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 쓰면 곤장 백대! - 세계일보 블로그
 구나 돈을 갖고 싶어하는 요즘과는 달리 돈을 싫어했던 시절이 있었어요.  조선 중엽에는 돈을 만들어도 사용하는 사람이 없었대요. 나라에서 만든 동전을 돈으로 여기지 않았던 까닭에서죠.

 조정에서 참다못해 암행어사와 같은 관리를 지방에 내려보냈어요.  효종 5년(1654년), 상평청(물가조절을 맡은 기관)은 ‘행전별장’이란 관리를 파견했어요. 그의 임무는 백성들에게 돈의 사용을 장려하는 일이었습니다. 백성들에게 무조건 엽전 반 냥(5전)을 갖고 다니게 한 뒤 이를 어기면 법에 따라 엄히 처벌했어요. 행전별장은 백성들을 불러 모아놓고 그 중에 엽전을 차지 않은 사람을 찾아내 채찍으로 마구 때렸어요. 그래서 돈 없고 힘 없는 백성들은 멀리서 별장이 나타나기만 하면 36계 줄행랑을 쳤답니다. 
 
 조선 초기엔 이런 일도 있었어요. 세종의 아버지인 태종은 우리나라 최초의 종이돈인 ‘저화’를 만들었습니다. 왕은 자기가 만든 저화를 널리 보급하려 애썼어요. 그래서 관리들이 저화 대신에 다른 것으로 대금을 지불하면 관직을 삭탈하고, 백성들에겐 재산을 몰수했답니다.  그 당시 옷감 재료인 ‘포’가 화폐 대신에 많이 사용되었어요.  포를 화폐로 쓰다 들킨 백성은 서울 종로의 길거리에 사흘간 서서 행인들의 조롱을 받아야 했어요. 또 곤장 백대를 맞고 벌금으로 저화 30장까지 내야 했어요. 나라에서 돈의 유통을 위해 할 수 있는 수단을 모두 동원한 셈이지요.

 그런데도 백성들은 여전히 저화를 싫어했답니다.  돈보다 쌀이나 포로 값을 치르려고 했어요. 저화가 돈으로서 일정한 값어치를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신뢰를 얻지 못한 돈은 백성들에게 한낱 쇳덩이나 종이 조각에 불과했던 거지요.

 

 


 우리 돈 5000원권과 1000원권을 자세히 살펴보면 불로초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인 1983년에 처음 지폐에 등장했어요. 실제 있지도 않은 전설 속의 불로초가 왜 우리 돈에 실렸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그 내막은 이렇답니다. 당시 한국은행은 우리 지폐의 디자인에 대한 전면 개편작업을 단행했어요. 새 지폐 디자인의 주제는 조선시대 문신들이 가슴에 차고 다니는 ‘흉배’로 정해졌습니다. 화폐 인물의 주인공인 율곡 이이와 퇴계 이황이 문신이기 때문에 모두 흉배를 차고 다녔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 지요.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조선시대 문신들의 흉배에는 장수를 축원한다는 뜻에서 십장생(산,물,해,불로초,사슴,구름,학,대나무,거북,소나무)의 수를 새겼다고 해요. 물론 불로초도 그중의 하나죠. 그런 연유에서 한국은행은 5000원짜리와 1000원짜리 돈에 구름, 산, 사슴 등의 십장생을 그려넣으면서 불로초 그림도 함께 실게 되었어요. 

 이런 영생의 소망은 달러화를 비롯한 외국 화폐에도 종종 발견되고 있어요. 달러 뒷면에는 13층의 피라미드와 신성한 눈이 그려져 있답니다. 일설에 의하면 피라미드는 물질계와 천계를 이어주는 건축물이며, 13은 초월을 상징하는 숫자라고 합니다. 또 빛을 뿜어내는 신비스러운 눈은 전지전능한 신의 눈을 뜻한다고 해요.


 독수리의 왼쪽 발톱이 잡고 있는 13개의 입이 달린 월계수 줄기는 고대 유대교의 신비주의를 상징하고 13개의 화살은 지구가 13년간 겪게 될 변화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1935년 신비주의자였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과 헨리 월레스 농무장관의 주도로 이런 문양이 지폐에 실렸답니다. 21세기 과학의 시대에도 다양한 기복신앙의 요소들이 지폐에 담겨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지 않나요?



 


                                          
 
 제주도 서귀포시가
 진시황의 불로초 전
 설을 재현하기 위해
 개최하는 축제 행사
 의 모습
   




 영생불사는 아주 먼 옛날부터 인간들의 간절한 소망이자 욕망이었어요. 영원히 살기를 갈망했던 중국의 진시황은 불로장생의 비약을 찾아 천하를 헤맸죠. 기원전 228년, 황제는 서복에게 동방의 나라로 가서 불로초를 구해오라고 명령했어요. 
 
 서복은 선남선녀 3000쌍을 뽑아 비단옷을 입혀 함께 길을 떠났어요.  동방의 나라에 도착한 서복은 지리산과 한라산 등지를 돌아다녔어요. 서복이 거쳐간 고장에는 그의 여정에 얽힌 전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답니다. 하지만 황제가 그토록 바라던 신비의 약초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어요. 


 경남 남해 금산에는 ‘서시(서복의 별칭)가 일어나 일출을 보고  예를 올렸다’는 글씨가 새겨진 마애석각이 있죠. 제주도 정방폭포의 암벽에도 ‘서복이 이곳을 지나가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어요. 서귀포란 지명도 따지고 보면 서복과 깊은 연관이 있지요.  서귀포의 뜻이 ‘서씨 성을 가진 사람이 귀향한 항구’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서씨의 전설을 가진 서귀포시는 중국 용구시와 공동으로 서복 일행의 불로초 이야기를 재현하는 축제행사를 매년 10월 열고 있어요.


 이런 장생불사의 소망은 지금 우리 지폐에도 생생하게 담겨 있어요. 우리 돈 5000원권과 1000원권에 불로초 그림이 그려져 있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닌가요?  왜 이런 그림이 실렸을까요? 지폐를 꺼내 어느 것이 불로초인지 직접 살펴 보세요. 해답은 다음번에 글과 그림을 함께 올리면서 알려드릴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