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선 차별받고 남선 밑바닥 삶

 

[탐사기획-잊혀진 국군포로]5회 가족의 비애

(5-1)탈북후 영사관 '문전박대'..입국해도 막노동판 전

 ◇6·25 참전 국군포로 가족모임과 납북자가족협의회 소속 회원들이 23일 남북 장성급 회담이 열린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 명월관 앞에서 국군포로의 즉각 송환과 유가족 보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종덕 기자
북한에 억류됐던 국군포로 아버지가 숨진 뒤 ‘아버지의 나라’를 찾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일반 탈북자로 간주될 뿐 다른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국군포로 가족들은 아버지가 이미 사망했을 경우 보상금 등 아무 혜택이 없다. 북한에서 ‘남조선 괴뢰군 포로의 자식’으로 낙인찍혀 차별대우와 함께 온갖 인권침해를 당했지만 아무런 보상이 없는 것이다. 또 국군포로 아버지와 함께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자녀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매한가지다. 북에서 차별대우로 제대로 교육받은 것이 없다보니 한국 사회에서도 막노동판을 전전하기 일쑤다.

◆국군포로 유가족 2, 3세들 100여명=현재까지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온 국군포로 유가족들은 1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2월 발족한 ‘6·25참전 국군포로 가족모임’ 관계자는 “북에서 사망한 국군포로의 2세가 처음 귀환한 것은 98년쯤이었다”며 “우리 모임 회원 대부분은 30대 중·후반인데, 3∼4년 전에 북한에 경제난이 심각했을 때 탈북한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군포로는 일흔이 넘는 고령이라 국경을 넘기 어렵지만, 2세들은 차별대우를 피해 중국으로 넘어왔다가 몽골, 베트남 등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해외 한국 공관부터 박대=국군포로의 아들 최성국(31·가명)씨는 99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 두 형제와 함께 북한을 탈출했다. 미리 연락한 삼촌들이 중국으로 건너와 주중 한국영사관에 함께 들어가 최씨가 국군포로 가족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영사관 직원은 편의를 제공하기는커녕 “자꾸 시끄럽게 하면 중국 공안에 신고하겠다”고 윽박질렀다.

최씨 일행은 할 수 없이 위조여권을 만들어 아버지의 나라에 입국해야 했다.

현지 공관의 이 같은 무관심 때문에 아예 국군포로의 유족이라는 것을 숨기고 입국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6월 몽골을 거쳐 입국한 서모(31)씨는 중국에 머무르는 동안이나 몽골의 한국영사관에서도 ‘국군포로의 딸’ 이란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그는 다른 탈북자들에 섞여 임시 여행자증명서를 받아 입국했다.

입국 후 국정원 조사를 받으면서야 작고한 부친이 국군포로란 사실을 털어놨다. 서씨는 “국군포로 유가족이라고 밝히는 것이 북한이나 중국에서나 전혀 도움이 될 게 없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책 전무=귀환한 국군포로 유가족들은 탈북자 대우를 받을 뿐 다른 혜택이 없어 제대로 직업을 구하지 못하는 등 불안정한 생활을 하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해 10월 6·25전쟁 중 북한에서 귀환하지 못하고 있는 국군포로의 재북 자녀 실태 파악과 지원 대책 마련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국방부 측은 ‘국군포로 문제의 실상과 대책’이란 책자를 공개하고 이 같은 내용을 밝혔지만, 현재까지 세부 일정이나 구체적인 계획이 나온 것이 없다.

◆국군포로 유골 갖고 온 가족=최근 가족들이 북한에서 국군포로의 유골을 갖고 입국한 경우가 3차례나 된다. 2002년 4월 백영숙(49)씨가 국군포로 아버지의 유골을 갖고 중국으로 탈출해 국방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국방부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산 사람은 도와줄 수 있어도 죽은 사람은 모르겠다”였다. 백씨는 탈북사실이 발각돼 북송되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년 만인 지난해 4월 유골을 모시고 입국했다.

지난해 10월 이연순(44)씨가 두 번째로 브로커를 통해 국군포로 아버지의 유골을 중국으로 갖고 왔다. 이씨는 중국에서 공안에 발각돼 숨겨놨던 유골을 빼앗기는 등의 진통 끝에 유골 일부만 갖고 한국에 입국했다. 올해 4월에는 이옥순(38)씨 자매 5명이 브로커를 통해 국군포로 아버지의 유골을 갖고 몰래 들어왔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국군포로 유해 처리와 관련한 법규조차 없다. 국군포로의 유해로 판명되면 관례에 따라 고향에서 노제를 지내고 영결식을 한 후 국립묘지에 묻힐 뿐이다.

지난해 귀환한 국군포로 김모(77)씨는 “국정원이 ‘앞으로 국군포로의 유해도 한국으로 귀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말뿐이었다”고 말했다.

이연순씨는 “정부가 아버지 유골을 갖고 오는 데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귀찮아했다”며 “국군포로의 유골을 가지고 입국한 이들은 살아 돌아온 국군포로에 준하는 보상을 하고 명예회복을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상받은 국군포로 2세도 어렵기는 마찬가지=국군포로인 아버지와 함께 귀환한 자녀들도 한국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마찬가지다. 제대로 교육받은 것이 없어 대부분 한국 사회에서 안정적인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1998년 국군포로 아버지와 함께 탈북한 김모(38)씨는 “탈북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며 “용역업체 전기실에서 월 87만원을 받으며 최하층으로 사느니 북에서 사는 것이 더 마음 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 세대는 판단력이 흐려서 탈북했을 것”이라며 “누나 두 명이 북에서 살고 있지만 여기 와서 제대로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탈북시킬 생각은 하지도 않고 있다”고 말했다.

2000년 귀환한 국군포로 박영기씨의 사위 임춘길(44)씨는 “아버지가 국군포로지만 북에서 돌아가셔서 장인가족과 함께 탈북했다”며 “포로 가족이라고 별도로 대우받는 것이 없어 공사판에서 일용직을 전전하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홍성일·최현태·김형구·김종수·엄형준 기자

specials@segye.com

 
](⑤-2)"포로귀환·유가족 처우 北측 눈치보지 말아야”
서영석 '국군포로 가족모임' 대표
“정부는 6·25 때 나라를 위해 싸우다 포로로 잡혀 귀환하지 못하고 북한에서 고된 삶을 살다가 돌아가신 분들의 한을 품고 한국으로 탈출한 유가족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합니다.”

‘6·25 참전 국군포로 가족모임’의 서영석(30·사진) 대표는 지난달 28일 “한국정부가 국군포로 귀환과 유가족들의 처우 문제와 관련해 북한의 눈치를 그만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2월 결성된 이 모임은 북한에 억류돼 있거나 사망한 국군포로 2, 3세 34명으로 구성됐다.

서씨는 “1953년 6월 김화지구 전투에서 포로가 된 아버지(서정헌)는 함북 무산광산 등에서 50년 동안 막노동을 하다 97년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는 자식들이 ‘남조선 괴뢰군 포로 자식’이라는 딱지가 붙어 차별을 겪을 때마다 죄스러워하셨다”며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할 때 출신성분 때문에 희망했던 사범대학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부친이 작고한 후 북쪽에서는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서씨는 98년 11월 어머니, 누나 2명과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건넜다. 한국에 입국하기 위해 중국 선양주재 한국영사관에 들어가 직원들에게 “국군포로 가족”이라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반응은 냉랭했다. 서씨는 그제서야 국군포로 유가족도 일반 탈북자나 다름없이 취급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실망했다. 그는 결국 다음해 위조여권을 사서 3개월 만에 입국할 수 있었다.

서씨는 “회원들은 부친의 명예 회복과 유해 귀환을 우선적으로 희망하고 있다”며 앞으로 사망한 국군포로 유가족들의 처우 개선과 북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생존 국군포로 500여명의 조속한 귀환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트랙백 주소 : http://blog.segye.com/tb.php?blogid=htchoi&id=6410
누구를 위항정부? | 2005/09/02 14:06 | DEL | REPLY

정부는 정책까지 바꿔가며(정착금1/3축소=남한행 포기정책) 탈북난민을 막기에 급급할까?? 서독은 국가특별법으로 탈북난민을 520만명을 도왔다 베를린장벽을 넘다가 매년 수백명이 총살 되거나 감옥갔고 주변국(헝가리..)10만부로커.종교단체.대사관등이 정부의적극지원으로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