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속초 자전거 주파 - 세계일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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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달리면 머릿속에 남아있는 찌거기 같은 잔물감이 사라질까. 자전거에 오르기전에 항상 갖는 의문점이다.

서울에서 속초까지 달리기로 했다.일몰시간이 빨라진 점과 강원도 산속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감안해 오후 5시까지만 달리자. 새벽까지 일하는 야근업무를 한 뒤여서 하룻만에 주파하는 의욕은 다른 날로 미뤄뒀다.중앙선 전철로 용문역까지 가기로 했다. 오전 8시 35분 이촌역에서 전철 탑승. 용문역까지 줄잡아 1시간 30분은 소요되는 듯했다. 빵하나 먹고 오전 10시 17분 용문역앞에서 페달을 밟았다.

용문의 길거리에 흩어져 있는 은행잎을 즈려밟고 2시간여 달렸더니 홍천에 도착했다. 초반이어서 에너지가 넉넉했다.바퀴와 아스팔트가 빚어내는 마찰 소리가 바람소리 처럼 들렸다.

 

한때 뻔질나게 찾아다녔던 대명스키장 들어가는 길을 통과했다. 옛날 꼬불꼬불했던 시골길 위로 넓적한 고가도로가 쭉뻗어 있었다.홍천입구에서 오른쪽으로 휘어지듯이 넘어가는 도로에 접어들었다. 오른쪽 끝길은 쇠고기로 유명한 횡성가는 길이다. 화장품 공장 앞을 지나 내리막길을 밟은뒤 모텔 두 곳을 지나쳤다. 전에 도로옆에 슬라브집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 흔적 조차 없어지고 밭으로 바뀌었다. 세월이 덧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홍천에서 1시간 30분을 더 달려 철정 휴게소 앞을 지났다. 철정휴게소 뒤로 흐르는 홍천강을 내려다 보면서 고속으로 질주했다. 모처럼 목뒤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와 등줄기까지 서늘하게 식혀주었다. 앞바퀴에서 털거턱, 털거턱 거리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렸다.돌이 끼었나하는 의심이 들었다. 

군 장병들이 지키는 철정검문소에서 하차했다. 앞바퀴에 이상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 뒷바퀴를 한번 빙그르르 돌렸다. 아~. 머리가 압정만한 못이 박혀 있었다. 이 놈이 진원지였다. 이 큰 못이 박혔는데도 바람이 새지 않았다. 손톱이 부러지면서 못을 뺐다. 뻥뚫린 구멍에서 푸르르 공기가 새어 나오더니 녹색 물감이 흘러나왔다. 타이어펑크 난 곳을 표시하기 위해 튜브에 넣어놓은 안료가 새어나온 것이다.

 

곧바로 자전거를 뒤집어 놓고 체인을 제끼고 브레이크를 풀고 바퀴를 분해했다. 연장을 꺼내고 새 타이어를 살폈다. 아뿔사. 함께 가져간 펌프가 새타이어의 공기 주입구와 맞지 않았다. 검문소 장병에게 도움을 호소했다. 이 친구왈, "순간접착 본드는 있습니다.고무는 없습니다."

 "저쪽으로 한 참 걸어가면 휴게소가 있는데 그 곳에 자동차 펑크를 수리하는 곳이 있습니다."

줄잡아 1km나 되는 곳까지 자전거를 둘러메고 가야하나. 고민고민하다가 바퀴와 튜브만 들고 가기로 했다. 길거리에서 고무 대용으로 쓸만한 것을 발견했다. 도로표지 판에 붙어 있는 노란색 얇은 플라스틱 조각. 아쉬운 대로 이 것으로 고무조각을 대신하고 본드를 발라서 응급처지했다.

펌프로 바람을 넣고...수리하는 동안 장병이 바퀴를 잡아주고, 커피까지 대접해주었다. 아~ 대한민국 장병의 친절함이여.

 응급처치가 제대로 됐는지 타이어 공기압을 확인하고, 또하고, 발로 툭툭 차보았다. 달리면서도 바퀴아래를 이리저리 살폈다. 출발한뒤 바람이 새면 그야말로 산넘고 강건너 걸어서 인제까지 가야한다.

다행히도 나의 풍륜은 속을 썩이지 않았다. 머리속에 있던 잔물감은 완전히 사라졌다. 새로운 걱정거리가 이전의 흔적을 밀어내 버린 것이다.

 하나의 고민이 사라지자 또다른 복병이 등장했다. 며느리재 고개에서 터널로 통과하기 싫어서 산위로 넘어온게 탈이었다. 산위로 넘을때 흰색 소나타 안에서 끌어안고 있는 남녀를 흘끗본뒤 과도하게 다리에 힘을 주었는데, 그때 오른쪽 정강이가 시큰거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시큰거리는 강도가 세지더니 이제 다리를 끌어올릴수 없을 정도로 아프기 시작했다. 살짝만 힘을 주어도 무릎뒤쪽이 바늘로 찌르는 듯 아려서 눈이 저절로 감겼다.

인제까지 기어를 최대한 풀고 기어가기 시작했다. 왼발로 페달을 누르면, 오른발은 그냥 달려 있는듯 흐느적 거렸다.

 팜파스 휴게소에서 빵두개를 먹었다. 출발하기 전 동네 구멍가게에서 빵 4개를 샀는데, 2개는 용문역앞에서 해치웠다. 다리에 물파스를 뿌렸다. 압박용 붕대도 꺼내 감았다.

 산비탈을 오르는데 임시 휴게소에서 두사람이 나오더니 자전거에 올랐다. 한 사람은 제대로 차려입었고, 또 다른 젊은 사람은 반으로 자른 청바지 차림이었다. 청바지가 문제였다. 그는 비탈길을 오르지 못했다. 똥꼬에 탈난게 분명했다. 이 둘은 전날 서울을 출발해 용문에서 하룻밤을 잔뒤 오전8시에 출발했다. 청바지 차림의 사나이가 오르막길에서 속도를 내지 못해 오전10시에 출발한 나와 만난 것이다.이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달렸다. 그러다가 인제대교에서 이들은 더이상 따라오지 못했다. 

오후 4시 50분.인제 터미널에 도착하지 마자 신경과 부인과 비뇨기과 등등 전 종목을 진료하는 서울의원에 뛰어들어갔다. 주사한대 맞고 약 짓고...그리고 가까운 모텔에 들어갔다. 휴식시간을 빼면 6시간 달렸다. 저녁먹자마자 뻗었다.

얼마나 잤을까. 내린천이 마주 보이는 창으로 희미한 빛이 새어들어왔다. 날이 바뀌어 오전 8시.

 알단 출발했다. 아침은 가다가 향토냄새가 나는 식당에 찾아가 근사하게 먹기로 하고....

 날씨가 흐렸다. 산속이어서 안개가 뒤덮인 탓으로 보였다. 여관방 앞산에 걸쳐 있던 게 안개가 아니었다. 구름이었다. 그 구름 밑에서는 비가 뿌리고 있었다. 설악산에 다가갈수록 빗줄기가 굵어졌다. 시골 맛이 물씬 풍기는 아침을 먹으려고 발걸음을 재촉한 길이었는데 어느덧 30분간 비만 맞고 달렸다. 배에서 개구리가 우는 듯 꼬르륵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무릎은 통증이 더해졌다. 다리에 힘을 가할 수 없을 지경이 됐다.거의 9시가 다 되어서 설악산 휴게소에 도착했다.

 카레멜마키아토와 호도과자 한 봉지를 샀다. 시골밥상은 저 멀리 날아가버렸다. 인제터미널에서 구입한 진통제와 소염제를 입에 털어넣었다.

 그대로 있을수 없었다.인제로 돌아가기도 너무 멀다. 계속 가야 했다. 죽기 살기로.

 원통을 통과했다. 과거 마을을 질러가던 도로는 이제 외곽으로 빙둘러 지나쳤다. 한시간여 달렸더니 12선녀탕이 나오고 백담사입구에 도달했다.

백담사입구 터미널에서 몸을 추스르기로 했다. 가게에는 난로가 은근한 온기를 퍼트리고 있었다. 빗줄기가 더 굵어졌다. 등산객들이 하나둘 찾아들어왔다. 이제 막 미시령을 넘은 라이더 한명이 들어왔다. 전날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속초에 도착, 찜질방에서 잠깐 눈을 붙인뒤 새벽5시에 미시령을 넘기시작했단다. 그런데 그 많다던 JS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자동차 한대도 못봤단다. 미시령을 겨우 겨우 넘고 내려올때는 추워서 혼났단다. 발 시렵고,손 시렵고, 얼굴 시렵고, 옷에는 빗물이 새고...그는 서울까지 가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이 곳에서 버스표를 구입했다. "잘가라...약한자여.. 그대는 JS 등극을 포기하는구나..."

 

백담사입구에서 30여분간 등산객과 라이더와, 주인과 대화를 주고받았다. 추위를 날리기 위해 실없이 늘어놓는 이바구였다. 빗줄기는 가늘어질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다시 배낭을 짊어졌다. 장안의 유명하다는 황태가게는 모두 모여 있었다. 황태가게는 저마다 유명하다,원조다 하며 요술을 부리고 있었다. 어? 저 산위에서 거대한 황태 말리는 기계가 눈길을 끌었다. 비가 내리고, 안개가 낀데다, 바람 조차 잠들어 있어 그 기계는 큰 황태처럼 보였다. 속도를 줄이면서 천천히 다가갔다. 아, 풍차. 6년전 미국에 가기 전에 왔을때 저런게 없었는데. 세상에. 내설악이 바뀌고 있는 것을 풍차가 증명해주고 있었다. 이 산속에 저런 거대한 바람을 날리는 기계가 있다는 것은 황태를 더욱 잘말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리라. 이는 곧 지역산업의 기반이 되고, 농가 소득의 원천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면서 설악생수 공장을 향해 더욱 다가섰다.

 

자동차들은 시속 100km이상으로 질주했다. 이들이 날리는 물방울이 튀어날아 올랐다. 마치 공중에 분분수대를 설치한 듯 물이 날아올랐다. 질주하는 자동차를 피해 갓길로 조심조심 미시령으로 거리를 좁혀갔다. 어제의 공포 때문인지, 펑크의 학습효과인지 눈을 바닥에 박고 페달을 밟았다. 앗! 나사못. 핸들을 급히 꺽었다 제자리로 돌렸다. 겨우 못을 피했다. 바닥을 보면서 자전거를 타니 왜 그리 뾰족한 물질과 나사못, 쇠못, 낚시바늘이 갓길에 많은지. 이런 현실은 자전거를 타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타이어 펑크수리로 돈을 벌기 위해 누가 일부러 못을 뿌려놓은 것처럼 미시령 고개길에는 뾰족 물질이 많았다. 국토해양부 장관은 미시령 고개길에서 나사못과의 전쟁을 선언하라! 이 것은 전국 모든 라이더들의 요구사항이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욕구가 가슴 저 밑에서 끓어 올랐다. 비 맞으며 달린 미시령 고개길은 나사못과의 사투에 다름 아니었다. 단풍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가한 46번 옛길을 지그재그로 오르면서 미국 가기전에 도적소휴게소에 아내와 들러서 마신 차가 간절해졌다. 휴게소에 가서 산장지기 이야기도 듣고 추위를 털어내야 적어도 감기에 걸리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장갑은 다 젖었고, 맨살이 드러난 손가락 마디마디는 추위에 꽁꽁 얼었다. 쌉쌀하면서 은근한 맛이 남는 당귀차를 생각하니 목구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 그런데, 그 산장은 없단다. 입구를 지키는 등산로 감시인에게 사진한장 부탁했다. 자전거를 들어올리자 지나가는 봉고에서 창문이 열리더니 박수를 치면서 화이팅을 외쳤다. 힘내자.

 

다시 비실비실 지그재그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차들이 자전거에서 멀치감치 떨어져 지나갔다. 어떤 차는 마주 내려오면서 속도를 줄였다. 창문이 천천히 열리더니 화이팅을 외치면석 격려했다. 왼손을 번쩍 들어 응해주었다. 뒤따라 오던 차도 멀찍이 돌아서 추월했다. 경적을 두차례 빵빵 울려주었다. 이 모든 관심이 힘이 됐다. 한번도 쉬지 않고 오를수 있을까. 비는 그치지 않고, 구름은 더욱 짙어졌다. 낭떠러지는 안개가 가득 채워져 솜이불을 펼쳐놓은듯 보였다. 고소공포증을 느낄수 없었다. 헉헉 대는 나의 숨 소리만 친구가 될 뿐이었다. 등어리와 이마에서 땀이 쏟아졌다. 얼굴을 타고 내리는 것이 땀방울인지 빗방울인지 알 길도 없었다. 안경이 뿌옇게 변하면서 시야를 가렸다. 도적소에서 마렵기 시작했던 오줌은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경사가 급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위로 향하게 된 안장이 앞으로 숙인 몸과 밀착되면서 방광을 더욱 자극했다. '자연의 부름'에 응하기 위해 내리느냐, 해탈의 경지에 이르느냐. 갈림길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아우디가 지나가면서 경적을 두번 울려주었다. 아우디의 동그라미 4개가 올림픽 마크 처럼 동공을 자극했다.

 여기서 멈추어서 바지를 내리면 자연파괴범이 되는 거다. 여기는 골프장이 아니다. 오른쪽으로 턴을 하고, 다시 왼쪽으로 도는데 경사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각도로 다가왔다. 헉. 이렇게 가파를 수가. 기진맥진했다. 자전거를 팽개치고 싶었다. 차라리 걷는게 사는 길 처럼 보였다.

 정상에서 한 웅큼의 안개가 내려왔다. 내 귀를 간지러더니 아래로 물흐르듯 지나갔다. 그 안개 뒤로 미시령의 정상 한 귀퉁이가 보였다. 아. 저기다. 혼 잣말로 되뇌였다. 조금만 참자.

이제 직선길이다. 경사만 조금 있을 뿐. 어려운 고비는 다 넘었다.

 아, 드디어 정상. 767m.

 도적소에서 한번도 쉬지 않고 정상을 밟았다. JS반열에 올랐다고 스스로 계급장을 턱하니 달아주었다. JS가 뭐냐고. 사계에서는 서울에서 미시령을 통과한 라이더들을 짐승이라고 부르는데, 원어로 그대로 부르면 넘사스러워서 약자로 JS라고 칭한다. 진상이 아니고....

 

신기한 현상이 벌어졌다. 땀으로 다 분비됐는지 오줌마려운 욕구가 없어졌다. 두번째는 그 골치 썪히던 무릎의 통증이 완화됐다는 것이다. 약발인지, 성취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인증샷하고.. 슬슬 내려가기 시작했다.

곳곳에 브레이크 파열 경고 간판이 나타났다. 혹시 자전거도? 내려서 확인했다. 얼어버린 손가락은 휠에서 아무 느낌을 전달받을수 없었다. 빗물을 바지에 쓱쓱 닦아내고 다시 휠을 문질러 봤다. 앗,뜨거. 타이어가 녹지 않은 이유는 순전히 차가운 빗물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달궈져 있었다. 이렇게 됐다가 타이어가 터지든지, 브레이크가 부러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추위에 떨면서 휠의 온도가 떨어지길 기다렸다. 적당히 휠에 문대면서 손을 녹였다. 손에는 회색 브레이크 가루가 뭍어났다.

 

자전거의 속도를 줄이면서 조심조심 내려갔다.울산바위앞에서 여러대의 차량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안개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산을 배경으로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학사평 순두부집에 도착하니 오후 1시였다.가스불을 켜놓고 추위를 녹이는 것을 보고는 다른 등산객들도 조리용 가스불을 켜댔다. 일꾼들은 보자마자 가스불을 꺼버렸다. 점심으로 순두부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자전거 탄 시간만 얼추 3시간 46분이 걸렸다. 전날 6시간과 이날 3시간 46분 합쳐서 9시간 46분만에 미시령을 넘었다. 쉬는 시간 빼고. 지도상으로는 140km. 9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머리속의 고통은 훌훌 털어져 나갔다. 올해 세웠던 계획중 하나를 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