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화재 국난 부른다...정도전 예언 적중 - 세계일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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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화재, 국새 폐기…잇단 대형 참사와 무관할까?

옥새전각장 민홍규 옥중기 <터-우리가 몰랐던 신비한 땅 이야기> 출간

 

 

 조선 건국의 초석을 다진 정도전은 1398년 숭례문을 건립했다. 숭례문에는 불의 조화를 뜻하는 대풍수의 비기(秘機)가 숨어 있다. 숭례문이 불타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는 괘에 따라 화기를 제압하기 위해 ‘세로 현판’을 달았다. 그러나 1592년 숭례문에 화재가 발생했다. 보름 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임금은 피란 가고 국토와 백성은 참혹하게 유린당했다. 1910년에는 숭례문 현판이 떨어졌다. 그 해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 합병되며 나라가 망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분단과 전쟁을 겪었다.

 2008년 2월 숭례문이 방화로 또 불에 탔다. 2010년 11월에는 국민화합과 국운융성, 통일의 비원(悲願)이 담긴 대한민국 4대 국새가 폐기 처분됐다. 그 후 천안함 침몰(2010.3.26)을 시작으로 태안 고교생 해병대 캠프 사고(2013.7.18), 경주 리조트 강당 붕괴(2014.2.17), 세월호 침몰(2014.4.16) 등 대형 참사가 잇따르고 있다. 꽃다운 젊은이들이 대거 희생됐다. 숭례문 화재와 국새 폐기, 그리고 경남 산청에 짓다 만 등자울 터와 잇단 참사는 과연 연관이 있을까 없을까. 참사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대한민국 4대 국새를 만들고 모함을 받고 3년 동안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세불 민홍규(60) 옥새전각장이 옥중에서 집필한 <터-우리가 몰랐던 신비한 땅 이야기>(글로세움)를 출간했다.

대한민국 4대 국새가 탄생한 경남 산청의 전각전. 건물 자체가 예술품이다.
전각전 내부의 대왕가마. 왼쪽이 암가마, 오른쪽이 숫가마이다.
대왕가마 굴뚝. 경기도 이천 명장들이 도자벽돌로 만들어 독특하고 아름답다.

책은 황금(돈)에 눈 먼 일부 국새제작단 단원의 배신과 언론의 마녀사냥,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경찰과 검찰, 재판부의 짜맞추기식 엉터리 수사와 판결로 졸지에 생매장당한 세불 민홍규 선생이 옥중에서 쓴 경남 산청 국새전각전과 등황전(騰皇殿), 그리고 기(氣)바위로 알려진 석경(石鏡)·귀감석(龜鑑石)·복석정(福石鼎) 건립 비사다.

민홍규는 프롤로그에서 “터에도 눈이 있다. 국새전각전에서 만든 대한민국 4대 국새가 폐기되고 혈처를 다스리는 거울바위 석경, 거북바위 귀감석, 솥바위 복석정 중 세 번째 바위가 잘못 놓인 이후부터 터의 울음이 계속 되고 있다”고 했다.

터의 울음이 예사롭지 않다. 3년을 옥중에서 지내면서 4대 국새를 만든 세불 민홍규는 많이 생각했다. 언젠가 이 터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어야겠다고 생각해 왔지만 때가 온 것이라 마음먹었다. 더 이상 이 터가 누군가의 사욕으로 훼손되고 이용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과 터 스스로 앓고 있는 몸살을 모른 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웅장한 등황전과 귀감석(왼쪽 바위). 민홍규는 완공을 못하고 영어의 몸이 됐다.
첫 번째 혈처에 세워지는 돌거울 ‘석경’. 앞면에 <천부경>이 새겨져 있다.
보호각에 들어선 석경. 뒷면엔 ‘생각대로 뜻한대로 이루리라’란 글귀가 새겨졌다.
두 번째 혈처에 거대한 거북바위 귀감석이 세워지고 있다. 기울기가 중요하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범부로서 이 터를 만나고, 터가 가진 기운을 일깨워 하나하나 모양새를 찾아가던 여정이다. 완벽한 모습을 갖추기 전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려 했던 비밀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이 터가 시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반도를 거대한 몸으로 가정하면, 불기운이 가장 큰 혈처는 백두대간 단전자리이다. 전국 산천을 떠돌다 찾은 적임지를 찾았다. 오행으로 토생금(土生金)을 부르는 터로 먼저 이곳의 땅 기운이 금(金) 기운의 국새를 만들도록 했다. 이곳에 국새전각전을 지어 대한민국 4대 국새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땅의 고단함을 처방하는 대길지(大吉地)로써 한반도에서 기(氣)가 가장 많이 뿜어져 나오는 혈처(穴處) 세 곳을 잡았다.

 이곳에서 국새 제작뿐 아니라 세 개의 바위가 침을 놓듯이 혈 자리에 바로 자리 잡게 될 때는 국운도 만개하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터라고 생각했다.

 세 개의 바위는 각각 성격이 있다. 석경은 하늘의 뜻을 담아내는 강기석(降氣石), 귀감석은 땅의 지력을 돋우는 응기석(應氣石), 복석정은 사람을 위해 풀어내는 정기석(精氣石)이다.

 이 터의 세 혈처와 국새전각전, 등황전 등 비보(裨補) 건물은 서로 상응하도록 지어졌다. 국새 제작 외에 분정항례(分庭伉禮) 등 이 터 안에서 벌어질 여러 일들을 예상하여 정하였다. 전각전은 기 운행의 최종 건물이라 매우 중요하다.

산을 향해 올라가듯 자리 잡은 귀감석. 발을 만들어 생명을 주고, 꼬리는 잘라 숨겨두었다.
세 번재 혈처 옆에 임시로 둔 솥바위 복석정. 민홍규는 함부로 옮기지 말라 했으나 군청에서 임의로 옮겨 온갖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마침내 국새를 제작할 터가 잡히고 국새전각전도 건립할 수 있게 되었다. 국운 융성과 국민 화합을 기원하는 4대 국새를 제작할 세 혈처도 찾아냈으니 틀은 잡힌 것이다. 이 터가 정말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영원한 쉼터가 될 수 있었으면 했다.

 이 자리는 지리산 천왕봉을 축으로 화엄사 각황전과 서로 힘을 대등하게 조율하는 ‘큰오름(등황)’의 운장이 있다. 서로 좋게 한다는 힘이다. 그래서 등자(말등자)요, 평성을 잡아주는 비보 건물의 이름으로 등황전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 터는 세 개의 바위를 제 혈처에 놓는 데 있다. 그러려면 기운을 잡는 비보 건물도 제자리에 잡혀야 완성되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민홍규가 모함을 받게 되자 산청군은 2013산청세계한의약엑스포 개최를 이유로 복석정을 엉뚱한 곳에 안치했다. 등황전은 오색 칠을 해 마치 사찰 같이 만들어 놨다. 이런 까닭에 이 터는 아직 미완성이다. 
터 표지


 민홍규가 국새와 세 개의 바위를 굳이 이 터에서 완성하려 했던 이유는 4대 국새에 담은 의미를 실현시켜 줄 수 있는 힘과 이 땅에 다가올 어려움을 막으려는 데 있다.

황종국 변호사는 “석경과 귀감석, 그리고 마당에 팽개치듯 놓인 복석정, 짓다만 등황전과 지붕의 삼족오 치미(雉尾), 앞으로 보이는 열린 공간을 둘러싼 산과 산. 이미 전각전과 그 뒤 굴뚝이 지닌 예술적 매력에 홀려있던 나는 이런 곳에 터를 잡고, 이것들을 배치하면서, 이런 건축물을 짓고자 한 놀라운 안목을 지닌 이가 누구인지 확인하고픈 생각이 간절해졌다”며  민홍규가 설계하고 총감독한 등자울 터와의 첫 인연을 소개했다.

조정진 <누가 국새를 삼켰는가>(글로세움) 저자는 “책에는 동양철학과 풍수에 능한 그의 천부적인 통찰력과 직감력, 나라와 국민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면서 “그가 마무리하지 못한 등황전과 복석정에 대한 문제는 지금이라도 책임 있는 누군가 나서 완성할 수 있도록 돕길 바란다. 나라와 국민의 잇단 큰 불행이 멎길 바라는 그의 충정이 책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길 기대한다”고 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본문 미리보기

  “숭례문에 불이 나면 아래에 있던 불의 성질이 화재를 따라 물 위로 솟구쳐 올라타며 나쁜 염준(錟)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변한 상태를 주역 64번째 화수미제(火水未濟) 괘라 한다. 큰물이 위의 불꽃(젊음)을 잡아먹는 괘이다. 그러나 나쁜 염준을 당해도 희망이 있다. 그 속에 좋은 염준으로 다시 돌릴 수 있는 이치를 스스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7쪽)

  “세불은 우리 민족의 역사를 응축하여 이 땅에서 지천태시대를 실현할 구체적인 방책을 담는 그릇으로 4대 국새를 만들고 이 터를 조성하는 대역사를 시작한 것이다. 그가 잡목 우거진 평범한 산 중턱에 터를 잡고 세 개의 바윗돌을 찾아 안치하는 과정은 실로 성(誠), 그 자체이다. 그야말로 호랑이가 먹이를 노리듯 심신을 정일 집중하여 최선을 다하였다. 또한 겸손과 비움으로 천지와 사물의 기운에 감응하는 자세를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하늘과 땅이 감응하여 터를 찾아내고 바위를 구하였다. 마침내 하늘 기운을 받아 내리는 석경과 땅 기운을 분출하는 관문인 귀감석을 제자리에 설치하였다.”(15쪽)

  “지구 땅덩이는 그냥 무지한 무기물 덩어리가 아니다. 그 속에 수만 가지 생명을 낳아 기르는 큰 생명, 만 생명의 어머니이다. 그 생명의 기운 질서를 잘 파악해서 따르면 복이 내리고, 이를 거역하면 재앙이 내린다. 땅의 기운이 크면 클수록 복도 크고 재앙도 크다. 그것을 통찰했던 우리 조상은 그 이치를 풍수라는 이름으로 압축해서 후손에게 전했다. 수만 년을 숨어 있던 천장지비의 터를 찾아내어 그 기운으로 나라를 살리고 세상을 평화롭게 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무지렁이들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땅의 기운을 훼손하여 버렸다.

  중단된 작업은 산청군이 마무리하였다. 그러나 완전 엉터리로 만들어 버렸다. 가장 중요한 의미가 담긴 세 번째 바위 복석정은 마당 한쪽 구석으로 옮겨 지붕을 씌우고 ‘기 받는 돌’이라 간판을 세워놓았다. 바위가 본래 놓일 자리는 기가 맴도는 혈처이다. 민홍규가 얼마나 세심하게 그 자리를 잡았는데, 자문도 구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옮겨버린단 말인가. 그리고 그 바위를 기 받는 돌 정도로 우습게 만들어버린단 말인가! 등황전은 산청군이 ‘동의전(東醫殿)’이란 현판을 붙였다. 2013세계전통의약엑스포의 의미에 맞춘 것이다. 참으로 소인배의 짓이다.”(16~17쪽)

  “세불 자신과 가족은 이미 큰 고통을 당했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세불은 2013년 7월경 여주교도소에서 출소하기 전에 교도소로 면회 온 산청군 관계자들에게 분명히 경고하였다. 비뚤어진 것을 바로잡아 놓지 않으면 재앙이 그치지 않을 것이고, 그 재앙의 다음 차례는 산청군의 최고 수뇌부 두 사람에게 미칠 것이라고 말이다. 불행히도 산청군은 그 말을 듣지 않았고, 재앙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런데 재앙은 산청군이나 이 터와 관련된 사람들에게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미친다. 그 터가 그만큼 크고 의미롭기 때문이다.”(18쪽)

  “수십 년 기 공부에 정진하면서 터득한 것이 있다. 자연은 인간에게 진리가 빛나는 터를 쉽게 내어주는 듯하면서도 그 격에 따라 착각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수련이 필요한 것이다. 이 땅에서 최고 기운이 맺힌 백두대간의 단전자리에 한걸음 다가선 듯하다. 그 터의 솟는 혈처에서 국새 제작을 하리라 다짐했다.”(32~33쪽)

  “마침내 백두대간의 단전자리가 왕산 아래로 응결되며 총진의 기맥이 진리로 맴돌고 있음을 알았다. 풍수들은 “이 땅에 더 이상의 명당은 없다” 했다. 예부터 “천하의 대명당은 보통의 풍수나 사람들의 체취로는 볼 수 없다” 했다. 맹자가 말한 물교물(物交物)의 의미가 떠오른다. 사람과 사람은 마주하면 자꾸 의심하니,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만 믿는다는 뜻이다.”(38쪽)

  “‘산은 사람을 알고, 혈처는 인물을 알아본다’고 했다. 이 모두가 이 땅에 있으니 당연히 땅이 먼저 알아챈다. 혈처나 이것을 타고 내려오는 맥을 건드려 화를 입는 경우가 이를 증명한다. 묏자리의 혈처만 잘 다스려도 복을 받고 인물이 나는 경우는 이미 많이 들어왔다.”(66쪽)

  “관계자들에게 ‘솥바위를 함부로 옮기거나 건드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본인에게도 좋지 않지만 혈처의 기운이 틀어져 요동할 수 있고, 나라가 더 불편해질 것이다”고 당부하였다. 예부터 솥바위를 함부로 건드린다거나 잘못 놓게 되면 “지덕(지력·地力)을 손실하고 왕업이 손상된다”고 하였다. 전체 터 안의 건물 비보까지 조성되면 그때 세 번째 혈처에 좌정시킬 것이다. 그때까지 국새전각전인 터는 미완성이다.”(120쪽)

  “전각전은 국새를 만드는 대왕가마를 보호하는 집이다. 국새 제작에 관계된 일을 하는 작업 공간이다. 최고의 건물을 짓고 싶었다. 후대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건물과 문화를 남겨주고 싶었다. 전각전은 지금도 경남 제일의 아름다운 한옥이며 역작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정말 짧은 기간 동안 많이 고민하였고 도편수를 일깨우며 혼신을 다하여 국새 제작 기간에 완성한 건물이다.”(131~132쪽)

  “전각전 공사를 진행하는 동안 많은 기이한 일들이 생겼다. 처음 터파기에서부터 건물에 대한 예지력을 꿈으로 자주 보여주었기 때문에 슬기롭게 대처하여 무탈하게 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137쪽)

  “전통방법으로 제작된 4대 국새는 <영새부>의 비전을 적용하며 완성하였다. 국새의 시작은 ‘어떤 철학을 기저로 제작할 것인가’에 있다. 4대 국새는 국운융성과 국민화합이 화두였다. 국운융성을 위해, 순수 정기가 가득한 최고의 기(氣)터를 새로 잡았다. 여기서 수개월 동안 전각전을 짓고 그 안의 대왕가마에서 4대 국새를 만들었다. 두 번째 화두인 국민화합을 위해서는, 전국 각지의 흙을 모아 거푸집으로 사용하였다.”(156쪽)

  “전통적으로 ‘국새에 발이 없으면 껍데기 왕(통치자)이 된다’고 한다. 뉴조각에 발이 없거나 조각되어 드러나지 않는 것은 백성(국민)의 지지가 없다는 것을 뜻하여 금기시한다. 인장전각 위에 올려질 뉴조각은 통치자를 상징한다. 따라서 한 몸에 하나의 머리를 올려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이유에서든 두 개의 머리가 만들어지면 두 사람의 임금이 있다 하여 국가의 분열을 뜻했다.”(157쪽)

  “돌이켜보면 이 터는 현재 미완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처음 국운융성과 국민화합의 4대 국새를 위해 한반도의 단전자리인 이곳을 찾아내고 나서 무척 기뻤다. 국새를 만든 뒤 숭례문이 불타면서 터를 더 새롭게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을 하늘의 뜻에 맡긴다.”(286쪽)

  “쉬고 있는 내게 낮에 차나무를 심던 일꾼이 넌지시 와서 전한다. ‘필봉산 밑에서 밤낮없이 큰 소나무를 파내 가는 것 같습니다.’ 산을 누가 훼손하는지 궁금했다. 필봉산 용맥이 흘러오는 자리에서부터 국새전각전 바로 옆까지 붙여서 작지만 휴양지 사업을 할 것이란다. 시간이 지나자 그곳에 굴착기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중에야 군청의 해명을 들었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진고속도로 무주 근처에서 대형 차 사고를 당했다. 하늘이 도와 목숨은 건졌지만 척추가 내려앉는 사고를 당했다. 2009년 7월 9일이었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환란을 예고하는 경고에 불과했다.”(287~288쪽)

  “이미 처음부터 4대 국새사건이 기획되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예부터 국새는 신품(神品)이라 건드리는 것은 국가를 뒤집는 것과 같다고 했다. 다가올 시련이 두려웠지만 이미 검은 파도가 선을 넘고 있었다. 환란이 시작된 것이다.”(290쪽)

  “대자연의 분노가 시작되었다. 2010년 3월 25일 북쪽에서는 함박눈이 내렸고 이 터는 함초롬히 비에 젖고 있었다. 왕산과 필봉산의 혈맥은 더욱 파헤쳐져 산바람이 일고 있다. 국새 기운이 정지되고 비보 건축도 중단됐다. 이 땅의 환란을 풀어내기 위한 이 터의 일이 곳곳에서 막히고 있다. 이 터에서 만든 4대 국새가 짓밟히고 있었다. 다음날이었다. 2010년 3월 26일, 터가 진동하였다. 아침부터 바람이 세차게 불어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봄바람이 부는 날,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적인 일이 이 땅에 벌어졌다. 천안함 참사가 났다. 불꽃 같은 젊은 병사 40명이 사망했고 6명이 실종되었다. 결국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291쪽)

  “하늘이 요동쳤다. 뚫어진 하늘에서 태풍을 쏟아내는 세찬 비바람이었다. 2010년 9월 초의 날씨에 없었던 이변이 계속되었다. 터에 모셔 놓은 세 번째 솥바위 복석정은 끝내 완성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땅의 더 큰 환란은 어디까지 계속될 것인가.”(293쪽)

  “2014년 4월 16일이다. 봄바람이 왠지 차갑다. 하늘이 뒤집혔다. 허망한 바다를 향해 울부짖는 사람들, 찢어지는 가슴을 여미는 통곡이 뉴스로 터졌다. 476명을 태운 세월호 여객선이 침몰했다. 3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이 불꽃 같은 청소년들이다. 천안함과 똑같은 선박 사고였다. 계절도 비슷하다. 두 사건 모두 화수미제 상이라 놀랐다. 물(바다) 위에 떠 있는 불꽃(청소년)을 삼켜버린 괘 그대로다. 공교롭게도 이 두 사고는 숭례문의 염준 현상이 짙다. 복석정의 엇박자 힘이 강하게 느껴진다.”(302쪽)

"4대 국새는 민홍규가 전통기법으로 만들었다"

“민홍규는 여론재판의 희생양…골프업자와 제작단원들이 합작한 음모”

세불 민홍규와 그가 복원한 고종조 옥새.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민홍규는 조선조 옥새 73과 중 40여과를 복원했다.
 2008년 8월 대한민국 언론과 사법기관은 한 사람을 마녀사냥했다. 대한민국 4대 국새를 만든 세불(世佛) 민홍규(60)는 전통국새 제작 비법을 보유한 동양 3국(韓·中·日)에서 유일한 ‘옥새전각장’에서 하루아침에 파렴치한 희대의 사기꾼으로 전락했다. 언론은 그가 국새를 만들고 남은 금을 빼돌렸고, 그 금으로 금도장을 만들어 정·관계, 언론계에 로비용으로 돌렸다고 보도했다. 또한 전통국새를 만드는 비법도 없으면서 마치 있는 것처럼 속여 국새 국민공모에 당선됐고, 4대 국새 제작단장이 됐다고 보도했다. 수사기관은 언론 보도를 뒤따라가며 속전속결로 수사를 진행해 민홍규를 사기죄로 구속했다. 3년형을 선고받은 민홍규는 2013년 9월 만기 출소했지만, 그가 만든 ‘완벽한 국새’로 평가받던 4대 국새는 폐기돼 국가기록원 수장고에 고이 잠들어 있다. 과연 진실은 뭘까.


대한민국 4대 국새에 얽힌 기막힌 사연을 담은 <누가 국새를 삼켰는가-우리가 모르는 대한민국 4대 국새의 비밀>(도서출판 글로세움)이 책으로 나왔다. 4년여 동안 사건의 진실을 천착한 조정진 세계일보 논설위원이 펴냈다. 2013년 한국기자협회가 공모한 ‘취재 이야기’에서 당선된 ‘골프채 업자에 놀아난 민홍규 죽이기 게이트’를 저본으로 경찰의 조서와 진술서, 검찰의 기소문, 법원 판결문, 관계자 인터뷰 등을 통해 입체적으로 접근했다.

국새사건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가뜩이나 짜증나 있던 국민을 화나게 했다. 국새사건은 민홍규 국새제작단장이 국새를 만들고 남은 금을 빼돌려 금도장을 만들어 정·관계 인사들에게 로비용으로 돌렸다는 언론보도로 시작됐다. 여기에 600년 비전(秘傳)이라는 전통기술이 없으면서 전통기법으로 국새를 만들었다고 거짓말을 했고, 국새에 버젓이 자기의 이름을 새겨넣었다는 데에 이르러 여론은 절제력을 잃었다.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여론재판은 끝났다. 민홍규는 파렴치한 사기꾼이고 국가를 농단한 국사범이 돼 있었다. 민홍규 관련 기사와 수사는 국새제작단의 주물보조를 지낸 제보자의 진술에만 의존한 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민홍규에게 제기된 의혹은 마치 모든 게 사실인양 보도됐다. 대부분의 언론은 최소한의 확인과정도 거치지 않고 연일 대서특필했다. 민홍규의 입장이나 진술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수사는 제보자의 진술을 언론이 먼저 보도하고, 수사기관이 그 뒤를 따라 확인하는 수순으로 진행되었다. 전형적인 여론재판이자 마녀사냥이었다.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은 여론이 들쑤셔놓은 일을 뒤치다꺼리하는 수준이었다. 지극히 비정상적인 상태다. 냉정한 이성과 법리가 지배해야 하는 법정은 요식 절차로 전락했다.

민홍규가 산청 국새전각전 대왕가마에 불을 넣고 있다. 시뻘겋게 불이 타들어감에도 이창수와 경찰 검찰은 불이 안 들어가는 가짜 아궁이라고 주장했다.
수사 결과, 민홍규의 금 횡령과 금도장 로비는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기소조차 안 됐거나 재판 과정에서 모두 무혐의 처리됐다. 국새사건을 맡았던 한 검사는 판결 후 민홍규에게 “우리가 한 게 아니다. 언론이 떠들고 해서 한 것이다. 개인적 감정은 없다”고 했다. 검찰 스스로 여론에 끌려다녔음을 인정한 것이다.

국새사건의 불을 지핀 사람은 민홍규가 국새제작단에 주물보조공으로 고용한 이창수였다. 이창수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현대식으로 만든 국새를 민홍규가 바꿔치기해서 국가에 납품하였다”고 주장했다. 이를 시작으로 행정안전부가 서울지방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하며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창수는 국새제작단에서 15일 일하고 급여로 126만 원을 받은 말마따나 보조였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였다. 4대 국새 공모전에 조각과 글씨 부문에서 각각 1등으로 당선된 작가는 민홍규이고, 국새제작단장도 민홍규였다. 주물보조에 불과한 국새제작단의 일개 단원이 국새를 만들었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러나 언론은 그렇게 보도했고, 경찰과 검찰은 그렇게 수사해 기소했고, 재판부는 그렇게 판결했다. 취재도 엉터리, 수사도 엉터리, 판결도 엉터리였다.
대한민국 1대 국새를 만든 석불 정기호 선생이 민홍규가 옥새동장전각 전수를 잘 마쳤을 때 ‘세불’이란 호를 내리며 써준 춘서.


제보자 이창수는 방송 인터뷰, 경찰·검찰에서의 진술뿐만 아니라 재판정에 증인으로 출석해서도 지속적으로 진술을 번복하였다. 이창수의 거짓 증언의 압권은 2007년 12월 1일과 2일 국새 제작 장소인 경남 산청에 가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창수가 그날 현장에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국새사건의 진위를 결정하는 핵심이다. 이창수가 그날 현장에 있었다는 것은 민홍규가 제출한 수십 장의 사진으로 금세 확인된다. 그럼에도 이창수는 사진의 날짜가 조작되었다며 부인했다. 국립과학수사원에 의뢰한 결과 ‘조작 흔적이 없다’고 나왔다. 하지만 검찰은 국과수의 감정결과가 “재판에 도움이 안 된다”며 무시한 채 민홍규를 구속했다.

국새사건의 발단은 황금퍼트사업이다. 민홍규가 국새를 만들어 유명해지자 그 밑에서 일하던 보조들이 골프퍼트 제작업자와 짜고 민홍규를 동업자로 끌어들이려 했으나 거부하자 민홍규를 제거하고, 민홍규의 스펙을 자신들이 차지하기 위해 꾸미면서 불거졌다. 여기에 4대 국새 제작 백서를 담당했던 국립민속박물관 관계자와 행정자치부 일부 공무원 등도 연루돼 있다. 이창수는 민홍규가 설계해 주고 자신이 주물한 황금퍼트를 홍보하기 위해 조선조 옥새 복원 등 민홍규의 이력을 도용했다. 민홍규를 제거한 이유가 자신이 국새를 만든 장인이 돼 그 스펙을 이용해 황금퍼트사업을 홍보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속셈이 드러난 것이다.

경찰과 검찰이 사기로 몬 롯데백화점 다이아몬드옥새 전시회도 진실을 알고 나면 허탈한 웃음만 나온다. 다이아몬드옥새 전시회는 두 차례 이루어졌다. 첫 번째는 2006년 재료비만 30억 원어치가 투입된 진짜 다이아몬드 봉황옥새 전시회였고, 두 번째는 2009년의 인조 다이아몬드옥새 전시회였다. 2006년 전시품은 맞춤 주문한 재일교포 사업가 S씨의 이름이 새겨진 진품인 반면, 2009년 전시품은 민홍규가 훗날 자신의 박물관에 전시하기 위해 만든 이미테이션 작품이다. 밑면에는 ‘세불문화재단’이라 새겨져 있다. 주문이 들어오면 고객의 요구에 맞춰 제작해 주려 했던 것을 수사기관이 200만 원짜리를 40억 원에 팔려고 했다며 사기로 단정했다.

2002년 6월 15일 민홍규의 경기도 이천 공방을 찾아온 목불 정민조(왼쪽).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민홍규를 모른다. 그는 아버지 석불의 제자가 아니다”고 허위진술했다.

경찰과 검찰은 금 횡령과 금도장 로비가 무죄로 밝혀지자 민홍규를 ‘전통기술 부재’로 몰아갔다. 민홍규를 기필코 구속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모종의 미션을 수행하는 듯했다. 민홍규는 수사 초기부터 줄곧 ‘공개 시연’을 주장했다. 시연만 해보면 금세 진실이 판가름 날 간단한 일을 경찰과 검찰, 재판부는 기를 쓰며 잘못된 결론을 내렸다. 뭔가 거대한 권력이 뒤에서 조종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민홍규는 수감 중 “내가 갖고 있는 기술이 어디 가겠느냐”며 출소 후에 공개 시연을 하겠다고 담담해 하며, 3년 형기를 다 채우고 2013년 9월 출소했다.

민홍규가 갖고 있는 국새 제작 전통기법은 거푸집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 석고로 하는 현대기법과 달리 전통기법의 재료는 진흙이다. 석고거푸집은 섭씨 1,000도 이상 가열하면 깨지지만, 진흙거푸집은 2,000도 이상 가열(소성)해도 깨지지 않는다. 전통 항아리처럼 숨을 쉬는 진흙의 고유한 성질 때문이다. 이창수와 검찰이 비법인 양 주장하는 주물은 녹은 액체를 거푸집에 붓는 단순한 행위에 불과하다. 비법과는 거리가 멀다.
경기도박물관 옥상에 민홍규가 설치한 전통국새 제작용 ‘대왕가마’.

제보자들이 집요하게 알아내고 싶었던 것은 민홍규가 가진 ‘비법’이었다. 하지만 민홍규는 목숨보다 소중한 비법을 알려줄 수 없었다. 차라리 교도소를 가더라도 비법은 공개할 수 없었다. 민홍규는 “백악관이 코카콜라를 주문하면 코카콜라만 납품하면 되지, 코카콜라 비법까지 알려줄 의무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국가가 한 장인에게 국새 하나를 주문하고 그 비법까지 공개하라고 하면 그것은 공권력의 횡포다. 범죄나 다름없다.

민홍규는 조선시대 옥새전각장의 맥을 잇는 대한민국 초대 국새 제작자 석불(石佛) 정기호(1899∼1989) 선생으로부터 국새 전통주물기법을 전수받았다. 수십 년 동안 부단한 실험을 통해 전통주물기술을 복원하여 완성했다. 조선시대 옥새 73과 중 40여 과를 복원해 경기도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기증했다. 전에도 후에도 이런 일을 한 사람은 민홍규밖에 없다.

석불의 아들 목불(木佛) 정민조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민홍규를 모른다. 아버지의 제자가 아니다”고 한 말은 거짓이다. 석불 정기호가 만든 1대 국새에 관한 모든 기록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의 옥새전각장 계보도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석불 유고집인 <고옥새간회정도>(古玉璽看繪鄭圖·오래된 옥새에 관한 정씨의 그림)를 자신이 아닌 제자 민홍규에게 물려준 데 대해 오해와 누군가의 이간질로 화가 단단히 났기 때문이다.
민홍규가 만든 삼족오 옥새. 기품이 다르다.

국새사건은 정치적 성격도 있다. 이명박정부가 민간인 사찰과 4대강 문제로 수세에 몰린 정세를 반전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작했다는 의혹이다. 재판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행정안전부는 4대 국새를 폐기하고 5대 국새를 새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참여정부 때 만든 국새를 의도적으로 폐기처분하려 한 저의가 읽혀진다. 국새가 제작되던 2007년 당시 정치적 실세였던 한명숙 총리와 정동영 장관, 이미경 의원을 겨냥한 표적수사에 공을 들인 흔적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재판이 한창 진행중이던 2011년 4.27 국회의원 재보선 때는 분당에 출마한 손학규 민주당 대표를 표적으로 삼기도 했다. 검사는 민홍규에게 “손학규한테 금도장을 바쳤다고 하면 수사 자료를 모두 소각하고 없던 일로 해주겠다”고 회유했다.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일언지하에 거절했지만, 당시 정부가 민홍규를 어떻게 활용하려 했는지 명백히 드러난 사례다. 앞서 한 검사는 민홍규한테 “나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옥새를 제작했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충고한 일도 있다.

국새는 민홍규가 만들었지만 대한민국의 상징물이다. 과거 왕조시대 땐 절대권력의 상징이었다. 한 나라의 도장 이상의 의미가 있다. 국새를 가지고 장난친 이번 사건의 연루자들은 반드시 재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 엄벌해야 한다. 민홍규가 만든 4대 국새가 폐기 처분된 이후 공교롭게도 우리나라엔 국난에 가까운 변고들이 잇따르고 있다. 이창수 등이 이 사건을 모의할 때인 2010년부터 대충 헤아려도 북한에 의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장거리 로켓 은하3호 발사, 3차 핵실험 등이 있었다.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우면산 산사태, 태안 해병대캠프 고교생 참사, 경주 리조트 강당 붕괴 대학생 참사, 세월호 침몰 등 대형 참사들이 잇따르고 있다. 4대 국새를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하는 이유이다.

책은 일련의 사건을 통해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경찰·검찰·재판부의 엉터리 수사의 문제점, 허위의식 등을 고발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정부기록원 수장고에 잠들어 있는 4대 국새의 권위를 회복하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실추된 명예를 되찾아주고자 한다.


민홍규의 작업실인 경기도 이천 공방. 대문 손잡이도 전통국새 모양이다.

민홍규 재판 때 무료변론에 나섰던 박찬종 변호사는 에필로그를 통해 “나는 민홍규의 무죄를 확신한다. 명확한 증거들이 있음에도 이를 배척한 사법부의 판단을 이해할 수 없다. 몇몇 사기꾼들의 어설프고 조잡한 모함에 놀아난 수사기간에 부끄럽게 여기고 재수사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23년 동안 판사를 역임한 황종국 변호사는 “변론을 하며 이 사건은 배후에서 누군가가 진두지휘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민홍규 선생이 어떤 인물이며 얼마나 원대한 뜻을 4대 국새에 담았는지 이 책과 곧 나올 ‘터’(민홍규 지음)를 통해 알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서울구치소 교정위원을 지낸 안현수 수지광성교회 담임목사는 “구치소에서 만난 민홍규 선생의 얼굴에서 진실함과 순수성을 느꼈다. 언젠가 그의 무고함이 밝혀지리라 믿는다. 진실은 끝내 승리한다”는 추천사를 보내왔다.

한편, 민홍규는 옥중에서 집필한 ‘터’(원 제목은 ‘등자울’)를 통해 경남 산청에 국새전각전을 짓고 4대 국새를 만든 이야기부터 국내 최대 기(氣)바위로 알려진 석경, 귀감석, 복석정 등을 발굴하고 터를 잡는 과정을 상세하게 공개했다.

민홍규 “4대 국새 전통방식으로 제작했다”
“‘전통방식 없다’는 경찰 발표 허위…언제든지 공개 시연 할 수 있다”

 ‘국새 의혹’으로 경찰에 구속된 민홍규(56) 제4대 국새제작단장이 가족과 지인을 통해 ‘국새 의혹 관련 소회문’을 내놓고 경찰이 발표한 모든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민 단장의 지이라고 밝힌 이철안(55·목사)씨와 민 단장의 아내 김경자(52)씨, 딸 진아(30)씨는 14일 오전 종로구 삼청동 카페 더 레스토랑에서 전날 민 단장이 건넨 ‘국새 의혹 관련 소회문’을 언론에 공개했다.
 민 단장은 소회문에서 “2007년 제작된 4대 국새는 행정안전부와 계약한 대로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제작됐다”며 “전통기술에 대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공개 시연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언론에서 4대 국새 제작을 위해 사용됐다고 보도된 현대 기법은 실물을 제작하기 전 샘플 제작을 위해 사용된 것이며, 경찰 조사 과정에서도 이를 줄곧 주장했다”고 전했다.
 민 단장은 또 “국새 제작을 위해 구입한 금은 모두 국새 제작에 사용했고, 주물 후 잔류물로 남았던 도가니 내의 금 합금물, 탕구주물 등 금 1kg 내외는 현재도 국새 제작 형상 그대로 남아있다”고 주장했다.
 민 단장은 “현재 수사방향이 허위 제보나 잘못된 언론 보도를 근거로 하고 있다는 의혹을 갖고 있다. 국새에 대한 근거 없는 의혹 제기나 부적절한 논란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 단장은 경찰 조사를 받던 중 지병인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지난 10일부터 고려대 안암병원 중환자실에서 입원치료 중이다.
 다음은 이날 민 단장이 발표한 ‘국새 의혹 관련 소회문’ 전문이다.
 안녕하십니까? 제4대 국새 제작단장을 맡았던 민홍규입니다. 그동안 국가의 신성한 상징물인 국새에 관련한 다양한 의혹이 제기되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저는 현재 경찰수사과정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던 중 쓰러져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동안 언론에서 보도되는 내용이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확산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경찰의 수사과정에서 진실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질 수 있다고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사 초기부터 성실하게 임하였으나, 수사과정이 진실을 밝히는 것과는 다르게 왜곡되어져 가는 것에 대한 부당함을 호소하고자 이에 소회문을 밝힙니다.
 첫째, 2007년 제작된 4대 국새는 행정안전부와 계약한 대로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제작되었습니다.
 전통기법은 밀랍으로 모형을 만들고, 진흙 거푸집에 넣어 전통가마에서 굽는 것입니다. 정부에 납품한 국새의 작업은 이 방식에 따라 경남 산청 국새전각전에서 제작되었음을 명백하게 밝혀드립니다. 언론에서 4대 국새 제작을 위해 사용되었다고 보도된 현대기법은 실물을 제작하기 전, 샘플제작을 위해 사용된 것입니다. 그런데 4대 국새가 현대기법에 의해 제작되었다고 왜 보도되었는지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는 하늘에 맹세하건대 4대 국새를 전통기법으로 제작하였으며, 조사과정에서도 이를 줄곧 주장하였습니다.
 우리의 전통 주물기술로 만들어진 국새는 한국원자력연구소의 조사결과에서도 밝혀졌듯이 한 치의 흠결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후 현재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잘 사용되고 있습니다. 저는 전통기술에 대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공개 시연을 할 수 있음을 명확하게 밝힙니다.
 둘째, 국새 제작을 위해 구입하였던 금은 모두 국새 제작에 사용되었고, 주물 후 잔류물로 남았던 도가니 내의 금 합금물, 탕구주물 등(약 금 1kg 내외)이 현재도 국새제작 형상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연유에 의해 잘못된 정보가 나왔는지 모르지만 언론에 보도된 ‘남은 금으로 금도장을 만들었다거나, 1.2kg 또는 800g을 횡령하였다’는 내용은 진실이 아닙니다. 초기 국새는 약 2Kg정도로 예상하였지만, 최종적으로 약 2.9Kg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따라서 국새제작을 위해 구입하였던 금이 모자라 제가 보유하고 있던 금도 사용되었다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국새 제작 당시에 사용하였던 도가니, 남은 증거물을 초기 경찰에 모두 제시하였지만, 이에 대한 압수를 거부하였으며 본인이 계속 문제를 제기하자 임의제출을 요구하였습니다. 저는 남은 잔류물을 산청군에서 건립하고 있는 국새전각전에 역사적 유물로 전시될 수 있도록 기증할 목적으로 원형 그대로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이 역사적 가치를 지닌 유물을 금함량을 파악한다는 이유로 녹이려 하고 있습니다.
 셋째, 2006년에 제작되어 롯데백화점에 전시하였던 진품은 제작비용을 부담한 지인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2009년 초에 롯데백화점에서 전시된 봉황국새는 2006년에 전시한 진품의 이미테이션으로 본인이 기념으로 보관하고 있던 중 롯데백화점 측에서 2006년과 유사한 전시를 해줄 것을 박희웅을 통해서 요청을 받고 전시를 한 것입니다. 만약 매수자가 나올 경우 제작비용을 받아 정식으로 제작하여 줄 예정이었습니다.
 전시된 봉황국새의 인문 부문의 글자는 임의적으로 새겨진 것이고, 판매되면 매수자의 요청에 따라 새로 새겨야 하므로 전시품을 그대로 판매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한 금액이 고가이기 때문에 당연히 다이아몬드의 진품 여부, 백금 부문에 공식적인 감정을 거치지 않고 매수할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에 전시품을 그대로 판매하려고 하였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릅니다.
 넷째, 저는 언론이나 행안부에서 제기한 모든 의혹을 말끔하게 해명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수사에 협조하였으며, 앞으로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저는 현재의 수사방향이 잘못된 언론보도나 허위 제보를 근거로 하고 있다는 의혹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수사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우리 전통문화를 계승·복원·발전시켜나가는 일이 이 땅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장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이번 기회에 절실히 느꼈습니다.
 저는 인생을 바쳐 국새제작 전통기법을 계승, 발전시켜 온 것에 대해 무한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물며 제가 사소한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4대 국새를 제작한 전통장인으로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횡령, 사기행위를 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전통기술을 현대적으로 이해·해석하기 어렵다고 폄하하고,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계승하지 않는 현실을 개탄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이 이 땅에서 소신을 가지고 전통문화를 지켜나가는 수많은 장인들의 의지를 꺾고,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우리의 유구한 전통문화를 사장시키고 있습니다.
 저의 부덕함에 대한 질책은 달게 받겠으나, 대한민국의 상징인, 국새에 대한 근거 없는 의혹제기나 부적절한 논란이 더 이상 확산되는 것은 국가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더 4대 국새제작단장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혼란을 초래하고 심려를 끼쳐드린 점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2010년 9월 13일
4대 국새제작단장 민홍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