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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루터킹 기념일에 찾은 루터 킹 기념관 [잡동사니]

박희준 기자의 블로그세계

 



     어른들로서는 아이들이 여행을 통해 뭔가를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행을 통해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문화와 환경을 만나 스스로 하나라도 얻는 게 있었으면 하는 그런 욕심이다.
  아내는 진작부터 아이들이 조금만 더 크면 자기네끼리 배낭 메고 이곳저곳을 돌아나니게 해 주겠다고 선언한 터다. '글쎄 가능할까?'라고 생각하면서도 "애들이 여행을 하면 좋지"라는 정도로 호응을 해 두긴 했다. 하지만 여전히 실현가능성에 회의적이다.
  여행이 오로지 눈과 몸만 즐겁게 하는 데에 그친다면 왠지 공허하다. 수백 달러 하는 입장료를 지불한 올랜도 기억이 재밌었다는 것 외에 꽉 채워지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남는 것이라고는 몸 속에 있는 몇 컷의 아날로그 기억과 출력할 일 없이 기계 속에만 저장해 둔 디지털 기억 뿐이다. 디지털 기억도 그냥 방치되기 십상이다. '앨범에 정리해야지' 하면서 어디로 옮겨놓기라도 했다면 부지런한 편이다. 까맣게 잊고 있다 메모리가 꽉차 지우기용 컷을 고르느라 고민 좀 해야 한다.

  조지아주 주도인 애틀란타는 그래서 여행지로 썩 내키지 않았다. 오히려 크게 볼 것 없는 사우스캐롤라이나라면 노예시장과 플랜테이션을 테마로 아이들과 미국 역사 얘기도 하면 좋을 것이다.
  애틀란타는 대형 한인 마트인 H마트와 CNN본사, 코카콜라 본사, 올림픽 공원, 마틴 루터 킹 목사 기념관,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쓴 마가렛 미첼 스퀘어, 스톤 마운틴이 가볼만한 곳이라고 한다. 다른 분들이 쓴 여행기를 보니 CNN본사와 코카콜라, 스톤 마운틴은 거의 필수코스처럼 돼 있는 것 같다.

  다행히 애틀란타 행을 마틴 루터 킹 목사 기념일에 맞춰 잡았다. 아이들도 최근 학교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에 대해 이미 수업시간에 들은 터다. 큰 아이는 킹 목사가 어린 시절 스쿨버스에서 백인들한테 당한 이야기를 학교에서 들었다며 아빠에게 설명해 주기도 했다. 애틀란타 테마는 자연스럽게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되었다.

  마틴 루터 킹 목사 기념일에 찾은 킹 목사 기념관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경찰이 여기저기에 배치된 가운데 주변 도로 차량 진입이 통제돼 주차공간을 찾느라 고생하긴 했지만 오히려 아이들의 관심은 높아졌다. 전국 방송중계 차량도 관심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아이들에게 기념관 방문이 어떤 이미지와 느낌으로 기억될지는 모르겠다. 인간의 존엄성 같은 거창한 것들은 기대하지도 않는다.  나중에 교과서에서 킹 목사를 만났을 때 먼 남의 나라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네가 가 본 곳에서 생활한 사람의 이야기로 받아들 수 있길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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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at 2008/01/27 13:09:00 댓글(0) l 트랙백(0) l 스크랩
미국에서 특별한 경험,할로윈데이 [잡동사니]
 애초 아이들에게 우리 것도 아닌 서양 행사를 굳이 알려줄 필요가 있겠느냐고 생각했다. 발렌타이데이니 화이트데이니 하는 게 모두 부질없다고 여겨온 나로서는. 강남 영어학원에서는 아이들이 할로윈 복장을 하고 놀이를 한다는 아내 말도 "우리 애들은 보낼 일 없다"고 넘겼다. 국내 가족에 우환까지 있어 편안한 생활을 즐길 수만도 없는 상황이다. 다른 국내 가족들에게 미안할 뿐이고.
 옆집 아주머니가 문 앞에 호박과 허수아비를 내놓고 그 옆집이 앞 마당 나무에 거미줄을 치고 호박귀신을 만들어 놓을 때만 하더라도 아이들에게도 아무 동요가 없었다. 하지만 요 며칠새 학교에 갔다오면 할로윈 얘기를 했다. "학교에서 할로윈 데이 비디오를 봤는데 친구들이 모두 들떠있다"면서.
 처음에는 집 앞에 거미줄만 쳐놓고 호박 바구니만 사주면 끝날 걸로 기대했다. 그러나 "무섭지 않으면 사탕을 주지 않는다"느니, "처음이자 마지막 할로윈"이라느니 하면서 압력을 행사하는 아이들에게 결국 굴복당했다.
 "뭐. 이 것도 경험일텐데..."라는 생각에 할로윈 데이를 이틀 앞둔 29일에야 월마트에 가서 복장을 사줬다. 큰 아이는 스타워즈 다스 베이더 가면과 복장을, 둘째는 해적 복장을 택했다. 그나마 큰 애는 베이더 복장이 너무 꼭 끼어 하루 전 다른 걸로 바꿨다.
 아이들이 그냥 옆 집 한 두집을 돌며 사탕을 얻어오는 정도로 생각했다. 11월6일 실시되는 이 곳 채플힐 시장 선거에 출마한  미국인 친구 집(이 얘긴 나중에 소개할 기회가 있을 듯)에 자원봉사를 갔다가 할로윈 데이 얘기를 하면서야 "해꼬지 당할래? 한 턱 낼래?"라는 뜻의 "Trick or Treat?"라는 말도 알았다. 그 친구는 우리 아이들이 자기 아이들과 함께 할로윈 데이 때 'Trick or treating'을 하면 어떻겠냐고 했다.
 미국 아이들이 할로윈데이를 얼마나 기다렸던지 오후 4~5시 축구교실은 이번 가을 시즌 마지막 연습시간인데도 썰렁했다. 평소의 10분의 1이나 나왔을까. 다들 집에서 할로윈 복장을 입고 분장을 하느라 축구교실은 뒷전이었던 모양이다.
 미국인 아이를 따라 나선 우리 두 아들은 처음에는 주뼛주뼛 익숙지 않았다. "Trick or treat?"라는 말도 거의 못하고. 헌데 금세 아이들 발걸음이 빨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젠 자기네가 앞장 서서 불켜진 집 쪽으로 뛰어갔다.(사탕이 떨어졌거나 할로윈데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집에서는 불을 꺼둔다)
 생각했던 것 보다 특별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오후 6시부터 8시분까지 동네 곳곳을 돌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아이들 이름과 학교를 일일이 묻는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외출 하려다가 아이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집앞 우체통에 사탕을 넣어놓고 가는 젊은 부부, 우리 아이들이 'Trick or treating'에 나설 수 있을지 걱정했는지 자기가 보호자로 나설 그룹에 두 아들을 함께 데려갈 수 있다고 한 근처 미국인 이웃.....
 미국인들의 사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잘 못하는 영어로 미국인 친구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 것도 좋았다.
 아이들도 평생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을 하나 만든 것 같다. "Trick or trick"이라는 말도 이제는 잊지 못할 것이다.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기 위해 혼자 집을 지킨 아내도 특별한 경험을 했다. 사탕 준비량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 탓에 곧 바닥을 드러내 아내는 남은 사탕만 바구니에 담아 현관에 놓아두고 불을 꺼놓고 있었다고 한다.
 미국인 친구는 "아마 사탕회사들이 할로윈데이를 가장 좋아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 두 아이가 두시간을 돌아 받아온 사탕은 정말 어린이 한 명이 몇달은 소비할 만한 분량이다.
 몇시간 만에 나는 "그래도 할로윈 데이는 보니까 옆집들을 돌면서 누가 사는지 서로 얼굴을 익히고 더욱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고 말하는 내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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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at 2007/11/01 13:16:00 댓글(5) l 트랙백(0) l 스크랩
채플힐과 UNC, 한국전의 상흔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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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플힐은 인구 5만1519명(출처:UNC 안내책자)의 조그마한 도시다. 듀크대학이 있는 더램이나 주도(洲都)인 수도 랄리에 비하면 규모가 작다.
 하지만 다른 두 지역과 함께 노스캐롤라이나를 대표하는 지역이다. 세 지역을 연결하는 지역 내에는 각종 첨단 연구시설과 회사들이 몰려 있어 RTP(Research Triangle Park)로 널리 알려져 있다.

채플힐은
UNC와 떼놓을 수 없다. UNC의 정식 명칭인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at Chapel Hill에서 보듯 채플힐은 UNC를 위해 만들어진 대학 도시이다. 노스캐롤라이나 역대 주지사의 절반 가량이 UNC 출신이었다.
 말 그대로 언덕 위가 채플힐의 중심지였고 나중에 New Hope Chapel Hill이라는 채플이 그 곳에 세워졌다고 한다. 지금 그 곳에는 Carolina Inn이 자리잡고 있다.

 UNC 설립 허가가 난 1789년은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취임한 해다. UNC는 이후 1795년 문을 열었는데, 미국 첫 주립대학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The First Public University.

 UNC는 남의 학교이긴 하지만 ELS 수업을 하는 바로 옆이라 가볼 기회가 많았다. 프랭클린 스트리트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방문자센터에 들러 안내책자를 받아들고 캠퍼스 주요 장소를 걷는 데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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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C 관련 책자나 홈페이지 등에서 항상 눈에 띄는 기념관 같기도 하고, 쓰레기통 같기도 한 심볼이다. 사진으로 꽤 멋있게 나오는데 직접 보면 사실 실망스럽다. 그저 그런 낡은 수도꼭지가 붙은 우물일 뿐인데 돔과 8개의 원기둥을 설치해 보호하고 있다. 안내책자에는 '1세기 넘게 물이 나오는 몇 안되는 우물이고 대학의 비공식 심볼'이라고 간단히 설명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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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내책자에 나오는 무명 노동자 기념비 Unsung Founders Memrial 사진을 보고 볼거리를 기대했다면 역시 실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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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창기 대학 캠퍼스 건물을 짓는 데 많은 노예들이 동원됐다고 한다. 이후 19세기, 20세기를 거치면서도 숙련공과 다른 흑인 노동자들이 많은 일에 참여했는데, 이 이름없는 이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직접 가 보면 기념비인지 캠퍼스 내 쉼터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원형 대리석을 300명의 청동 군상이 떠받치는 형상인데, 주변에는 대리석으로 된 의자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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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처에 세워진 남북전쟁 기념동상은 '침묵의 샘' Silent Sam이라는 닉네임을 갖고 있다. 이 동상은 남북전쟁 때 남부연합군으로 참전했다 전사한 UNC 동문 321명을 기리기 위해 1913년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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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뜻 전장에서 총을 들고 행진하는 이름없는 병사의 모습이다.
 하지만 병사는 싸우려는 뜻이 없다고 한다. 비록 총을 들고 있지만 장전을 하지 않았고 탄약을 갖고 있지도 않다.
 안내 책자 내용을 봐야 '침묵의 샘'이라는 닉네임이 붙은 연유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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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퍼스 한 구석에서 한국전의 상처도 찾아볼 수 있다.
UNC는 독립운동에서 베트남전, 이라크전에 이르기까지 각종 전투에서 희생된 동문들을 기리는 책 모양의 청동 기념비를 교정에 세웠다. 책의 페이지를 넘길 수는 없고 옆으로 꺼내면 사망자 이름이 적혀 있다. 한국전에서 숨진 UNC 동문은 20명으로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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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at 2007/09/18 00:16:00 댓글(3) l 트랙백(0) l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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