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롱베이를 가다 - 세계일보 블로그
하롱베이를 가다 [기본카테고리] 2004/12/08 13: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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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을 기다리는 낙원                                   

                                                              트남 하롱베이

 

 짙은 해무는 바다를 삼키고 있었다.
 여명이 구름사이로 얼굴을 내밀어도 바다는 안개에 파묻혀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이따금씩 정적을 깨는 뱃고동 소리만이 여기가 뭍의 끝임을 알려줄 뿐이었다.
 3000여개의 크고 작은 섬들을 잉태한 그 바다와의 만남은 마치 새색시를 대하듯 마음 졸이는 기다림과 설레임의 끝에서야 이뤄졌다.
 10월 하순에 찾은 베트남 북부 해안 하롱베이(下龍灣).
 장삼이사 모두 살면서 한 번은 꼭 보아야 한다고 말하는 절경이다. 환한 햇살이 모든 해무를 물리친 다음에야 하롱베이는 속살을 내보인다.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에 점점이 솟은 섬들이 수평선까지 이어지고 또 그 꼬리를 이어간다. 한 눈에 다담을 수 없는 그 크기에 일단 압도된다. 베트남 사람들이 중국의 절경으로 불리는 지린(桂林)을 하롱베이의 축소판 정도로 격하하는 자부심에 고개가 절로 끄덕거린다.
 하롱베이가 주는 첫 인상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섬들이 바다를 병풍처럼 싸고 있어 수백개의 크고 작은 호수가 모인 듯한 착시감을 준다.  멀리 대양의 심술 궂은 파도들이 섬들에 막혀 감히 접근하지 못해 물살은 잔잔하다 못해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고요함마저 선사하기 때문이리라. 물살 위를 미끌어지듯 가는 전통배 '탠난'은 풍경화의 오부제가 된다.
 탠난을 타고 1시간 정도 바다로 나가면 바다에 솟은 섬들의 자태를 눈 앞에서 감상할 수 있다. 전형적인 동양의 산수를 보이는 풍경을 뒤로 하며 하롱베이로 향하는 갑판에서 맞이한 단상은 남다르지 않았다. 
 
 
 *슬픈 인도차이나=베트남은 한국과 과거의 굴곡이 유사한 나라다. 강대국 중국으로부터 수많은 침략을 받았고 근대에 들어서는 식민지로 전락한 점이 그러하다.  아울러 체제가 갈리면서 남북전쟁을 치르기도 한 것도 같다.
 베트남은 972년까지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 때문에 하롱처럼 베트남 북부에는 중국의 색채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하롱도 하룡(下龍)의 베트남 발음이다.
 하롱베이는 이런 전설을 가지고 있다. 먼 옛날 베트남이 외적(중국)의 침입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 하늘의 용이 내려와 여의주로 적을 물리쳤다. 그리고 여의주는 크고 작은 3000여개의 섬으로 변했다. 섬으로 변한 여의주는 여전히 베트남을 지키고 있다고 믿는다. 슬픈 호국전설인 셈.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하롱베이가 세상에 알려진 것도 아이러니하다.  식민지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핀 애절한 사랑을 그린 영화 '인도차이나'가 소개되면서다. 사실 인도차이나(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라는 단어는 베트남인에게 치욕적인 말이다. 옛 프랑스 식민지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거니와 인도와 차이나(중국)의 중간이라는 단어다. 이는 인도와 중국을 영국에 선점당했다고 발을 구르던 열강의 탐욕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용을 기다리는 낙원=하롱베이가 한국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모 항공사 2년전 CF가 방송된 이후다. 베트남 전쟁 참전국인 한국에 세계적인 명소가 다소 늦게 알려진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하롱베이를 찾는 한국인들은 이구동성으로 탄성을 자아낸다. 하롱베이의 매력이 산수화같은 정적인 감흥에 그치지 않고 수천년 동안 외적에 맞서 스스로를  지킨 베트남 민족의 자존과 강인함을 함께 맛볼 수 있다는 정서적인 공감대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하롱베이의 섬은 아름다운 자태 이면에 고단한 역사의 숨결와 항전의 정신이 곳곳에 간직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드물다는 석회암 종유석으로 이뤄진 천궁동굴과 같은 섬에 위치한 목두동굴(한 장수가 중국을 물리친 내력을 담은 동굴)이 대표적이다. 베트남 전쟁때는 이 하롱베이가 피난처로 이용된 것도 이런 역사적 경험이 바탕이 되었으리라.  그래서인지 베트남 사람들은 하롱베이를 나라를 지켜줄 신성한 장소로 여긴다. 그렇다치더라도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섬 곳곳에 새겨진 호치민의 형상은 그 정신을 이해하더라도 세계적인 문화유산에 남겨진 흠이다.
 하지만 이제 낡은 체제의 옷을 조금씩 버려가며 과감히 개혁개방의 길을 택한 베트남. 과거의 상처에서 빠르게 벗어나며 예전의 모습들을 되찾는 베트남의 힘은 바로 이런 자연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과거 나라를 지킨 용들이 재림하여 나라를 융성하게 만들어 주기를 바라는 베트남인들. 돌아오는 선상 갑판에서 맞은 해풍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속삭임을 이방인은 느꼈다.                                                                                

  /하롱베이(베트남)=하동원 기자


 @하롱베이 개요
 베트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립공원으로 전체 국토 중 1553 평방 킬로미터를 차지한다. 하롱베이 국립공원은 만을 차지하고 있는 3000개 이상의 섬들로 이뤄졌다. 이 국립공원의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 이 세계적인 유산에 대한 보존 노력은 도만카씨(Mr. Do Manh Kha)로부터 시작된 문화재 수집이 단초가 되었다. 많은 문화재를 수집한 도만카는 이 국립공원 안에 박물관을 짓기위해 노력했고 베트남 전쟁 중인 1962년 마침내 그의 꿈이 실현되었다.  하롱베이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것이다. 32년 후 1994년에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선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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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씬 짜우! 베트남
 
 베트남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에피소드식으로 적어 볼게요. 씬 짜우는 안녕하세요의 현지어랍니다. 베트남어는 6성(중국의 4성 보다 복잡함)으로 음의 고저장단에 따라 뜻이 달라집니다. 씬 짜우도 마찬가지로 우에서 액센트를 낮춰야 인사가 되지만 끝을 올리면 '죽을 주세요'라는 말이 됩니다.


 

 &다이어트의 천국 베트남.

  한국의 여성들이라며 귀가 번쩍 뜨일 얘기지요. 베트남에는 진짜 살찐 여성이 없답니다. 하나도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여성이 군살이 없는 몸매를 유지하고 있더군요. 날씬한 몸에  하늘하늘거리는 아오자이를 입고 있으니 외국 남성들의 넋을 빼놀만 하지요.
 필자가 잠시 살펴본 바로는 먹거리의 영향이 큰 것 같더군요. 베트남은 물이 좋지않아 대부분 차를 상용하고 있답니다. 주로 먹는 것이 녹차인데 여기에 지방을 분해하는 성분이 많다더군요. 그리고 베트남 여성들은 많이 먹지를 않는 답니다(여기에 한국 여성들이 주목해야 할 듯).
 게다가 농업국가의 명맥을 줄기차게 이어오는 덕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도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것 같더군요.  늦어도 오후 10시에 잠이들고 아침 4시면 깨는 생활습관도 몸매유지에 도움이 되는 것 같더군요. 그리고 일년에 딱 하루만 쉬고(10월 20일 여성의 날만 일을 하지않음) 열심히 생업(?)에 종사하는 덕에 살찐 틈이 없다는 얘기도 들리더군요.
 하여튼 살 때문에 고민이 많은 한국여성에게 베트남 여행 강추!!!

 


 &베트남의 뒤웅박 박찬호!
 
 베트남에서 인기있는 스포츠는 단연 축구입니다. 야구란 종목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한국에서야 10월이면 한국시리즈에 열광하고 가을의 고전이라는 미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에 깜빡 넘어가지만 베트남에서는 관심조차 없습니다. 필자가 베트남을 방문했을때 보스턴이 양키스를 극적으로 꺾고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지만 지역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안실리더군요.
 이런 실정인데 박찬호가 베트남을 찾았더랍니다. 한 기업이 홍보차원에서 연예인 몇몇과 박찬호를 베트남을 불렀는데 여기서 박찬호는 인생 최대의 왕따 신세를 당합니다. 홍보행사에서 손지창 등 연예인들에게 베트남인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는데 정작 박찬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더랍니다. 크게 놀란 기업의 행사담당자가 베트남인을 불러 '(박찬호를 가리키며) 저 사람 진짜 모르냐'라고 물었더니 '매니접니까'라고 되묻더라고. 이에 박찬호는 패전의 멍에를 쓸때보다 더 처량한 모습으로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채 어깨를 떨구고 쓸쓸히 호텔로 퇴장했다고...
 여기서 한류열풍의 일면을 소개할게요. 현재 베트남에서는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높습니다. 유리구두에 이어 대장금이 절찬리에 상영되고 있지요. 그래서 베트남에서 인기있는 배우도 드라마의 출몰에 따라 바뀌지요. 2~3년전에는 장동건,김남주가 최고의 주가를 올렸지만 지금은 소지섭,김현주가 뜨고 있답니다.


 

 &뒤를 보지 않는 베트남 사람들
 
 베트남은 가히 오토바이의 천국으로 통한다. 인구 8000만명 가운데 10명중 한 명 꼴로 오토바이를 가지고 있다. 800만대의 오토바이가 도로위를 굴러 다니고 있다. 그런데 베트남에서 운행중인 오토바이의 한결같은 특징은 백미러의 부재 내지 무시다. 즉 베트남 사람들은 백미러를 보지 않는다. 기껏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는 거울 정도로 사용한다. 왜 베트남 사람은 뒤를 보지 않을까. 이는 역사의 경험에서 나온 듯 하다. 베트남은 1000년에 가까운 중국의 지배를 받았고 또한 근대에 들어 프랑스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이후 공산화로 나라가 분열되고 결국 남북전쟁(베트남전)의 참화를 겪었다. 이런 과거사의 아픔으로 베트남 사람들은 돌아보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듯 하다. 또한 도이모이(개혁개방)정책을 쓰면서 화합을 중시하게 된 것도 한 요인으로 보인다. 등소평의 흑묘백묘론처럼 베트남에서의 개혁개방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에 좌고우면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는 듯 보입니다.  국부인 호치민의 '통일이 되면 남쪽 정치인을 처형하지 말고 교도소에서 순화시킨 후 풀어주라'는 세번째 유언이 지켜지는 것도 이런 화합의 정신이 주류를 이룬 것으로 해석될 수 있겠지요.
 어쨌든 베트남인들은 백미러를 보지 않습니다. 교통신호 체계가 없는 데다 각종 차량과 시클로 자전거 등이 무질서하게 차로를 넘나들어도 베트남 사람들은 앞만 보고 달립니다.  개방의 물결을 맞은 지 10여년 베트남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뒤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보이네요.
 

 

 &동(화폐)이야기

 베트남의 화폐는 동입니다. 국제표기로는 VND지요. 환율은 1달러에 약 1만5000동입니다. 한국에서는 환전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베트남에서는 동이 없어도 얼마든지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달러가 더 환대를 받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자국화폐에 대한 불신이 깊습니다. 그래서 동이 생기면 모아서 달러를 사거나 금을 사서 집안 깊숙히 묻어둔다고 합니다. 필자는 용감하게도 베트남 노이바이국제공항에 내려 50달러를 환전하는 우를 범했습니다. 물론 모든 상점이나 호텔에서 동을 받습니다. 쓰는 데 지장은 없지요. 하지만 베트남에 첫 발을 디디자 말자 '난 이곳이 처음이에요'라고 신고한 꼴이 됐으니...
 다시 동에 대한 얘기. 동은 동전없이 화폐만 통용되고 있습니다. 돈 가치가 낮기 때문이죠. 모든 동 화폐에는 호치민의 얼굴이 새겨져 있습니다. 요즘 베트남의 경제가 침체되어 인플레 조짐이 있답니다. 그래서 당국에서는 최고권인 50만동 화폐를 찍어내기에 이르렀습니다. 리디노미네이션 논의가 정작 필요한 곳은 한국이 아니라 베트남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여기서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피와 살이 되는 조언. 베트남의 물가는 쌉니다. 웬만한 물건은 다 살 수 있는 1달러 상인이 넘쳐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최근 물가가 많이 올랐습니다. 불과 2~3년전 물가를 듣고 갔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입니다. 또한 상인들도 약아져서 물건 값을 많이 부풀리지요. 물가수준이 서울이 세계 6위인데 하노이가 14위라는 통계가 있을 정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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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치민의 묘가 있는 호치민시의 바딩광장. 뒤에 있는 글은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
만세 만세!'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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