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간에서는 무엇을 만들까? - 세계일보 블로그

-최용진 대장장이가 운영하는 '증평대장간'을 찾아서

 

 

3월초 '무쇠의 마술사'로 별명이 붙은 최용진(62) 대장장이를 만났다.

 

최씨의 대장간은 충북 증평군 증평읍 재래시장내에 자리잡고 있었다.

 

40여평의 내부에는 쇠를 달구는 화덕과 최씨가 만든 호미와 칼 등이 빼곡이 차 있었다

16세때부터 그는 대장장이의 삶을 살았다.

 

그의 기술이 알려지면서 1995년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국내 첫 ‘대장간 부문 기능전승자’로 지정됐다.

대장장이 장인(匠人) 반열에 오른 것이죠.


 

최씨는"옛날 어른들이 사용했던 화로불손, 바닷가에서 굴을 까는 조새, 등 60여종의 생활용품과 농기구 등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최씨는 엿장수 가위와 호미등을 앙증맞게 만들어 삼태기에 장식해 문화상품으로 만들어 판매을 하고 있더라고요.

 

최씨는 자신이 만든 제품중에 칼이 최고라고 말하더라고요.

그에 명함에는 '수입제품보다 제가 만든 칼이 좋습니다'문구가 세겨져 있고요.

그는 중요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정말 대장장이가 될려면 옛날에는 풀무질 3년, 망치질 5년, 집게질 3년을 거쳐야 된다고 말하더라고요.

 

 

2007년 8월 복원된 충북 증평의 말세(末世) 우물이 있는 곳을 지난 2일 다녀왔다.

 

이 우물은 증평군 증평읍 사곡2리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 우물은 증평군이 3000만원을 들여 복원했죠.

 

화강석 구조물로 돼 있는 우물 난간을 철거한 뒤 부식에 견딜 수 있도록 방부목을 귀틀식으로 설치했더라고요.

또 10여년 전까지 마을 주민들이 사용했던 우물 주변 빨래터를 한쪽에 만들었다.

이와 함께 새마을사업으로 도로가 높아져 우물 벽이 구분이 안 됐으나 이번에 벽을 더 높게 쌓아 올렸다.

깊이 6m(직경 2m)의 이 우물이 충북도의 도지정기념물이 됐더라고요.

 

 <말세 우물의 모습>

이 우물은 가뭄이 극심했던 1456년쯤 마을에 찾아온 한 스님이 물 한 바가지를 대접한 아낙에게 우물 팔 자리를 알려준 뒤 “물이 세 번 넘치면 말세가 오니 그땐 마을을 떠나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는 전설을 품고 있다.

그 후 말세 우물은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1592년 정초에 처음 넘친 뒤 1910년 경술국치(한일합방) 때도 다시 넘쳐 국난을 예고한 바 있다.

그리고 넘치지 않았지만 우물이 차오르던 기록이 있다.

1950년 6월24일 우물이 1m내외로 불어나서 6·25 전쟁을 알렸다.

2006년 인근 지역인 진천·음성군의 수해가 일었을 때도 이 우물이 넘칠 뻔해 주민들이 긴장하기도 했다.

이 우물 주위에는 약 50호의 농가가 평화롭게 살고 있다.

김을지 기자 ejkim@segye.com

오랫만에 내 홈피를 들어오니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밑에 글에 나온 김흥환씨는 겨울철인 지금도 얼음덩이를 가져다 놓더라고요.

 

오랫만에 상당산성을 올라갔는데 얼음덩이를 보니 반갑더라고요.

 

이 사진은 2월22일 찍은 사진입니다.

 

하루전에 눈이 좀 내렸었죠. 요즘은 일주일에 한개씩 올려놓는다고 하네요.

 

김씨는 산성 입구에서 곶감과 엿 등을 팔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