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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자 좋은 한 북한이탈주민(탈북자)이 겪은 기구한 사연 좀 들어보자. 아내와의 잠자리가 싫어 사선을 넘은 탈북자 장용진(44)씨는 요즘 “휴전선을 넘을 때보다 지금이 더 힘들다”고 털어놓는다. 이제와서 한탄한들 무슨 소용이랴만, “나를 사랑한다고 약속했던 그 남자가 결국은 내 인생을 망치게 했다”고 울부짖는다. 천신만고 끝에 건너온 한국의 한 게이바에서 만난 남자 애인이 재산도 사랑도 다 갖고 텼기 때문이다. 홍콩의 주간잡지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10월 27일자)는 동성애자로 북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탈북한 장용진씨를 소개하며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배고픔이나 정치적 억압 때문에 탈북했지만 장씨는 색다르다”고 표현했다. 리뷰에 따르면 장씨는 북한의 관습대로 어머니가 정해준 전형적인 조선 여성과 결혼했지만 여자인 아내에게 사랑을 느끼지 못했다. 아내와 잠자리를 할 때마다 사랑은 커녕 왠지모를 불쾌감만 다가왔다. 잠자리가 죽기보다 싫은 것이었다. 장씨는 “결혼 몇 년이 지났으나 아이도 생기지 않아 병에 걸린 줄 알고 검사를 받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북한에선 동성애가 개념이 없어 자신이 ‘게이’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마침내 결단을 내린 장씨는 결혼생활 9년만에 당국에 이혼신청을 했다. 그러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장씨의 고민은 결국 국경을 넘게 했다. “내가 없어지면 아내라도 행복해질 수 있지 않겠냐”며 중국으로 건너갔다. 한국행을 시도했으나 좌절됐다. 북한으로 되돌아갔으나 해결된 문제는 하나도 없었다. 장씨는 다시 국경을 넘었다. 이번엔 휴전선이었다. 한국 정보기관에 인계된 장씨는 “아내와 잠자리를 갖기 싫어 탈출했다”고 고백해 조사관들을 어안이벙벙하게 만들었다. 탈북자 교육시설인 ‘하나원’을 거쳐 대한민국 사회에 나온 장씨는 신문에서 우연히 남자들끼리 키스하는 사진을 보고 가슴이 울렁거렸다. 비로소 자신이 동성연애자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장씨는 게이 잡지를 사 읽으며 이태원 게이 바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후 남자와 사랑에 빠졌으나 그 남자는 탈북자에게 주어지는 정착금 등 장씨의 전 재산을 갖고 줄행랑쳤다. 아무 것도 안 남은 장씨는 꺼이꺼이 울음만 나온다. 이게 왠 기구한 운명인가. 2004.10.28. jjj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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