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나면 무슨소용… 국군포로 대책 세워달라”

 

[탐사기획 잊혀진국군포로]6회 그들이 사라지기 전에

(6-1)귀환포로들 조속해결 촉구


5~6년 지나면 모두 역사속으로 사라져


6·15 공동성명땐 한마디 언급안해 분통

 ◇6·25 당시 중국군들이 사로잡은 국군포로들을 어디론가 이송하고 있다. 이 포로들 중 상당수는 다시 한국땅을 밟지 못하고 숨지거나, 북한에 아직도 억류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진은 59년 중국당국이 펴낸 ‘영광스러운 중국인민지원군’ 제하의 책자에 실린 것이다. 눈빛출판사 제공
한국에 정착한 귀환국군포로들은 북한에 억류 중인 생존 포로문제에 대한 한국정부의 무관심과 무책에 분통을 터뜨렸다. 6·25 당시 20대 젊은이였던 포로들은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대부분 포로수용소와 광산의 고된 노역으로 숨졌고, 살아남은 이들은 거동조차 불편한 70대 후반의 노인들이 돼버렸다. 그러나 이들조차 5∼6년만 지나면 사실상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져, 국군포로 문제는 영원히 과거사로 묻히고 말것이라는 것이 귀환포로들의 주장이다.

[관련기사]귀환포로가 본지에 보내온 호소문

[관련기사]전문가 좌담

◆국군포로 얼마나 있나=취재팀이 지난 14일 국방부로부터 정보공개청구 결과를 통보받은 내용에 따르면 정부는 542명의 국군포로가 생존해 있는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이는 귀환포로와 탈북자의 증언을 토대로 한 것이어서 실제 북한에 남아있는 포로생존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본사 취재팀이 32명의 귀환포로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만 해도 최근까지 북한 16개 광산지대에 600여명의 포로가 생존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 통일부의 지난 7일 정보공개자료에 따르면 6·25 당시 실종된 국군은 4만1971명. 정부는 이 가운데 포로교환 시 귀환자 8726명과 유가족 신고 및 관련자료에 의해 전사처리한 1만3836명을 제외한 1만9409명을 실종자로 추정하고 있다.

유엔군사령부는 1953년 8월 유엔에 제출한 ‘휴전에 관한 특별 보고서’를 통해 6·25로 인한 국군 포로 및 실종자수를 8만2318명으로 집계했다. 그러나 6·25 전체를 통해 북한 측이 송환한 한국군포로는 모두 8726명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많게는 7만∼8만여명의 포로가 송환되지 못한 것으로 학계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정부, 해결 의지가 없다=귀환포로들은 대부분 정부가 국군포로 송환문제 해결에 의지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귀환포로 32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87.6%(28명)가 ‘정부가 이 문제 해결에 의지가 없다’고 답했다. 단지 응답자의 6.2%(2명)만이 ‘한국정부가 실상을 정확하게 알고 있으며, 적극적인 해결의지가 있다’고 긍정적인 답변을 했을 뿐이다.

귀환포로 고을원(74)씨는 “정부가 생존 국군포로가 많다는 것을 잘 아는 것 같은데 관심이 없다”며 “6·15 남북공동성명 때도 포로 얘기는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구걸해서 먹고 사는 나라인데도 이인모씨가 북송됐을 때 환영사업이 북한 땅을 다 흔들 정도였다”며 “한국정부는 나라를 위해 목숨걸고 싸웠던 포로들에 대해 그저 전역식이나 해주고, 퇴직금이나 주고 나면 모든 것을 다했다는 식”이라고 말했다. 함북 회령시 학포탄광에서 일하다 지난해 6월 탈북한 오진상(80)씨는 “내가 일하던 탄광에 500명 가까운 포로가 있었는데, 대부분 죽고 다른 곳으로 끌려가 23명밖에 남지 않았었다”며 “이분들이 모두 돌아가시기 전에 포로송환 문제가 해결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귀환포로 이순옥(77)씨는 “북한에 있을 당시 한국정부가 구출해주리라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며 “한국정부가 북한에 끌려다니는 것을 알고 있어 너무 원망스러웠다”고 말했다.

◆북한에 정식으로 문제제기해야=이들은 ‘국군포로 송환문제 해결과 관련, 가장 바람직한 해결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응답자의 50%(16명)가 ‘남북대화 시 국군포로 송환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해 해결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다음으로는 40.7%(13명)가 ‘국군포로의 3국을 통한 탈북 지원’이라는 현실적인 방안을 꼽았다. 국제기구를 통한 포로문제 해결에 대해서는 단지 3.1%(1명)만이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2000년 8월 탈북한 유모(76)씨는 “현정부가 과거사 규명한다고 하는데 과거사 규명도 중요하지만 현재사 처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국군포로들이 살아 있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과거사가 돼 버린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서병렬(74)씨는 “자기 나라 사람에 대한 문제인데 한국은 그런 건 영 못하는 것 같다”며 “북한에 식량도 주고 비료도 주는데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면 듣는 사람도 좋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2년 한국에 입국한 최기호(77)씨는 “북한은 국군포로의 탈북이 심해지면 이들의 거주지를 바꿔버려 찾기가 어려워진다”며 “남북한 접촉을 통해 국군포로와 그 가족의 문제를 협상의 주요 의제로 다루고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2년 2월 귀환한 이삼출(76)씨는 “국군포로가 중국으로 탈북했다가 한국정부가 도와주지 않아 다시 북한으로 압송된 경우도 있다”며 “가슴 아픈 일이다. 그렇게 고생했는데···, 정부가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홍성일·최현태·김형구·김종수·엄형준 기자

specials@segye.com

 
 
(6-2)귀환포로가 본지에 보내온 호소문
조국위해 나섰다 북한서 평생 고통 정부서 책임져야
북한에 있을 때인 1993년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 노인이 한국의 인도주의적 시책으로 판문점을 통해 북송되는 장면을 TV로 지켜봤습니다. 북한은 당시 이씨가 정치적 지조를 굽히지 않고 여러 해 동안 힘든 생활을 이겨냈다고 선전했습니다. 그에게는 ‘혁명의 불사조’라는 수식어가 붙었으며, 북한 주민 최대 영예인 공화국 영웅 칭호가 수여됐습니다. 대동강변의 별장도 제공됐습니다.얼마 후 이씨는 영웅칭호를 또 받아, 2중 영웅이 되었습니다.

2000년 10월에는 64명의 장기수가 북송됐습니다. 그때도 엄청난 환영행사가 열렸고 화려한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만약 장기수들이 국군포로들과 같이 지옥 같은 탄광에서 50년의 세월을 중노동으로 보냈다면 어땠을까요? 그들이 그렇게 성한 몸으로 살아 돌아갈 수 있었을까요? 수많은 국군포로들은 참으로 억울하게도 오랜 세월 사람대우조차 제대로 못 받으면서 고역을 치렀습니다.

늙고 병든 몸이 다 된 오늘까지도 그들은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슴을 치고 통탄할 일입니다. 정부는 누구 한 사람 이들의 송환 문제에 책임지고 나서는 사람이 없습니다. 북한의 ‘국군포로는 한 명도 없다’는 말이 거짓이라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난 오늘에도 정부는 생존 국군포로의 숫자나 세고 앉아 있으니 참으로 개탄할 일입니다.

이 일은 시급히 풀어야 할 중차대한 역사적 문제입니다. 우리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무슨 명분으로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보낼 것입니까? 1994년 조창호 소위가 처음 귀환한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그간 1년에 5명꼴로 50명의 포로들이 돌아왔습니다. 생존 국군포로 500여명이 자력으로 한국으로 탈출한다면 100년이 걸린다는 계산입니다. 그들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나라가 나서서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기를 간절히 호소합니다.


](6-3)전문가 좌담
"남북대화때 송환문제 핵심의제 다뤄야”
 ◇조창호 <탈북 국군포로 1호·예비역 중위>, 심구섭 <남북이산가족협의회 대표>, 조성훈 <국방부 군사편찬硏 선임연구원>(사진왼쪽부터)
지난 21일부터 탐사기획 ‘잊혀진 국군포로’ 시리즈를 집중보도한 세계일보는 국군포로 문제의 바람직한 해결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전문가들을 초청, 좌담회를 가졌다. 참석자들은 “북한은 ‘억류 국군포로가 한 명도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하지 말고, 먼저 국군포로 생사확인에 나서 현황을 공개해야 한다”며 “한국 정부도 국군포로들이 사라지기 전에 이들을 송환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24일 본사 편집국 회의실에서 열린 좌담회에는 ‘탈북 국군포로 1호’ 조창호(예비역 중위)씨와 남북이산가족협의회 심구섭 대표,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조성훈 선임연구원 등 3명이 참석했다.

―6·25전쟁이 끝난 지 52년이 넘도록 정부가 북한 억류 국군포로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심구섭=그동안 정책 당국자의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자력으로 데려온 국군포로는 이제까지 단 한 사람도 없다. 브로커를 통해서라도 북한을 탈출했으면, 한국에 데려오는 건 정부 몫 아닌가. 국군포로는 정식으로 전역 신고를 하기 전까지는 일종의 ‘현역 군인’이다. 대한민국의 군인이란 말이다. 대한민국 국민이자 군인이 조국에 들어오려 한다면 우리 정부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데려와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조성훈=6·25는 이념전쟁의 성격이 강한 특이한 전쟁이었다. 북한은 국군포로가 본인의 의사에 따라 북쪽에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인민군이나 북한주민으로 편입시킨 뒤 지금까지 북에는 국군포로가 더 이상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조창호=이 문제는 희망이 안 보인다. 우리 정부는 국군포로 송환문제에 관심도 없고, 데려올 의지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재향군인회 서부지회장인 정용봉 박사는 사재를 털어가면서까지 국군포로 탈북에 열정을 쏟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이 문제는 여야를 가릴 것도 없다. 우리정부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북한에 식량·비료를 보낸다면, 왜 북한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포로를 보내지 않는가.

▲조성훈=한국전쟁 당시 정전협상 때도 포로 교환 문제가 해결 안 돼 1년 이상 걸렸다. 그만큼 복잡미묘한 문제다. 미귀환 국군포로가 발생한 책임은 일단 북한에 있다고 본다. 북한이 국군포로를 임의적으로 인민군, 주민으로 편입시켜버렸다. 한국정부가 6·25 당시 유엔군 측이 생포한 포로 가운데 북송을 거부하던 포로들을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명분으로 풀어줬는데, 북한이 이를 문제 삼아 포로송환을 반대했던 것이다. 미귀환 포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상호주의와 인도주의적 방식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포로의 생사와 주소 등을 확인한 후 이산가족 교류방식으로 풀어가도 좋을 것이다. 한국전 당시 중국군에 포로가 됐으나 송환을 거부했던 미군포로 21명이 중국에 살다 얼마 되지 않아 미국으로 돌아가거나 미국 가족을 방문했던 사례는 좋은 본보기로 삼을 수 있다.

―국군포로 귀환 문제를 남북 회담이나 국제 기구를 통해 이슈화한다면 해결 가능성을 높일 수 있지 않나.

▲심구섭=지난해 서울대생을 대상으로 한 특별강연에 나가 “차차기 대통령 때는 이산가족 문제가 더 이상 거론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팔순에 가까운 국군포들은 앞으로 10년 뒤면 대부분 돌아가실 것이다. 10년 후면 국군포로 문제가 과거사가 된다는 얘기다. 그만큼 시급한 문제다. 미군은 수십년 동안 북한에서 단 한구의 미군유해라도 발굴하기 위해 애를 쓰는데, 우리 정부는 뭘 하는가. 남북 회담이나 국제기구에 이 문제를 적극 제기하는 성의가 아쉽다.

▲조창호=국군포로 문제를 낳은 책임이 대한민국에 있는지, 아니면 북한이나 유엔에 있는지 등 책임 소재를 더 이상 가릴 필요는 없다. 정말 순수하게 인도적 차원에서 국군포로 문제에 접근하는 게 중요하다. 지난 4월 정용봉 미국 재향군인회 서부지회장의 초청으로 미국하원의 국군포로 문제 포럼에 참석해 이렇게 얘길 했더니, 미국 사람들도 모두 공감하더라.

▲조성훈=국제기구를 통한 공론화도 좋지만, 일단은 전쟁 당사자의 한 축이었던 중국 측에 해결을 촉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전쟁포로 관리처를 공동 운영했기 때문에 국군포로에 관한 정보를 상당부분 북한 당국과 공유했을 것으로 본다. 아울러 북한에 있는 포로에 대한 정보는 북한 당국이 가장 잘 알고, 거꾸로 한국 내 공산포로에 대한 정보는 우리 정부가 가장 잘 안다. 북한이 국군포로의 규모 및 생사 확인 등에 적극 나서고, 한국 정부도 북한이 궁금해하는 공산포로 관련 사항을 충분히 협조해준다면 서로에게 득이 될 것이다.

―귀환 포로의 대우와 관련해서도 상당한 불만이 나왔다. 한국생활 적응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부족하고, 사기도 많이 당한다는 것이다. 귀환포로의 한국생활 적응을 위한 현실적 지원책은.

▲조창호=나는 여러 포로들한테서 보상금 액수에 대한 불만을 여러 차례 들은 바 있다. 하지만 나는 그때마다 정부 보상금 3억∼4억원이 적은 돈이 아니니 잘 간수해 쓰라고 한다. 물론 북한에 남은 가족을 탈북시키기 위해 대부분 쓰긴 하지만, 브로커에게 턱없이 많은 거액의 수고비를 줄 필요는 없다. 남한 물정을 잘 모르는 국군포로가 브로커 등에게 사기를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부도 이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보상금 지급 방식을 좀더 고민해야 한다.

▲조성훈=사견임을 전제로 얘기하자면, 일반 6·25 참전자들이 월 6만원의 보상금을 받는 데 비하면 국군포로의 보상금이 사실 적은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귀환 포로들도 보상금 액수 자체가 적지 않다는 데 대해선 이해해야 한다. 다만 귀환 포로들이 한국 사회에 빨리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심구섭=나도 고등학교 2학년 때 6·25에 참전했지만, 내가 받는 참전유공자 연금은 월 6만원에 불과하다. 사실 나라를 위해 싸운 사람들에 대한 예우가 상당히 부족하다는 걸 실감한다. 이를 보면 귀환포로가 받는 보상금이 적은 액수는 아니다. 하지만 의료지원 혜택이 부족하다는 점은 큰 문제다. 아파도 병원비가 부족해 끙끙 앓는 귀환포로가 많다.

―정부가 국군포로 탈북 및 한국 귀환에 관여하는 단체에 경비를 지원하는 내용의 국군포로 대우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최근 김문수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발의했다. 쉽게 말하면 국군포로 탈북에 개입하는 브로커에게 활동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인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심구섭=나는 국군포로 가족들에게 늘 말하기를 “조선족 현지 브로커에게 절대 1만달러(1000만원 상당) 이상 주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탈북 및 송환 작업의 위험성을 생각하면 사실 1만달러, 2만달러도 아깝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이만한 돈이 없어 포로 귀환에 동의하지 않는 가족들이 많은데, 정부가 이런 탈북 경비를 지원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조창호=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브로커들도 ‘몸값’ 욕심에 포로 탈북작업에 나서고 있지만, 어찌 보면 굉장한 위험을 무릅쓰고 하는 것이다. 탈북 경비가 적지 않게 드는 것도 사실이다. 국군포로의 남한측 가족이 그런 경비를 마련하기 어려워 못 데려온다면, 정부라도 나서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성훈=국방부 공식 입장이 아니고, 순전히 사견을 전제로 얘기하면, 남북 정부 간의 포로 생사확인이 먼저 해결될 때 브로커 경비지원도 자연히 해결되리라 생각한다. 국군포로 탈북 관여 단체에 대해서는 음성적 경비 보조가 아니라 정상적 지원이 돼야 한다.

사회 최현태 특별기획취재팀 차장,

정리 김형구 기자, 사진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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