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니가 예루살렘에 간 이 - 세계일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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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초를 쪼개 써야 하는 미 대통령 후보가 예루살렘에 나타났다. 지난달 이스라엘을 찾은 후보는 밋 롬니(공화당). 그의 머리에는 키파(유대 전통 모자)가 얹혀져 있었다. 그는 세계 종교전쟁의 한복판인 예루살렘 ‘웨스트 월(통곡의 벽)’에 손을 대고 기도했다. 독실한 몰몬교 신자인 그의 배교적인 행위는 계속됐다. 그는 기도제목이 담긴 쪽지를 돌돌 말아 돌벽에 꽂아 넣었다. 유대교 전통에 따라…. 
내친김에 한 발 더 나갔다.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미 국무부로서는 기가 찰 발언이다.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맺은 86개국 중에서 예루살렘에 대사관을 둔 나라는 하나도 없다. 대부분 제2의 도시 텔아비브에 있다. 외교관들은 텔아비브에서 자동차를 몰고 70㎞ 떨어진 예루살렘까지 달린다. 한국도 텔아비브에 대사관 신축부지를 마련했다.

이스라엘은 1967년 6일전쟁에서 동예루살렘을 확보한 뒤 예루살렘에 병합했다. 정부 부처를 예루살렘으로 모았다. 아랍인들이 몰려살던 곳에 집을 지었다. 그리곤 분단할 수 없는 영원한 수도라고 선언해버렸다.

세계는 인정하지 않았다. 미 정부는 예루살렘을 여전히 협상대상지로 남겨두고 있다. 1947년 유엔총회결의를 근거로 한 정책이다. 유엔 결의 181호는 팔레스타인 땅의 56.47%를 유대국가 영역으로, 42.88%를 아랍국가 영역으로, 0.65%를 예루살렘 국제지구로 지정했다. 미 상·하원은 1995년 미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국무부는 국가안보상 이익을 고려해 연기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는 대선후보가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롬니의 선임 정책참모 댄 세너는 더 나갔다. 그는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해) 독자적 행동을 취해야 한다면, 주지사(롬니)는 이러한 결정을 존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일자 롬니는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존중한다는 의미”라며 톤다운했지만 부인하지 않았다.

이런 대담한 구애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순방 목적으로 내세운 외교 강화는 어불성설이다. 많은 아랍, 무슬림 국가들과의 관계를 어그러트릴 것을 감수한 무리수였다.

최근 미 대선전을 보면 공화, 민주당 가릴 것 없이 후보들이 이스라엘의 환심을 사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미국 내 이스라엘 최대 로비단체인 AIPAC(미국이스라엘공공정책위원회) 모임에 가서 이스라엘 지원을 약속했다. 당선된 뒤 유대계 인사(람 이매뉴얼)를 첫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앉혔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전투기 판매를 발표할 때는 이스라엘 정부가 동의했다면서 눈치를 봤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키파를 쓰고 AIPAC 회의에 참석했다.

통곡의 벽 앞에 선 롬니를 보면서 기자는 휴전선을 떠올렸다. 미 대선후보가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철책을 잡고 기도하는 날은 언제 올까. 왜 이런 장면은 연출되지 않는가.

미국 내 유대계 유권자의 비율은 전체 4%를 밑돈다. 비율로 보면 크지 않다. 이들은 경합주(플로리다 오하이오 등)에서 단결함으로써 대선의 승부를 결정짓는 대의원 선출에 영향을 끼친다. 대선후보들이 구애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후보들이 필요로 하는 정치자금을 아낌없이 내놓는다. 롬니가 예루살렘에서 주최한 조찬모임에는 독지가 40여명이 참석했다. 각각 2만5000∼5만달러를 냈다.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대부 셀던 아델슨도 참석했다. 아델슨은 이번 대선캠페인 동안 공화당 측에 후원금으로 약 2000만달러를 기부했다. 롬니는 지난달 선거자금으로 1억130만달러를 모았다고 밝혔다. 오바마는 7500만달러를 모았다. 롬니는 3개월 연속 오바마를 앞섰다.

유권자의 단결된 조직력과 돈 주머니가 후보를 움직이게 하고 있다. 미 대선후보가 분단의 현장에 방문하도록 하는 우리의 힘은 언제쯤 발휘될까. 미국에 거주하는 동포들의 애국심에 불을 지르려면 한국 정치판이 낯 뜨거운 모습을 더 이상 보이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