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연수를 위한 출국 전에 우리 집 짐을 모두 빼야 하는 난관이 있었다. 물론 일찌감치 전문업체에 의뢰해 견적을 내고 날짜까지 잡아둔 터였다. 하지만 해외로 가져갈 짐을 꾸리고 나머지 살림을 포장해서 맡기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이사 때 하는 포장이사 정도로 생각하고 시간을 잡았다가 낭패를 볼 뻔했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짐을 빼면 점심 무렵 세입자가 짐을 들여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세입자가 청소를 하고 다음날 들어오겠다고 해 다행이었지, 하마터면 이삿짐이 집 밖에 몇시간이나 머물게 하는 피해를 줄 수 있었다. H보관시스템에서 나온 남자 직원은 4명. 각자 거실과 안방, 작은방, 아이방으로 구역을 나눠 포장을 하는데 오전 8시30분부터 시작한 일이 오후 3시를 훨씬 넘겨서야 끝났다. 1년 장기 보관이다보니 가구와 전자제품,접시 등을 골판지와 에어포장비닐로 하나하나 싸느라 시간이 무척 걸렸다. 그런데도 정성 들여 싸는 모습이 고마울 정도였다. 출국과 입국시 2차례 포장이사와 1년 보관 비용으로 226만원을 줬으니 그리 비싼 편도 아니다.
일하면서 두런두런 하는 이야기는 힘들다는 생각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묘한 작용을 한다. 연수 또는 해외지사 파견 근무 등을 위해 장기간 해외로 나가는 이들의 집만을 돌아다닌 이들이라서 그런지 들려주는 얘기 중에 재밌는 게 많았다.
그 중 한 에피소드. 팀장으로 나온 직원은 고 최규하 전 대통령 따님의 짐을 포장한 적 있다고 했다. 포장 과정에서 나온 물건 중 특이한 게 바로 연탄집게. 직원들은 물건을 포장할 때 우리 부부에게 그랬던 것처럼 "보관하실거냐? 버리실거냐?"고 물었다고 한다. 답변은 "보관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렇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우리 손주들한테 할머니 때는 이런 것(연탄집게)으로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살았다고 말해 주려고 보관하고 있다"고.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정치적인 평가를 떠나 정통 외교관으로서 한 길을 걸어온 길이나 생전에 보여준 검소함은 존경할 만하다. 지난해 10월22일 타계한 최 전 대통령이 거주한 서울 마포구 서교동 자택에는 연탄 보일러, 흰 고무신, 30년 된 ‘골드스타’ 상표 라디오, 50년이 넘은 ‘나쇼날’ 선풍기, 재활용해서 쓰고 또 쓴 플라스틱 이쑤시개 등이 고스란히 있었다. 대지 108평, 건평 97평이라는 이 집은 계속 연탄보일러를 써왔다고 한다. 979년 최 전 대통령이 국무총리로 재직하던 시절 2차 오일 파동이 있었는데, 광 시찰을 가서 만난 강원도 탄광 광부들을 보고서는 “나만이라도 끝까지 연탄을 때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평생 지킨 것이다.
업체 직원들은 이사할 때 주의할만한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한번은 집주인과 함께 열심히 짐을 포장하고 있는데 수도업체에서 나왔다는 한 남자가 들어왔다고 한다. 그 남자는 들어오자마자 집안을 돌아다니면서 수도꼭지를 죄다 틀어놓는 등 정신을 쏙 빼놓았다. 다들 그런가 보다 하고 일을 계속했는데 어느 순간 그 남자가 없어졌고 집주인의 가방도 함께 사라졌다고 한다. 정신 없는 틈을 노린 간 큰 도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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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그들에게 핍박의 계절이다. 농부의 눈에 띄어 삶을 마감할 수 있다. 그 이름에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뭔가 좋지 않은 것, 해로운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강인한 생명력의 표상으로 여겨준다면 그나마 고마울 따름이다. 잡초. 무익하고 해롭기만 한 걸까. 전문가들은 보잘 것 없고 쓸모없어 보이는 잡초도 나름대로 존재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얘기한다. 환경과 생태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다는 것이다. 새로운 작물을 육종하거나 유용한 성분을 뽑아내 농약과 의약, 향신료 등에 이용되며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작물과 잡초, 그 경계선은=잡초는 원하지 않는 장소와 시기에 자라는 식물로서, 경작지에 인간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재배하는 작물 이외의 식물을 지칭한다. 가꾸지 않더라도 자라나서 농부를 귀찮게 하고 힘들게 하는 여러 종류의 풀이다. 15일 한국잡초학회와 농업과학기술원에 따르면 지구상에 생육하는 식물 3만여종 중에 농경지의 잡초는 1600여종에 이른다. 국내에는 비농경지 등의 잡초를 포함해 400여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논과 밭에서 주로 피해를 주는 잡초로 각각 20여종과 40여종이 꼽힌다. 잡초는 햇볕, 수분, 양분 등과 생육 공간을 놓고 밭 작물, 논 작물과 치열한 경합을 벌이면서 피해를 준다. 생장억제물질을 분비해 주변 식물을 고사시키거나 생육을 방해하기도 한다. 잡초는 각종 해충이 겨울을 나는 서식처가 될 뿐만 아니라 가축의 먹이가 되어 고기와 젖의 품질을 떨어뜨린다. 잡초 향 때문에 우유와 계란 등에서 악취가 날 수도 있다고 한다. 잡초로 인한 피해액이 전체 농업생산액의 10∼15%에 이를 것이라는 추산도 있다. 잡초는 강인한 생명력이 특징이다. 나쁜 환경조건에서도 잘 자라 가볍고 많은 종자를 생산해 주변에 퍼뜨린다. 길가와 논둑, 들판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질경이 씨앗은 말 그대로 수레바퀴 앞에서도 살 수 있다는 뜻에서 차전자(車前子)로 불릴 정도이다. 하지만 잡초는 농경 중심의 개념일 뿐이다. 잡초의 개념을 엄밀히 적용하면, 무밭에 난 배추, 보리밭에 난 옥수수, 심지어 더덕밭에 난 산삼도 잡초에 해당한다. 벼를 비롯한 콩과 밀 같은 작물이 애초 야생의 풀이었듯, 잡초도 활용하면 작물도 되고 야생화도 될 수 있다. ◆새로 주목받는 잡초=잡초가 인간에게 꼭 해로운 것만은 아니다. 먼저 조수와 미생물의 먹이와 서식처로 이용된다. 경사지가 많고 집중호우와 겨울바람이 심한 우리나라에서 빗물이나 바람으로 흙이 쓸려 내려가는 수식(水蝕)과 풍식(風蝕)을 막아줘 국토를 보전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토끼풀과 병꽃풀, 누운주름잎 등은 지표면을 덮어 강우로 인한 토양 유실을 막는 데 톡톡히 기여한다. 한국잡초학회를 비롯해 학계에서는 잡초의 효용성에 주목해 잡초 생태와 분포 등을 연구해 자원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생물학과 농업기술의 발달로 농업경영학적 관점에서 벗어나 환경과 생태 보전 측면에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수생 잡초인 갈대와 부레옥잠, 부들, 생이가래, 꽃창포, 물냉이 등은 인공 습지와 호소, 연못 등의 수질 개선과 정화에 효과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생활하수 처리에 갈대를 활용할 경우 생물화학적산소요구량(BOD)을 95%, 화학적산소요구량(COD)을 79%, 총질소(T-N)를 70%, 총인(T-P)을 78% 제거할 수 있다는 일본 국립환경연구소의 조사 결과도 있다. 시화호 상류에 갈대습지가 조성된 것도 흘러드는 오염 하천수를 정화하기 위해서다. 부레옥잠과 물수선 같은 잡초도 질소나 인산을 비롯한 카드뮴, 니켈, 페놀계의 독물질을 다량으로 흡수해 수질을 정화하는 능력이 있다. 도꼬마리와 꿀풀, 개구리밥, 쇠무릎, 한련초, 사철쑥, 익모초, 질경이 등은 한약재로 쓰인다. 월년(越年)생 잡초인 얼치기완두와 살갈퀴는 제초제를 쓰지 않고서도 다른 잡초가 자라나지 않도록 하는 친환경 농법에 활용된다. 늦은 여름인 8월 이후 싹을 틔워 겨울을 난 뒤 생육해 농작물이 한창 자랄 6, 7월 소멸하는 월년생 잡초의 특성을 이용한 것이다. 한국잡초학회장을 지낸 변종영 충남대 교수는 “잡초는 같은 종속 작물의 유전자은행 역할을 하고 언젠가 작물로 바뀔 잠재성을 지니고 있다”면서 “특히 지역환경에 내성이 강한 잡초는 병충해 내성 품종을 만드는 데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희준 기자
단단히 뿌리내려 뽑기가 어렵고 뽑아서 내버려두면 다시 자랄 정도로 생명력이 강하다. 어린 순을 나물로 먹기도 하며 한방과 민간에서는 장을 깨끗하게 하고 피를 맑게 하는 약재로 쓰인다. 야산이나 운동장, 공장부지, 도로변 등 비농경지에서 자라는 일년생 잡초는 바랭이, 왕바랭이, 강아지풀, 개비름, 쇠비름, 개여뀌 등을 들 수 있다. 외래잡초로는 미국개기장, 미국자리공, 달맞이꽃, 엉겅퀴, 서양민들레, 미국가막사리 등이 있다. 박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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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살 종혁이는 강원도 정선군 가수리 가정마을에 삽니다. 마을 뒷편은 백운산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앞으로는 동강이 흐릅니다. 아래쪽 영월읍에서 넘어가는 고성안내소, 북쪽 정선읍에서 광하안내소를 지나 차량 2대가 간신히 비켜지날 수 있는 구불구불 도로로 한참을 달려야 하는 곳입니다. 이 도로도 지난 2000년 6월5일 동강댐(영월댐) 건설이 백지화한뒤 일부 넓히고 일부 포장한 것입니다. 그 전까지는 그냥 강변 자갈밭에 오랜 세월 쌓인 발길의 흔적이 그냥 길이었습니다.
마을에는 2가구가 삽니다. 종혁이와 부모님, 그리고 이웃에 아저씨 부부와 고3 형이 삽니다. 얼마 전에 서울에서 내려온 이웃도 있긴 한데, 아직 집을 짓질 않았습니다. 정선초등학교 가수분교 2학년생인 종혁이가 학교를 가려면 강을 건너와야 합니다. 평소엔 바지를 걷어붙이고 물이 얕은 곳으로 건넙니다. 하지만 비가 오면 어른이 쪽배로 건네줘야 합니다. 노를 젓는 그런 배가 아닙니다. 우기에는 강물이 세차 노를 저어 건널 수 없습니다. 마을 쪽에서 강 건너편 도로쪽으로 길다랗게 밧줄이 늘어뜨러져 있습니다. 배에 올라탄 어른이 줄을 밧줄에 걸어 조금씩 조금씩 당겨 건너는 식입니다. 이웃집 고3 형이 한 번은 줄을 놓쳐버려서 쪽배를 탄 채 아래로 한없이 떠내려가다가 구조됐답니다. 동강소년 종혁이는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요? 다리나마 빨리 만들어져 종혁이가 마음놓고 학교를 다닐 수 있길 바라봅니다. 박희준 기자 july1s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