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 전과후의 미국 - 세계일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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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앤디 카드(비서실장)가 국가안보브리핑을 했다. CIA가 미국 내 더욱 많은 알카에다 요원들이 숨어있고, 이들이 생물학, 화학, 핵무기로 또다시 미국을 공격하려 한다고 보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질문을 던졌다.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

9·11테러를 겪고 사흘 만에 개최된 국가안보회의에 참석했던 정보부처 수장들은 근심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부시 대통령은 로버트 뮬러 FBI 국장에게 말했다.
“공격을 받은 뒤 조사할 게 아니라 공격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분쇄할 필요가 있다.”

뮬러 국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공격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 그것을 우리의 새 임무로 여기겠습니다.”

이로써 100년 역사의 FBI는 전면쇄신하게 됐다. 선제공격이 테이블 위로 올라온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자서전 ‘결정의 순간들’(Decision Points)에서 9·11테러를 당한 뒤 선제공격을 정당방위의 한 방안으로 고려하게 된 의사결정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서도 선제공격을 검토했던 사실이 최근 위키리크스의 자료를 통해 확인됐다. 미 국무부는 2009년 3월30일 러시아주재 미 대사관에 보낸 비밀외교전문에서 “(대포동 2호가) 미 영토에 위협을 줄 경우에 대비해 미국의 탄도미사일방어시스템이 준비를 할 것”이라며 미국의 요격미사일이 발사되더라도 러시아가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러시아 측에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국무부 전문은 요격미사일 발사가 유엔헌장에 규정된 정당방위라고 표현했다.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도 자서전에서 2006년 대포동 2호 미사일 시험발사 때 미국이 요격을 검토했다고 밝혔다.

21세기 미국은 9·11테러 이전과 그 이후로 구별된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미국의 군사정책이 급변했다. 미국에 동조하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로 나누었다. 미국에 동조하는 국가는 선으로, 그렇지 않은 국가는 악으로 규정했다.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세계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변화상황을 설명했다.

“9·11이 희생이라는 것을 재규정했다. 의무도 다시 규정했다. 그리고 나의 임무도 다시 규정했다. 9·11 이후 나의 책임이 명확해진 것을 알았다. 내가 대통령직에 있는 한, 그날 미국에서 발생한 일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국가를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대통령의 의지는 참모들에게도 그대로 전이됐다.

대통령 안보보좌관을 하던 콘돌리자 라이스는 국무장관이 되자마자 주요한 일정 하나를 취소했다. 가장 가까운 우방국 캐나다 방문을 취소한 것이다. 캐나다가 미국이 추진하던 미사일방어(MD)시스템에 가입하지 않고 미적거리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마침 미국의 기밀이었던 보고서 하나가 언론에 보도됐다. 미국이 캐나다를 기습공격하는 가상 시나리오였다. 2차대전 이후 만든 이 가상 시나리오는 극비로 분류돼 내셔널아카이브에 보관돼 있었는데 묘한 시점에 기밀해제돼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한 것이다.

9·11 이후 탄저균 등 갖가지 테러공포에 노출된 미국은 사실상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치르기 시작했다. 이라크전, 아프간전….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은 공격당할 경우 분명한 대가를 지불케 했다. 그런데 9·11 이후에는 이에 그치지 않고 선제공격을 통해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를 피해를 막는 것을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이러한 미국의 의도에 대해 논란이 있지만, 세계 최강국 미국이 테러를 미연에 방지하겠다면서 밀어붙이는 강공드라이브를 국제사회는 묵인하고 있다.

미국의 선제공격 옵션을 생각하면, 긴장을 조성해 반사이익을 누리려는 발상은 위험천만이다. 한쪽 발로 도화선을 밟고 있는 북한을 울타리 건너에 두고 있는 우리는 이러한 점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은 이러한 미국의 정책이 10년이 지난 지금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