사용한 데서 이런 이름이 유래했다고 합니다.

1000원권의 퇴계 선생은 조선시대 유생들의 신분을 상징하는 ‘복건’이란 모자를 쓰고 있어요. 검정 헝겊으로 둥글고 삐죽하게 만들고 양옆에 끈이 있어서 뒤로 돌려매지요. 모양이 괴상해 일반화되지 못하고 극소수 유생들만 사용했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