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영입에 무관심한 나라 - 세계일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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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퓨터 판매 홍보용으로 만든 만화영화 ‘틴 토이’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영화상을 수상했다. 1988년 일이다. 그러자 디즈니사는 이 영화를 만든 책임자를 스카우트하려고 했다. 그는 원래 디즈니 사람이었다. 월트 디즈니가 세운 캘리포니아 예술대를 졸업하고 디즈니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제작자로 일하다가 상사의 불화에 휘말려 쫓겨났다. 그러다가 스티브 잡스가 1000만달러를 투자해 세운 픽사에 들어가 애니메이션팀을 이끌고 있었다. 애니메이션은 픽사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제품 판촉을 위해 부업으로 하던 일이었다.
 디즈니가 되찾으려 했던 이 실력자는 렌더링 기법을 동원하고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어 만화영화의 신기원을 연 ‘토이 스토리’를 비롯해 ‘벅스라이프’ ‘니모를 찾아서’ ‘카’ 등 10여편의 성공작을 만들어 낸 존 래시터이다. 당시 픽사는 잡스가 5000만달러를 쏟아부었지만 휘청거리고 있었다. 디즈니는 그런 회사에 있던 사람을 데려가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허사였다. 자신을 인정해준 잡스에 대한 래시터의 충성심을 꺾을 수 없었다.
 한때 망해가던 픽사는 토이스토리 개봉 직후 상장했다. 초기 공모가를 14달러로 책정하려다가 22달러로 올렸다. 그럼에도 거래 개시 30분 만에 주가는 45달러까지 올랐다. 주문이 몰려 거래가 중단되기도 했다.
 래시터를 되찾는 데 실패한 디즈니는 픽사를 통째로 사들이기로 했다. 천재 예술가 한 명을 내쫓은 대가는 혹독했다. 디즈니는 2005년 무려 74억달러를 지불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이전 10년간 디즈니월드와 디즈니랜드 등 놀이동산에서 관광객을 끌어모았던 새로운 캐릭터가 모두 픽사에서 래시터가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위기를 돈으로 막을 수밖에 없었다.
 한 천재 예술가를 둘러싼 업계의 희비를 보면 살얼음판 같은 현실을 깨닫게 된다. 잘 키운 인재 한명이 수백명(당시 픽사 직원은 800명)을 먹여 살리거나, 인재를 놓치면 수천명이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엄중함(디즈니는 픽사 인수 전 10여년간 자체 제작한 만화영화를 거의 히트시키지 못했다)이다. 
 북아프리카에서 휴대전화로 시위대를 모아 권력을 퇴진 시킬 정도로 기술이 진보하고, 젊은이들이 국경을 넘어 공부하는 게 자연스러운 이 시대에는 ‘지구촌 경쟁’이 당연시되고 있다. 이 피할 수 없는 싸움을 누가 앞장서 이끌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정부가 묘안을 짜내고 있다. 중국은 천인(千人)계획을 세우고 줄기세포 연구 전문가인 뉴욕주립대 마위포 박사를 귀국시키면서 온갖 혜택을 베풀었다. 인도는 해외에 거주하는 과학자들이 귀국할 경우 ‘제왕’처럼 살 수 있도록 특전을 주고 있다. 한때 인재 유치에 실패해 참담한 길을 걸었던 스페인은 해외영입 인재들에게 종신교수와 같은 특혜를 보장하고 있다. 캐나다는 이민법을 뜯어고치고 있다. 미국에서는 빌 게이츠가 나서서 천재들을 영입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지난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소프트웨어 인재 영입 지시를 내린 게 고작이다.
 기자는 올해 초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계 박사와 현실을 진단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한국 기업들이 이공계 전문가 영입 열정이 약할 뿐만 아니라 제시하는 대우도 매력적이지 못하다고 말했다. 스탠퍼드대를 졸업하고 UCLA에서 컴퓨터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이 13년차 소프트웨어 전문가는 삼성과 LG가 고객인 회사에서 소프트웨어 칩을 디자인하고 있다. 연봉이 3억원(보너스·스톡옵션 포함)이다. 그는 한국 측에서 제시하는 대우도 시원치 않지만, 창의적인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고 차별대우가 상존하는 한국의 조직문화가 꺼림칙해 귀국하는 게 망설여진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보니 과학고를 거치고 미국 아이비리그를 졸업한 한국의 천재들이 남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팔짱을 끼고 있는 사이에 천재성을 알아본 외국 기업들은 우리 인재들을 이용해 저 멀리 내달리고 있다. 굳이 디즈니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인재 영입에 힘을 쏟지 않는 한국호의 미래가 어떨지는 눈에 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