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폐속 인물의 패션은? - 세계일보 블로그
◇ 한국은행이 보관중인 세종대왕(사진 왼쪽부터), 율곡, 퇴계의 화폐 제작용 영정. 세 분이 각각 입고 있는 곤룡포, 대창의, 심의.

 인류 최초의 옷은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난 후에 자신의 부끄러운 곳을 가린 무화과 나뭇잎이었어요. 그후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점차 옷은 그 사람의 신분과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바뀌었습니다.

골품제도의 엄격한 신분사회를 형성했던 신라시대엔 지위에 따라 옷감이나 색깔이 달랐어요. 관리들은 자신의 신분에 맞춰 자주색,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의 옷을 입었어요. 평민들은 돈이 있어도 비단옷을 입을 수 없었습니다. 남편의 지위에 따라 부인 속치마의 옷감까지 차별을 두었고 평민에겐 아예 속치마를 입지 못하게 금했어요.

유교문화가 꽃피었던 조선시대에는 계층에 따라 다양한 옷이 잘 갖춰져 있었죠. 업무, 제사, 경축일, 접견, 평상시 등 용도에 따라 쓰임새와 모양 또한 달랐어요. 흥미로운 사실은 여성들의 유행이 요즘과 같은 치마가 아니라 저고리 길이에서 일어났다는 점이죠. 임진왜란을 거친 후 서민 여성들에게 짧은 저고리가 일반화됐고 조선 말엽에는 젖가슴조차 못가릴 정도였다고 해요.

이런 옷의 문화는 오늘날 우리 지폐에도 고스란히 묻어 있어요. 1만원권에 실린 세종대왕은 왕의 정복(正服)인 ‘곤룡포’를 입은 근엄한 모습을 하고 있어요. 곤룡포는 왕이 업무때 입는 두루마기 모양의 웃옷으로 ‘용포’로도 불린답니다. 노란색 또는 붉은색 비단에 금실로 수놓은 용이 붙어 있어요.

율곡 선생(5000원권)의 옷은 사대부들의 평상복인 ‘대창의’라고 해요. 소매가 넓고 뒷솔기와 옆솔기 두곳에 트임이 있어요.

대유학자 퇴계 선생(1000원권)은 ‘심의’를 입은 소탈한 모습이죠. 심의는 옛날 공직을 떠나 한가로이 사는 학자들이 입던 옷이에요. 백색 천으로 만들고 옷 가장자리에 검정비단으로 선을 둘렀어요.




◇1만원권 뒷면에
실린 경복궁 후원
의 경회루 전경.
이곳은 조선시대
궁중 연회장으로
주로 쓰였다.
요즘에도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이들이 많겠지만 우리나라에도 벼락출세한 신데렐라(?)가 있어요. 다만 여성이었던 서양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선 남성이었죠.
 조선 세종 때 문장과 경학에 밝은 구종직이란 문인이 있었어요. 궁궐에서 숙직을 하던 어느날, 경복궁 후원에 있는 경회루의 경치가 빼어나다는 말을 듣고 몰래 들어가 연못가를 거닐었어요. 때마침 산책을 나온 왕과 마주치고는 황급히 엎드리니 왕이 그에게 “경전을 욀 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그가 즉석에서 ‘춘추’ 한권을 줄줄 암송하니 세종 임금이 크게 탄복했죠. 이튿날 9품의 미관말직인 그에게 홍문관 교리(종5품)란 높은 벼슬이 내려졌어요. 하루 아침에 7직급이나 특진한 셈이죠. 나중에 그는 오늘날 부총리급에 해당하는 좌찬성(종1품)에까지 올랐어요.

이렇듯 1만원권 지폐에 실린 경회루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숨어 있어요. 국보 224호로 지정된 경회루는 조선시대 외국 사신들의 접대와 궁중 연회 장소로 쓰였지요. 임금과 신하가 덕으로써 만난다는 뜻에서 경회란 이름이 붙었어요. 해방 후에도 국경일에 대통령이 내외 귀빈을 이곳으로 초청해 칵테일 파티를 종종 열었다고 해요.

5000원권 뒷면의 강릉 오죽헌은 조선 중기 대학자인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이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주택의 하나로 보물 165호로 지정돼 있어요. 집 주위에 까마귀처럼 검은 대나무가 많아 오죽헌이란 이름이 생겨났어요.

또 1000원권에는 경북 안동에 있는 도산서원(사적 170호)이 실려 있어요. 지방의 유림이 퇴계 이황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해 지었다고 해요.

잠시 지갑속의 돈을 펴들고 조상들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을 되새겨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요. 자녀들에게 용돈을 주면서 돈에 담긴 문화재를 설명해준다면 더없는 귀한 산교육이 될 거에요.
 

◇ 1983년 이전(왼쪽)과이후에
각각 주조된 10원짜리 동전.
오른쪽 동전 다보탑에  새겨진
돌사자상(동그라미 안)이 불상
으로 오인돼 소동을  빚기도 했
다.
 지난해 서울에서 조그만 전파상을 운영하는 할아버지가 매일 모은 10원짜리 동전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기탁해 세상을 훈훈하게 데웠어요. 그는 자신의 은행 적금까지 합쳐 1000만원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10원짜리 동전에 새겨진 다보탑으로 아름다운 선행의 탑을 세운 것이죠. 느낌상 다소 차이는 있으나 아마도 먼 옛날 ‘천년의 사랑’이 다보탑을 통해 이어진 것은 아닐까ㅛ.

경주 불국사 대웅전 앞에 있는 다보탑은 통일신라시대 때인 8세기 중엽 백제의 석공 아사달에 의해 만들어졌어요. 그의 아내인 아사녀는 남편을 찾아 멀리 불국사까지 왔지만 탑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만날 수가 없었어요. 기다리다 지친 아사녀가 끝내 연못 속으로 뛰어들자 아사달도 뒤따라 목숨을 끊었다는 애절한 사랑 얘기가 전해지고 있어요.

국보 20호로 지정된 다보탑(높이 10.4m)은 우리나라 석탑 중에서 가장 화려한 조각미를 자랑하고 있어요. 대웅전 앞에 나란히 선 석가탑(국보 21호)이 남성적이라면 다보탑은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아쉽게도 다보탑 돌계단위에 놓인 돌사자는 원래 네마리였으나 일제 강점기에 세마리가 도난당해 지금은 한 마리만 남아있어요.

그런데 이 돌사자로 인해 뜻하지 않은 종교적인 소동이 일었어요. 1995년 기독교 목사와 변호사들이 10원짜리 동전의 다보탑에 불상이 조각돼 있다고 한국은행 총재에게 청원서를 낸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죠. 시중에는 불교신자인 노태우씨가 수백만개의 불상을 만들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다는 어떤 스님의 조언에 따라 83년부터 동전에 불상을 새겨넣었다는 제법 그럴싸한 풍문까지 나돌았죠. 한국은행 측이 불상이 아니라 돌사자라고 애써 해명했지만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