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수염 - 세계일보 블로그
 


5·16혁명 직후에
나온 지폐(왼쪽)와
1979년에 만들어진
지폐의 세종대왕은
수염의 모습이 매우
다르다.

사자의 갈기는 동물의 왕으로서 위엄을 나타내는 징표나 다름없지요. 그것이 없다면 한낱 볼품없는 맹수에 지나지 않겠죠. 마찬가지로 남성에게도 수염은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어요.

고대 이집트 상류층의 남자들은 지위의 상징으로 수염을 길렀어요. 게르만족들은 수염을 청색으로 염색하고 다녔고 프랑스인들은 6세기쯤 염소수염을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긴 수염은 양반가의 신분과 체통으로 통했어요 고려때 무신란을 일으킨 정중부는 세도가인 김부식의 아들이 자기 수염을 촛불로 태우자 그를 꽁꽁 묶었다가 목숨까지 잃을 뻔했다고 해요.

우리 돈의 슈퍼모델인 세종대왕도 일찍이 수염 때문에 곤욕을 치렀어요. 세종대왕은 자유당 정권이 무너진 이후 43년 동안 8번이나 돈의 얼굴로 등장했어요. 하지만 그전 단골모델인 이승만 대통령과는 달리 전해내려오는 초상화가 없어 제작자에 따라 얼굴 모습이 달랐어요. 1960년에 처음 나온 대
왕의 얼굴은 교과서에 실린 삽화를 근거로 어설프게 그려졌어요.

5·16혁명 후 화폐개혁과 더불어 덕수궁의 세종대왕 조각상을 토대로 만든 새 지폐가 나왔어요.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시비가 일었습니다. 성군의 위엄을 강조하느라 수염을 너무 짙게 그린 탓이었을까요? 이씨 왕가의 사람들은 대개 수염이 적었다는 주장이 식자층을 중심으로 번져나갔어요. 공방이 계속되자 정부는 영정제작 지침을 만들고 영정 고증 자문단까지 구성했어요. 얼굴 그림은 운보 김기창 화백이 맡았죠. 79년 1만원권의 새 지폐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수년째 이어진 논쟁도 막을 내렸어요.

당시 운보는 필생의 역작을 만들겠다는 생각에서 목욕재계하고 작업했다고 해요. 돈의 인물 제작에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