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의 전성시대 - 세계일보 블로그

카테고리 '세계 돈 여행'에 해당하는 글 2건

 
담배 잎
담배 꽃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해버린 담배에게도 전성기가 있었습니다. 옛날 미국에서 담배는 단순한 기호식품이기 보다는 돈 그 자체였어요. 1642년 버지니아 의회는 담배를 법정 통화로 지정했어요. 모국인 영국이 금화 반출을 금지해 통화부족이 발생하자 식민지 정부가 특산품인 담배를 공식 화폐로 전격 ‘발탁’한 것이었죠. 담배만이 유일한 화폐였고 금화로 대금을 지불하는 행위는 되레 위법으로 간주되었어요.

 그 당시 젊은 여자들이 버지니아의 식민지 정착자들의 배우자로 많이 수입되었습니다. 처음에 담배 100파운드 가격이 매겨졌던 여성들은 수요가 급증하자 가격이 150파운드로 껑충 뛰었어요. 어느 작가는 담배화폐로 아내를 맞아들이는 남성들의 흥분된 광경을 생생하게 기록으로 남겼어요. 

 “기적소리를 내며 런던으로부터 배가 항구에 도착했다. 배에는 아름답고 정결한 여성들이 타고 있었다. 이들을 기다리던 젊은 남성들은 팔에 최상품 담배를 한 다발씩 들고 급히 배쪽으로 뛰어갔다.”

 법정화폐인 담배의 인기가 치솟자 부자의 꿈을 안고 ‘돈’을 심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어요. 집집마다 담배를 재배한 탓에 시중에 돈이 넘쳐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돈’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 결과 담배의 구매력은 형편없이 떨어졌어요. 돈의 과잉공급을 우려한 버지니아, 메릴랜드, 캐롤라이나 3개 주는 1년간 담배 생산을 중단한다는 협정을 맺기에 이르렀지요. 하지만 협정 후에도 담배의 폭락세는 멈추지 않았어요. 그러자 성난 사람들이 떼를 지어 담배공장을 파괴했어요.


거의 300년이 흘러 20세기 독일에서 담배는 다시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가공되지 않은 예전의 잎담배와는 달리 이번에는 맵시있게 몸을 단장한 궐련(종이로 말아 놓은 담배)이 그 자리를 대신했어요. 나치의 패색이 짙어지자 독일 국민들은 인플레이션으로 구매력을 상실한 마르크화를 불신하고 ‘담배 화폐’에 높은 가치를 부여했어요. 흡연가이든 비흡연가이든 동일한 가치로 담배를 받아들였지요. 전쟁의 공포를 이겨낸 사람들에겐 담배의 해독은 그저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았어요.


 미국은 프랑크푸르트에 공식적인 독미 담배교환소를 설치했습니다. 1947년, 미국에서 1달러도 되지 않던 담배 한 갑이 이 교환소에선 2달러50센트에 거래되었어요. 미 점령군들은 본국으로부터 담배를 우송해 이 교환소에서 비싼 값에 팔았어요. 암 달러상이 호황을 누렸고 떼돈을 번 미국 장병들도 많았대요.


 담배가 귀하다 보니 버려진 꽁초들을 모아 ‘화폐’로 만드는 일도 흔히  있었어요. 점령지구 고급관리사무소의 화장실에는 ‘담배 꽁초를 버리지 말 것’이란 안내문구가 붙었다고 해요. 화폐 제조를 위해 부지런히 꽁초를 주워 모으는 사람이 있었던 거지요.


담배는 다루기 쉽고 낱개로 거래할 수 있는 편리함을 지니고 있었어요. 한 개비의 궐련은 훌륭한 잔돈이고, 한 갑(20개비)이나 한 보루(200개비)는 고액 화폐와 다름 없었죠. 그러나 담배는 국가에서 찍어낸 화폐와는 달리 발행기관으로 결코 되돌아오는 법이 없어요. 농장과 공장에서 끊임없이 생산돼 그저 애연가의 입에서 연기로 사라질 뿐이지요.




흑인 노예를 해방시킨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 링컨의 마지막 눈을 감긴 것은 저격범의 총알이 아니었어요. 미국의 영웅을 쓰러뜨린 것은 총알이었지만 이승의 ‘커튼’을 내린 것은 바로 50센트짜리 은화 두닢이었습니다.

1865년 4월14일, 링컨은 광신적 남부지지자인 배우 존 부스에게 피살되었어요. 밤 10시 무렵, 저격범은 포드 극장에서 관람하던 링컨에게 다가가 데린저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어요.
'탕, 탕, 탕'
조용하던 극장 안에 총소리가 울려퍼졌습니다. 링컨은 왼쪽 머리를 맞아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극장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어요.

링컨은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고 전국에는 비상사태가 선포되었습니다. 그는 간간이 신음소리를 내며 9시간이나 버텼어요. 부인 메리 여사가 침대 옆에 앉아 그의 얼굴에 입을 맞추고 연신 이름을 불러댔어요.

다음날 아침 7시, 링컨의 신음소리가 잦아지자 국방장관 스탠턴은 “이제, 이 분은 역사 속으로 가셨습니다”라고 울음섞인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링컨의 손을 잡고 있던 군의관 릴은 그의 눈꺼풀 위에 50센트 은화 두닢을 올려놓았어요. 죽은 자의 눈 위에 돈을 얹어놓은 미국의 풍습에 따른 것이었지요.

이처럼 사람이 죽었을 때 동전을 이용해 죽은 이의 눈을 감기는 일은 미국과 영국 등 서양에서 오래전부터 풍습으로 전해져 내려왔어요. 죽은 사람의 눈을 빨리 감겨주지 않아 죽은 이의 눈에 산 사람의 상이 굳어지면 그 사람에게 나쁜 일이 생긴다고 사람들은 믿었던 거죠. 고고학자들은 2세기경에도 죽은 이의 눈을 감기기 위해 동전을 사용했다고 증언하고 있어요.

장례 역사학자인 파렐에 따르면 1880년 이전 미국에서는 시신을 널빤지로 싸서 두개의 의자 사이에 놓고 하녀들로 하여금 시신을 깨끗히 하도록 했답니다. 이 때 하녀들은 동전을 죽은 이의 눈꺼풀 위에 놓아 눈을 감겼다고 해요.

‘티끌로 변하는 죽음, 시신에서 무슨 일이 생기나?’의 저자인 아이저슨은 “이런 관습이 오늘날에도 계속되는 이유는 돈이 살아있는 사람에 못지 않게 죽은 이에게도 매우 중요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미국에 사는 아프리카계 흑인들은 오늘날에도 죽은 이의 손에 동전을 쥐어 줌으로써 죽은 이가 저승에 들어가는 비용으로 쓰도록 하고 있어요. 그들은 동전을 묘지 주위의 나무에 놓아두기도 합니다.

죽은 사람에게 노잣돈을 쥐어주는 풍습은 그리스와 로마시대에도 널리 행해졌다고 합니다. 유가족들은 죽은 이의 입에 동전을 얹어주었어요. 이승을 떠나는 영혼이 저승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승과 저승 사이에 있는 스틱스강을 건너야 하는데, 돈으로 사공의 배삯을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이런 믿음은 기원전 6세기경 그리스인들이 즐겨 부른 노래에서도 잘 나타나 있어요.
“죽은 사람의 입에 배삯으로 오볼로스 은화 하나를 물려주면 뱃사공 샤론은 죽은 이를 조각배로 싣고 황천강을 건너게 해준다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의 고분에서도 자주 돈이 발굴되는 것도 비슷한 이유라고 생각해요. 이승에서 소중한 돈이 사후에도 가장 요긴하게 쓸 수 있는 물건으로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