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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대표적 좌파 경제사학자였던 안병직(사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22일 북한전문인터넷 ‘데일리NK’(www.dailynk.com)에 기고한 글입니다.

북한의 개혁개방은 한국정부의 미련일 뿐이다

머리말

 북한의 개혁개방 與否(여부)는 한국의 대북정책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규정한다. 그것은, 북한의 개방개혁을 어떻게 前提(전제)하는냐에 따라, 남북관계가 냉전관계냐 화해협력관계냐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간의 남북관계의 전개도 이 점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20세기말까지는 북한의 개혁개방을 전망할 수 없었기 때문에 냉전체제가 유지될 수밖에 없었으나, 21세기에 들어와서는 북한의 개혁개방이 전망된다고 전제하고 화해협력정책이 試圖(시도)되어 왔다. 2000년의 6.15남북공동선언을 계기로 지금까지 추구되고 있는 햇볕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면 북한의 개혁개방이 어떻게 하여 남북간의 화해협력을 가능케 하는가. 그것은 개혁이 북한에 있어 시장경제의 정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북한으로의 시장경제의 도입은,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체제로의 이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북한으로 하여금 자본주의적 세계시장권 밖에서는 존립할 수 없게 한다. 따라서 그것은 북한경제와 세계시장과의 관계를 밀접하게 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것은 바로 북한과 한국 및 미국과의 협력으로 直結(직결)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북한의 개혁개방은 북한, 한국 및 미국간의 협력관계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그러나 6.15남북공동선언이후의 6년간의 경험은, 한국정부의 必死的(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한국 및 미국간의 화해협력을 결과하지 못했다. 그간의 한국정부는 자기의 가장 중요한 대외정책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남북협력에 적잖은 비용을 지불하여 왔으나, 南南葛藤(남남갈등)과 북미갈등은 증폭되었으면 되었지 감소되어가는 것 같지는 않다. 한국정부는 이 갈등을 냉전세력의 방해의 결과로 인식하는 듯하나, 실제로 그것은 북한정부가 개혁개방을 거부하고 핵과 미사일을 개발함으로써 야기된 주변국에 대한 군사적 위협과 북한주민의 기아와 노예화의 결과로 보인다.

 북한이 개혁개방을 거부하는 것은 여러가지 面(면)으로 실증되고 있다. 우선 강성대국과 선군정치라는 國政(국정)의 기본방향이 개혁개방정책과는 조화될 수 없다. 둘째 自力更生(자력갱생)을 기본원리로 하는 자립경제와 계획경제체제의 고수가 개혁개방을 전혀 불가능케 한다. 셋째 개혁개방정책으로도 이해될 수 있는 2002년의 7.1경제관리 개선조치와 금강산특구·개성공단도, 북한경제의 고립적 체질과 붕괴 때문에 취할 수밖에 없었던 臨時方便(임시방편)일 뿐이며, 개혁개방은 아니다. 과거 수십년간에 걸친 각국의 대북거래에 있어서 협력기업의 事業成功事例(사업성공사례)가 전혀 없다는 점이 이를 웅변하고 있다.

1. 강성대국과 선군정치

 개혁개방은 國政(국정)의 기본방향이다. 2000년의 6.15남북공동선언이 이러한 점을 제대로 검토하고 이루어졌는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90년전후의 사회주의제국의 붕괴, 기아의 발생 및 김일성의 사망 등이 북한의 개혁개방을 필연화시킬 것이라는 막연한 推測(추측)하에서 남북공동성명이 나온 것이 아닌가 한다. 다시 말하면, 햇볕정책으로 남북의 대결구도만 청산되면, 북한은 자연히 개혁개방되리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막연한 기대는 남북간의 화해-교류-연합의 3단계로 구성되는 金大中(김대중)의 空想的(공상적) 통일방안에 의하여 증폭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은 1998년에 이미 국정의 기본방향을 强盛大國(강성대국)으로 결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1998년은 북한에게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김일성의 사망, 3백만으로 추산되는 막대한 餓死者(아사자)의 발생, 중국으로의 탈북자 속출 및 국내경제의 總崩壞(총붕괴) 등이 당시의 북한이 당면한 상황이었다. 북한은 이러한 상황을 스스로 「苦難의 行軍」(고난의 행군)이라 부른다. 그런데 강성대국이라는 국정방향은,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위와 같은 어려움을 제대로 극복하기 위한 국정방향이 아니라, 오직 김정일정권만을 연명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면 강성대국이란 어떠한 국정방향인가. 주변의 舊社會主義諸國(구사회주의제국)이 개혁개방정책을 선택하는 것을 보면서도, 북한만은 舊體制(구체제)를 固守(고수)한다는 것이다. 김정일은 개혁개방이 구사회주의제국에서 붕괴된 국민경제를 재건하는 정책이기는 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정권교체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똑똑히 보았다. 따라서 남북이 첨예하게 대결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정치범수용소와 기아에 찌든 인민의 大海(대해)위에 군림하고 있는 김정일로서는 아무리 국내외정세가 어렵다고 하더라도 자기생존을 위해서는 기존의 노선을 강화하는 길 밖에 없었던 것이다.

 강성대국이 기존체제를 강화하는 것이라는 것은 강성대국의 내용을 살펴보면 곧 알 수 있다. 강성대국은 우선 사회주의 강성대국이다. 다시 말하면, 북한은 周邊國(주변국)이 모두 계획경제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하여 시장경제로 전환한다고 하더라도 기존의 사회주의노선을 강화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김정일의 입장은 강성대국의 내용에서도 명백하게 보이고 있다. 강성대국은 정치사상대국, 군사대국 및 경제대국으로 구성되어있는데, 그 구성내용의 어느 것 하나 구체제의 계승ㆍ강화ㆍ발전이 아닌 것이 없다.

 첫째 정치사상대국인데, 그것은 專制的 一人獨裁(전제적 일인독재)를 강화하기 위하여 그들이 오래토록 다져오던 主體思想(주체사상)과 唯一思想(유일사상)의 연장성상에 있다. 주체사상의 핵심은 유일사상인데, 유일사상은 「首領의 思想과 領導(수령의 사상과 영도)」를 神格化(신격화), 絶對化(절대화), 信條化(신조화), 無條件化(무조건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君主像(군주상)은 헤겔의 역사철학에서나 읽을 수 있는 유일한 自由人(자유인)으로서의 「중국의 天子(천자)」 바로 그것이다. 강성대국론에 따르면, 「나라는 자기의 수반을 닮는다. 국가수반은 국위이고 국권이며 국력이다」라는 것이다. 따라서 강력한 수반의 지도 밑에 일치단결하면, 天下無敵(천하무적)의 정치강국이 건설된다는 것이다.

 둘째 군사대국인데, 그것은 전인민의 무장화와 군사우선의 정치이다. 군사대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정치적 및 경제적 총역량을 군사화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결국 軍事工業(군사공업)의 建設(건설)로 나타난다. 그러나 주지하는 바와 같이 국민경제가 총체적으로 파탄된 조건하에서 군사공업의 건설이란 용이하지 않다. 그리고 설령 군사공업의 건설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現代戰(현대전)은 火力戰(화력전)이기 때문에 석유 없는 군사대국은 실현될 수 없다. 결국 군사대국을 건설하는 첩경은 핵과 미사일의 개발이다. 그들이 핵과 미사일의 개발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셋째 경제대국인데, 경제대국은 정치사상대국이나 군사대국과는 달리 아직 未完成(미완성)이라 한다. 그들은 경제대국의 건설에 있어서는 自力更生(자력갱생)을 기초로 하는 자립경제의 원칙을 철저히 관철하고자 한다. 그리고 자립경제를 건설하기 위한 정책수단으로서는 계획경제밖에 없다고 한다. 따라서 그들은 시장경제와 국제분업에 의존하지 않는 경제대국을 건설하려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대국은 일찍이 지구상에서 있어본 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러한 경제를 건설하려는 것은 김정일의 恣意的(자의적) 정책을 구속하는 시장원리와 국제분업의 룰을 排除(배제)하기 위함이다.

 강성대국은,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사실상 軍事大國(군사대국)일 뿐이다. 구사회주의제국이 대개 그러하였지만, 남북이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가운데서 형성된 북한이라는 국가는 본래 군사국가적 성격이 강했던 것이다. 그런데, 2002년에 들어오면서부터 이 강성대국의 개념은 先軍政治(선군정치)의 개념으로 이행하고 있다. 선군정치란 「先(선)체제수호 後(후)경제회생」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중국의 例(예)에서 보듯이, 개혁개방정책이란 국정의 최우선과제임을 명백히 보았다. 따라서 선군정치를 최우선과제로 하는 북한이 개혁개방에 대하여 敵對的(적대적)일 수밖에 없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2. 자립경제와 계획경제

 우리는 북한이 전통적으로 「정치에 있어서의 自主(자주)」, 「경제에 있어서의 自立(자립)」 및 「군사에 있어서의 自衛(자위)」라는 排他的(배타적) 민족주의를 추구해온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민족주의는 자본주의제국에 대해서 뿐만이 아니라 兄弟國(형제국)이라고 하는 사회주의제국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따라서 북한의 민족주의는 사회주의제국의 전통적인 인터내셔널리즘까지도 부정하게 된다. 이러한 북한의 민족주의는 급기야 대외관계에 관한 사상으로 머물지 않고 「사상에 있어서의 주체」라고 하는 주체사상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김일성에 의하면, 「주체성을 확립한다고 하는 것은 다른 나라에의 의뢰심을 버리고, 자기의 머리로 생각하고, 자기의 힘을 믿어서,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발휘하여 자기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이 책임을 지고 해결해가는 자주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것」[각주1].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주체사상을 구현하는 국민경제건설의 기본방향은 국제경제협력을 거의 완전히 배제하는 自力更生(자력갱생)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자력갱생사상은 국제분업에 구애받지 않는 국민경제를 건설하자는 것이나, 근대적 국민경제는 필연적으로 국제분업을 그 중요한 구성요소로 할 수밖에 없다.

 독자들이 위와 같은 자립경제개념에 대한 필자의 소개를 믿지 못할 것 같아서 북한이 자립경제를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소개하기로 한다. 「자립적 민족경제는 자기 나라의 자원과 기술, 자기 인민의 힘에 의거하여 제발로 걸어가는 경제이다. 이것은 자립적 민족경제가 자체의 잠재력과 온갖 가능성을 남김없이 동원하여 생산과 건설을 최대한도로 다그쳐갈 수 있는 우월한 경제라는 것을 말하여준다. 경제를 활성화하는 참다운 길은 자립의 길 이외에 있을 수 없다.[각주6]」 초보적인 경제이론이라도 이해하는 독자라면 위의 記述(기술)이 레토릭이지 경제논리가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위와 같이 자립적 민족경제가 「자기 나라의 자원과 기술」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북한경제는 항상 원료와 에너지의 공급이 거의 杜絶(두절)된 상태에 있다. 이러한 상황을 타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개혁개방밖에 없으나, 그들은 이에 대해서는 결사반대한다. 같은 논문에서 그들은 「제국주의의 세계경제일체화책동을 철저히 배격하자」라던가 「제국주의자들이 念佛(염불)처럼 외우는 개혁, 개방타령은 사탕발린 독약과 같은 것이다」라고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한국경제를 「식민지거품경제」로 규정하였다.

 북한이 개혁개방을 결사코 반대하는 것은 단순히 국민경제의 대외의존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개혁개방이 자본주의적 풍조가 국내로 침투하는 것이다. 국민들에 대한 사상통제로 겨우 유지되고 있는 김정일 정권으로서는 思想的(사상적) 解弛(해이)야말로 자기 정권의 붕괴로 직결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사상적 통제를 제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사상의 통제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때문에 그들에게는 내부적 사상통제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그들은 이를 위한 수단으로서 계획경제를 선택했다.

 북한은 사회주의경제의 본질이야말로 계획경제라고 한다. 그러므로 2002년 7월 1일을 기준으로 실시된 「경제관리 개선조치」는 계획경제와 背馳(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계획경제를 보강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조선과 대결관계에 있는 나라들에서는 2002년의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조선에서 계획경제와 대치되는 국가통제를 벗어난 경제활동이 벌어지게 되었다는 견해와 분석들이 유포되고 있다. 윤광욱 국장은 그것이 악의에 찬 반공화국선전의 일환이 아니면 사회주의경제의 본질과 조선의 현실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그러면 정말 현재 북한에서 실시되고 있는 계획경제가 사회주의에 있어서의 계획경제라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아래에서 7.1경제관리 개선조치에서 배급제도가 붕괴되었기 때문에 賃金制度(임금제도)로 이행했음을 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치의 불가피한 일환으로 「종합시장」이 부활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 계획경제가 건재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윤국장의 말대로 비록 배급체계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시장이 부분적으로 부활된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은 국가통제를 벗어난 경제활동이 아니라는 뜻에서이다.

 개혁개방은 시장경제가 계획경제를 대체한다. 개혁개방은 시장경제의 기본플레이어인 소농경영, 소규모의 자영업 및 기업의 출현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계획경제의 붕괴로 임금제도와 「종합시장」이 부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의 기본플레이어의 출현은 허용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국가가 인민들에게 배급을 보장하지 못하는 속에서도 소농경영, 자영업 및 기업 등으로 구성되는 인민의 獨自的(독자적)인 經濟活動(경제활동)의 空間(공간)은 절대로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계획경제는 배급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에서 인민을 無所有(무소유)의 奴隸的 狀態(노예적 상태)로 묶어두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3. 7.1경제관리 개선조치와 금강산특구 개성공단

 2002년 7월 1일자로 단행된 북한의 「경제관리 개선조치」는, 그 정책자료에서 이 조치가 「그 어떠한 개혁, 개방이나 자본주의적 방법」이 아님을 명백히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적으로 혹시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가는 계기로 되지 않을까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본인은 관계자료를 읽고 그 조치가 붕괴된 북한경제에 대한 임기응변적 대응임을 곧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두 가지 점에서였다. 첫째 그 조치에서는 기존의 체제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體制原理(체제원리)가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요, 둘째는 정책내용이 다급한 현실에 대처하기 위한 구차한 것들뿐이라는 점에서였다.

 그러면, 그 조치가 어떠한 점에서 臨時方便的(임시방편적)이라는 것인가. 94년 이후 북한을 줄곧 관찰해온 본인에게는 그 조치가 붕괴된 배급제도에 대한 대처임을 곧 알 수 있었다. 북한에서는 이미 94년 이후의 기아때문에 인민들이 직장으로부터 이탈하고 농산물의 수매가 불가능하게 됨으로써 이미 배급물자를 제대로 확보할 수 없었다. 배급물자를 확보할 수 없는 조건하에서 노동자들을 직장으로 복귀시키는 방법은 이제 배급대신에 임금을 지불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런데, 임금지불이 노동력 동원이라는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일정 범위에서의 가격과 시장의 부활이 필수적이다.

 그러면, 이 조치가 어느 범위에서 임금, 가격 및 시장을 부활하였는가. 임금의 부활은 군인으로부터 공무원 및 일반근로자의 봉급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 가격의 부활은 소비재에서 생산재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리고 교통비와 전기료 등의 서비스요금도 전면적으로 현실화하였다. 그러나 시장은 농산물의 거래가 위주로 되어있는 농민시장밖에 허용되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하면, 가격은 전면적으로 부활하였으나, 시장은 賃金財(임금재)를 거래하는 일부의 소비품시장에 국한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생산재와 일부의 소비재의 분배에 있어서는 배급제도가 아직도 건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점을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하여 가격의 부활과 더불어 허용된 시장의 상황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북한에서 자유로운 거래가 허용되는 시장은 소비재시장뿐이다. 처음에는 농산물을 거래하는 재래의 「농민시장」만을 허용하였으나, 이 농민시장은 2003년부터 공산물소비재도 거래되는 「종합시장」으로 발전하였다. 북한에는 전국적으로 약 300餘基(여기)의 시장이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농산물과 수입품을 거래하는 場市(장시)에 불과하며, 제대로 시설을 갖춘 것으로서는 평양 낙랑구 통일거리에 설치된 종합시장(100m×60m) 한 곳이 소개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 시장에서 거래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인가. 그들 중에는 상인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 대부분은 그 지역의 주민들이다. 시장의 대표격인 평양 낙랑구 통일거리의 종합시장도 처음에는 지역주민들이 거래하는 장시에 불과했다. 그러나 시설이 갖추어지고 공장과 기업이 거래에 참가하게 되자 그 시장은 곧「국영기업소」로 되었다[각주11]. 시장이 국영기업소로 전환하자 賣臺(매대)에는 판매원이 배치되고, 시장은 판매원들이 생산자로부터 소비재를 구입하여 고객에게 판매하는 공간으로 전환되어 갔다. 그러니까 종합시장도 어느 정도 발전하게 되면 국영상점으로 흡수된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종합시장이라는 것은 물자거래가 지극히 빈약하고 시설이 전혀없는 虛市(허시)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종합시장은 생산물이 유통되는 주된 配給機構(배급기구)가 될 수 없다. 북한에는 물자의 배급기구로서는, 아직도 배급기구가 기본적으로 유지되고 있고, 시장으로서는 「국내의 공장, 기업소들에서 생산된 원료, 자재들을 교류하는 사회주의물자시장, 수입된 자재, 원료를 교류하는 수입물자교류시장, 그리고 인민생활에 필요한 소비품이 유통되는 종합시장」이 있는데, 어느 정도 가격기능이 살아있는 종합시장이 북한의 총물자교류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란 지엽적인 것이다.

 7.1경제관리 개선조치가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다른 면에서도 보인다. 제대로 된 시장경제가 성립하려면 소농경영, 자영업 및 기업 등의 시장플레이어가 출현해야 한다. 그런데, 7.1경제관리 개선조치는 이 점에 대하여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집단농장의 해체는 물론 自留地(자경지)의 확대도 없다. 자영업이라고 볼만한 것은 가정의 잉여노동과 폐품을 이용하는 家內作業班(가내작업반)밖에 허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북한의 기업이라는 것은, 개혁개방초기의 중국의 例(예)에서 볼 수 있듯이, 대개가 官廳(관청)일 뿐이다. 이러한 조건하에서는 시장경제란 존립할 수 없는 것이다.

 위와 같은 북한 경제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금강산특구와 개성공단의 실상이 더욱 명백하게 보일 것이다. 만약 금강산특구와 개성공단이 개혁개방의 線上(선상)에 있는 것이라면, 거기에 북한의 기업이 출현되어야 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바와 같이 거기에는 한국의 기업밖에 없다. 백보를 양보하여 그 사업들이 개혁개방의 일환이라고 이야기되려면, 그 사업의 배후에서라도 북한의 기업이 관여해야 한다. 우리는 아직 그러한 것을 본 일이 없다. 다시 말하면, 국내에서 시장경제가 발전하지 않는 개혁개방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금강산특구와 개성공단은 무엇인가. 북한은 극단적인 자립경제를 추구함으로써 필연적으로 외화부족을 자초할 수밖에 없었다. 구사회주의제국이 건재했을 때에는 외화부족을 원조로써 해결하였으나, 이제는 그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한 때는 재일동포에 대한 수탈, 무기수출, 달러위조 및 마약밀수로 그 어려움을 타개하려하였으나, 그것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하는 수 없이 선택된 것이 금강산특구와 개성공단의 출현이다. 금강산특구와 개성공단은, 현대로부터의 5억불의 賂物(뇌물)과 더불어, 노골적인 북한의 외화벌이 장소이지 개혁개방의 일환이 아니다. 거기에서는 거래의 자유를 보장하는 시장의 룰이 전혀 출현하고 있지 않다.

맺음말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북한에는 현재 주체사상과 유일사상, 선군정치와 핵 및 미사일의 개발, 자립경제와 계획경제가 지배하고 있는데, 어느 것 하나 개혁개방을 허용할 여지가 없다. 그들은 국민경제의 總破綻(총파탄)과 외화부족으로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단행하고 금강산특구 및 개성공단을 설치하고 있으나, 이러한 조치들은 그들의 姑息的(고식적)인 閉鎖經濟(폐쇄경제)와 계획경제를 보완하거나 재건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들은 외부로부터의 사상적 영향을 배제하는 한편, 인민들을 사상적 통제를 강화하기 위하여 개혁개방의 요구야말로 정권의 붕괴를 노리는 외부의 음흉한 음모라고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북한은 이미 자발적인 개혁개방의 가능성을 상실한 것 같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로는 선군정치라는 국정의 기본방향이 개혁개방과는 정면으로 모순한다는 사실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추가적인 사정이 있다. 첫째, 개방개혁을 단행하는 순간 남북간의 경제격차가 너무나 두드러진 사실이 북한 주민에게 알려짐으로써 현북한 정권은 그 존립의 정당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둘째, 현재 북한경제는 인프라마저 완전히 붕괴된 상황이기 때문에 그 재건을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외부로부터의 원조가 필요한데, 현 정권이 그대로 유지되는 한 그러한 규모의 원조는 획득될 수가 없다.

 김정일은 위와 같은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기의 생존을 위한 選擇枝(선택지)는 지극히 협소하다는 것을 명백하게 인식하고 있다. 즉,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것처럼 김정일에게는 선군정치를 더욱 강화하면서 핵과 미사일의 개발을 강화하는 길 이외의 다른 선택지란 남아있지 않다. 이러한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북한주민의 정신적 물질적 노예화요, 둘째는 북한주민에 대한 人質劇(인질극)과 외부에 대한 核威脅(핵위협)에 의한 원조(貢納?)의 확보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국과 중국의 대북지원은 위와 같은 김정일의 의도를 충족하고도 남음이 있다. 국민정부와 참여정부에게는 앞으로 위와 같은 북한의 정책에 迎合(영합)한 책임을 물을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만약 북한의 개혁개방의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면, 지금까지 북한의 개혁개방을 전제로 전개되었던 대북정책은 어떻게 轉換(전환)되어야 하는가.

 (1) 북한의 개혁개방의 전망은 전혀 없으므로 6.15南北共同宣言(남북공동선언)은 폐기되어야 한다. 6.15남북공동선언의 廢棄(폐기)가 남북대화의 단절을 가져올 것으로 우려하는 자들도 있으나, 그것은 杞憂(기우)에 불과하다. 북한은, 완전한 고립상태에서는 그 存立(존립)이 불가능하므로, 반드시 변화된 姿勢(자세)로 대외접근을 시도할 것이다.

 (2) 북한의 人權問題(인권문제)에 대해서는 그것을 발생케 하는 根本(근본)에까지 溯及(소급)하여 대처해야 한다. 현재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되고 있는 고문, 공개처형, 정치범수용소, 탈북자, 매춘 및 영아살해 등의 제 문제는 실제로 북한주민의 一般的(일반적) 飢餓(기아)와 奴隸化(노예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따라서 북한인권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북한의 體制變化(체제변화)에 의해서만이 가능하다.

 (3) 현 북한정부의 존립이 북한정부와 북한주민에 대한 支援(지원)을 拒否(거부)하는 名分(명분)으로 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북한주민의 기아를 완화하기 위한 지원은 그 分配(분배)의 透明性(투명성)이 검증될 수 있어야 하며, 북한 정부에 대한 지원은 相互主義(상호주의)에 입각해야 한다. 요컨대, 대북지원에 있어서는 검증과 상호주의라는 原理原則(원리원칙)이 준수되어야 한다.

■“카인은 동생을 죽였다”
 “인류 최초의 두 형제는 카인과 아벨이었지만, 카인은 결국 동생을 죽였다.”
 한국 정부의 한 각료가 헨리 하이드 미 하원 외교위원장에게 “미국은 유일한 우방이지만 북한인들은 우리 형제”라는 말을 했다는 사실을 공개한 데니스 핼핀 하원 외교위원회 전문위원이 현재의 한미관계를 ‘장의사가 관을 봉하기 직전의 시신’에 비유하며 한 말이다.
 미 의회 내에서 한반도 문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진 핼핀 전문위원은 10월 11일 미국 상원 러셀빌딩에서 열린 한미연구소(ICAS) 주최 세미나에 참석 ‘트로이의 목마:한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한미동맹을 해치는 북한의 성공적인 선전술’이란 글을 통해, 한국사회가 우방인 미국에 등을 돌리고 북한과의 화해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핼핀 전문위원은 특히 한국 사회와 지도층에 대해 ‘교육부가 학내 교과과정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다’, ‘6자회담에서 중국의 장단에 맞춰 열심히 악기를 연주한다’, ‘한반도 내 동족의 인권유린에 대해 침묵하면서 유엔 사무총장 후보를 거론하는 건 모순’이라는 등의 강도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핼핀 위원은 이어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남북 화해와 민족적인 단결을 외치며 외국인들을 배척하고 있다”면서 “이런 움직임은 부유하고 역동적인 한국의 패망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니얼 블루멘털 미 기업연구소(AEI) 연구원은 “한국이 국방백서를 통해 북한을 더 이상 주적이 아니라고 했다”면서 “북한이 적이 아니면 한미동맹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고, 미 의회가 미국의 대한 방위공약 준수에 의문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블루멘털 연구원은 “어떤 경우에도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정권을 타도하는 것”이라고 6자회담 무용론을 제기했다.
 다음은 핼핀 위원의 발표문 요약이다.
『북한은 김정일이 마치 영화 트로이를 봤거나 책을 읽기라도 한듯이 고대 그리스인들이 경탄해 마지않을 정도로 성공적인 것 같은 남한 저해 캠페인을  펼쳐왔다.
 ‘남북화해’라는 유혹적인 말을 사용하는 북한의 선전공세는 세계의 부러움을 산 한국의 경제 정치적 발전을 위협하고 있다. 트로이에서처럼 나이든 세대가 가공할 결과를 경고하는 가운데 젊은 세대가 남북 화해와 민족통합의 승리를 열성적으로 기리는 길을 따른다면 번영하는 힘찬 한국은 종말에 다다르고 말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이후 남북화해 노력과 점증하는 한미동맹의 경시  사이에는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다. 한국 내에서의 각종 여론조사들을 보면 ‘양키 고 홈’은 더 이상 북한에만 국한된 구호가 아니다. 광주학살과 386세대의 정치권 진입, 의정부 여중생 사망사건 등 반미, 친북 사상 등장에 있어서의 핵심 사건들은 곳곳에서 충분히 논의됐지만 새로운 건 북한이 이들을 한미관계 저해에 악용하는 교묘함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미국인들은 한국 사회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북한과의 화해를 추구하려는데 대해 의아해하고 있다.
 남북 화해의 대가가 미국과 그 상징을 거부하는 데까지 치러져야 하나? 북한을 기쁘게 하려면 한국을 일제와 전쟁에서 두번씩이나 해방시킨 맥아더장군을 전범으로 낙인찍고, 그의 동상을 무너뜨려야 하는가? 한국 내에서 북한의 이념적 목표를 조장하는 핵심은 전교조이다. 맥아더 동상에 돌을 던지며 철거를 요구하는 젊은이들은 이들이 가르치는 교실에서 역사를 배웠다.
 한국 교육부는 학내 교과과정의 통제력을 상실, 미군이 살인자로 규정되고 김일성이 한국을 일제로부터 해방시킨 장군으로 칭송되고 있다. 아시아의 교과서들이 많은 논란과 비탄의 원천임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한국도 미국과의 동맹 유지를 위해서는 다뤄져야 할 교과서 문제가 있다. 각국 정부는 젊은이들에게 주어지는 교과과정이  왜곡된 역사를 담지 않도록 할 권리와 책임이 있다.
 6자회담에서도 한국·중국·북한 연합은 큰 힘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떠오르는 중국이 6자회담 음악 연주를 지휘하는 가운데 한국사회는 중국의 장단에 맞춰 열심히 악기를 연주한 것으로 비쳐진다. 일부 한국인들은 중국과의 교역이 미국을 능가해 치솟고 있는 반면 미국과의 교역은 줄고 있는데 주목한다. 한국은 중국의 품안에 떨어지려는 약한 가지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는 잘익은 사과와 같다.
 한국은 무조건적인 대북 화해 추구로 외교계에서는 다소 권위를 잃은 게 사실이다. 한국 정부가 한반도에서 동족에게 일어나는 인권 유린에 대해 의미있는 논평을 일체 삼가고 있는 시점에 한국인이 차기 유엔 사무총장 후보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건 모순으로 보인다.
 남북 경제교류도 그리 잘 되지는 않는다. 남북경제 프로젝트에서의 부패한 관행에 대한 최근 보도들은 미 의회에 향후 그런 프로젝트들에 투입될 미 납세자들의 돈이 제대로 쓰일 것이란 믿음을 주지 못한다.
 미국인들이 남한 내 북한의 막후 선전술을 비롯한 한반도에서의 사태전개를 대체로 무시하는 사이 한국 대중들은 민족화해라는 유혹적인 말의 요술에 걸려 오랜 친구에게 등을 돌리도록 고무됐다. 미국은 이런 민족적 요동을 포용하는 차원에서 남한 내 미국인들의 자취를 줄이기 위해 용산 미군본부 이전을 추진하고, 북한 핵문제에 대해 보다 수용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국도 이라크에 군대를 파견하고 카트리나에 대대적 지원을 하는 등 지지와 성의를 나타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둘 다 너무 미흡하고 늦은 건 아닌지 염려스럽다. 남북대화와 그것이 한미 동맹에 미칠 영향을 보노라면 젊은 시절 시카고에서의 아일랜드식 초상집 밤샘이 생각이 나곤 한다. 동맹이라는 시신이 모두가 지켜보는 방 정면에 눕혀져 있고, 미국은 늙은 아저씨처럼 방구석에서 코를 골고 있다. 한국의 보수파들은 슬픔에  잠긴 유족처럼 망자를 위해 열심히 기도를 한다. 나머지 한국 사람들은 방 뒤쪽에 서서 ‘망자는 건달에 주정뱅이였다’라고 음흉하게 속삭이는 북한이라는 불만품은 친척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남은 건 장의사가 관을 봉하기 전에 유족들이 마지막으로 시신을 보는 일 밖에 없다.
 내가 틀렸기를 바란다. 외국인으로서 한국 상황에 대한 너무 솔직한 말을  하는게 주제 넘을지도 모른다. 한 한국 정부의 각료가 하이드 위원장에게 “미국은 유일한 우방이지만 북한인들은 우리 형제”라는 말을 했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장관에게 인류 최초의 두 형제는 카인과 아벨이었음을 상기시켜주고 싶다. 카인은 결국 동생을 죽였다.』
 아래 글은 이 회의에 한국 측 대표로 참가한 전경련 산하 자유기업원 이춘근 부원장의 소감문이다. 이해를 위해 전문을 게재한다.
◆워싱턴이 바라보는 북한 핵의 문제와 한미동맹
1. 들어가는 말
 2005년 10월 6일부터 7일 양일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연례 한·미 안보연구 학술회의(Annual Conference on Korea-US Security Studies)에 다녀왔다. 이 학술회의는 한·미 안보연구위원회(The Council of US-Korean Security Studies)가 1986년 이래 한해는 서울에서 그리고 다음해에는 워싱턴에서 개최하는 회의로서 올해에 20번째를 맞이하였다. 애초 한·미 양국의 예비역 장성들이 주요한 회원으로 출범한 한·미 안보 연구 위원회는 현재 군인들은 물론 학자, 언론인, 전직 외교관 등 다양한 전문가들을 포괄하고 있다.
 금년도 한·미 안보 학술회의의 대 주제는 한반도의 변동하는 역학관계 (Changing Dynamics of the Korean Peninsula)로서 9·11 이후 국제 반테러 전쟁의 맥락에서 북한 핵의 문제 및 한·미 동맹 관계에 관해 최근 부각되는 이슈들을 다루었다. 이번 학술회의의 미국 측 파트너는 헤리티지 재단(Heritage Foundation)이었으며 한국 측은 한·미안보연구 위원회와 한·미우호협회, 한국해양전략연구소 등이 지원하였다. 그동안 이 학술회의에 주한 미군 사령관을 역임했던 역대 예비역 대장들이 대거 참석했었는데 올해에는 틸럴리 대장, 세네월드 대장 등이 회의장을 지켰다.
 필자는 한·미 안보 학술회의에 여러 차례 논문 발표자, 토론자로서 참가했으며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토론자의 역할을 담당했다. 이번 회의의 대 주제는 다음과 같은 세부적인 소주제들로 나뉘어져 이틀 동안 진행되었다. 소주제들은 북한의 미래, 남한의 변동하는 정치 동태, 남북한 관계와 미국의 대 북한 정책, 한·미 관계의 미래와 전략 비전 등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동 학술회의가 열리는 기간 동안 미국 하원에서는 크리스토퍼 힐 국무차관보가 북한 핵문제에 대해서 증언을 하는 등 한국 문제가 워싱턴의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여러 차례 이 회의를 참석한 필자의 개인적 경험에 의하면 이번 회의는 가장 규모가 작은 회의였다. 워싱턴에서 회의가 열리는 경우 150명 이상의 미국 국방부 및 국무부 관련 학자 및 관리들이 참석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던데 비해 금년도 회의는 어떻게 보면 그야말로 썰렁한 회의였다는 느낌조차 든다. 과거 이 회의는 한국 측은 물론 미국의 고위급 인사들이 대거 참석, 단순한 학술 세미나의 차원을 넘어 한·미 동맹 강화를 위한 교류 및 파티의 장으로서의 역할도 담당했다. 한국 측 및 미국 측 참석자들은 ‘한·미 관계의 냉랭한 분위기가 이번 학술회의에 반영되었다’ 고 잠정적이기는 하지만, 심각한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 측 참석자들이 예상보다 적었던 반면 미국 측 참석자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솔직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회의였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 측 참석자들 중에는 ‘현재 한·미 양국의 관리들이 한·미 관계가 양호하다고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말’이라는 사실을 거침없이 내뱉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미국 측 참석자 한 사람은 ‘맥아더 장군 동상이 후세인이나 레닌처럼 취급되는 것에 불만을 표시하고, 맥아더 동상이 끌어내려질 경우 그것은 미국 사람들을 즐겁게 하지는 않을 것(not be pleased)’이라고 완곡한 표현을 사용해서 말했다. 한국의 반미감정에 대한 미국의 반응이 점차 미국인들의 ‘반한감정’으로 비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회의를 통해 필자는 그동안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한ㆍ미 관계가 더 좋지 않은 상태라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 여당의 책임자가 한·미 관계가 좋은데 일부 사람들이 그것을 오히려 더 나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회의에서 미국 측 발표자 한 사람은 ‘북한과 미국이 전쟁을 하면 북한 편을 들겠다는 젊은이가 더 많다는 여론 조사 결과가 나오는 판국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미군 뒤에서 총을 들고 서 있는 상황을 (미국 사람들이 어떻게 느낄지)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미국 사람들은 이처럼 생각하고 있는데 한국 정치 지도자들은 무슨 근거로 한·미 관계가 양호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2. 미국이 생각하는 북한 문제
 북한은 답답한 나라이며 북한 문제가 해결되는 상황도 더디고 답답하다고 미국 사람들은 인식하고 있다. 지난 9월 19일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북경에서의 공동선언문이 발표된 이후 마치 북한 핵문제가 다 해결된 것처럼 생각하는 한국의 분위기와, 미국이 인식하는 북한 문제 사이에는 심각한 온도차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미국 측 발표자 한 사람은 북한이 미국이 제시한 완벽하고 검증가능 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시설의 폐기(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즉 CVID)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북한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서도 낙관적이지 않다.
 최하 150만명 최대 300만명이 아사했는데 (그것은 북한 인구의 7%라고 미국 발표자는 지적했다. 특히 아사한 사람들은 곧이곧대로 사는 선량한 북한 주민, 아이들과 여인들 그리고 늙은이들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2002년 7월 행한 조치는 세상을 놀라게 했지만 그것은 북한이 실제로 시장 경제를 추구하는 초기 단계이기보다는 오히려 이미 형성되었던 시장을 마지못해 승인한 수준이라고 본다. 최근 북한은 다시 배급제를 강화하고 시장의 기능을 축소 및 제하는 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승계 문제로 인해 위험한 상황이라고 본다. 아직도 후계자가 확정되지 않았고 후계자 선정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 상황도 예측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에는 돈을 가진 새로운 계급이 형성되고 있는데 이는 김정일 정권의 딜레마라고 본다. 김정일 정권은 이런 딜레마에 대처하기 위해 군을 잘 대접해 주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미국인들의 견해는 대체로 일치한다. 그러나 북한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서, 그리고 북한 문제가 언제쯤 해결 될런지에 대해서는 미국인들 사이에 견해 차이가 크다. 한국의 분위기는 북한 문제가 곧 해결될 것 같은 낙관적인 쪽으로 가고 있는데 반해 미국 측 분위기는 북한 문제는 해결에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미국은 물론 북한 문제가 대화를 통한 평화로운 방안으로 해결되는 것을 가장 바라고 있지만 미국의 북한에 대한 기대는 낮고 인내심도 점점 희박해져 가고 있다는 말도 부연하였다.
 북한 핵문제에 대해 미국 NSC의 한 관리는 미국은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할 의도가 없고, 신포에 건설 중이었던 경수로 공사를 재개할 의사도 전혀 없으며(그곳을 스케이트장으로 쓰면 좋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미국과 북한 사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나가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고 있다.
3. 한·미 동맹의 현주소
 미국은 북한 문제의 해결은 물론 미국의 대전략에 (동맹국인) 한국이 동조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단한 불만이 있다. 미군 예비역 장성 한 명은 험담꾼(detractor) 혹은 훼방꾼(distractor)이라면 그때는 (동맹은) 끝이다 고 말하기도 했다. 원래 미국 사람들은 영국인들처럼 앵글로 색슨적인 국제정치 감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아니다. 과거 미국 외교정책은 철저한 현실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기보다는 이상주의, 법률주의, 도덕주의 등으로 특징 되었었다. 그러던 것이 9·11 이후 돌변하고 만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역사학자 존 루이스 개디스 교수는 최근 저서에서 “마치 우리 모두가 2001년 9월11일 아침에 방사능이라도 쬔 것처럼 우리의 심리구조- 우리 마음의 DNA-가 뒤틀려 그 결과는 앞으로 한동안 확실치 않을 것이다” 고 기술한 바 있다.
 미국은 확실히 달라졌다. 세계화를 이룬 상태에서 건국된 미국이 9·11 이후 대단히 민족주의적인 국가로 변모하고 있다. 미국이 생각하는 한국은 9·11 이후 미국인들의 변화된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 미국 사람들은 국제정치를 냉엄한 현실로서 인식하기 시작했다. 미국 사람들은 더 이상 동맹 관계를 ‘우호관계’라고 보지 않는다. 한국이 미국과 동맹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21세기 전략 비전을 공유하기 위해서 우선 한국은 미국이 인식하는 적국을 한국도 함께 적국이라고 인식해야 한다. 동맹이란 적이 같은 나라를 의미하지 우호 국가를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사람들은 한국 정부와 한국 사람들이 북한을 더 이상 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한 한·미동맹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고 생각하는 듯했다.
 미국 사람들은 한국의 정치 현상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고 한국의 상황을 세부적으로 추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과시했다. 특히 각종 여론 조사에서 나타난 수치들을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로세 제시하는 데 능통했다. 한국의 각종 언론을 상세히 추적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측 발표자 중 한 사람은 전교조 등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며 한국정치를 무척 상세하고 추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하기도 했다.
 물론 미국 사람들이 한국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모두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 정치의 심층동인(深層動因)까지 그들이 이해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정확하게 알고 있는 한국의 정치 상황은 본질적인 부분이기보다는 형식적인 측면인 것 같아 보였다. 미국인들은 절반 이상의 한국 젊은이들이 미국보다는 북한 편을 든다는 여론 조사 결과에 경악하고 있지만 상당수의 한국 젊은이들이 애초에 군대에 가는 것조차 싫어한다는 사실도 동시에 고려할 능력은 없는 것이다. 지금 당장 철수하라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한국군의 능력이 증강되는데 맞추어 철수해야 한다는 보수적인 한국 사람들조차 미군 철수론자의 범주에 속하는 조사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나오는 통계 자료들이 미국의 학자들에 의해 사용되는 경우 주의할 상황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4. 한·미 양국의 미래
 한·미 양국은 서로 동맹으로 남아 있음으로써 양국 모두가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미국 측의 보편적 견해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원하면 미국은 언제라도 주한 미군 철수 등을 포함 한국의 요구를 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기도 하다. 미국은 한국이 민주선거에 의해 선출된(democratically elected) 정부를 가진 나라라는 사실을 중시하며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 원하면 미국은 철군한다는 것은 미국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얘기다. ‘한국은 미국과 동맹국으로 남을 것이냐 옛날처럼 중국의 속국(vassal state)이 될 것이냐를 결정해야 할 시점’ 이라고 상당히 감정적인 언급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미국의 속마음은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으로 남아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음은 물론이다.
 미국 사람들은 그동안 미국이 한국 사람들의 마음을 잡는데 소홀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평양의 심리전이 남한의 마음을 잡았는데 미국은 그러지 못했다는 후회의 목소리도 있다. 미국의 정치 제도 중 현재 북한 및 한국에 대해 대단히 적대적인 것이 미국 하원이다. 그러나 하원의 대표적인 매파 의원인 헨리 하이드 씨도 한국의 중요성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한국에 대해 새로운 PR 정책을 실시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2005년 7월 말 미국 헤리티지 재단의 백그라운더(Backgrounder) 라는 이름의 유명한 보고서는 한국인의 반미 감정을 유발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비자 문제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한국도 미국 입국 시 비자면제의 나라로 승격시킬 것을 주장했다. 미국 사람들은 한·미 동맹의 미래가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의 성공적 수행해 중요한 것임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을 필요로 하는 것과 한국이 미국을 필요로 하는 것이 같은 크기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미국은 이미 일방주의를 추구할 수 있을 정도의 패권국이 되어 있다는 것이 작금의 국제정치 현실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한다.
5. 결론
 미국 측 발표자 중 한 사람은 한국 외교관들 혹은 정책결정자들이 ‘미국은 동맹국이고 북한은 동생’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 당혹스럽지만 한국인들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유념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카인이 친동생인 아벨을 죽임으로써 최초의 살인자가 된 이야기) 국가들의 국제정치 행위는 사실(fact)보다는 인식(perception)에 의해 결정된다. 한국은 북한을 형제라고 보는 반면 미국은 북한을 깡패라고 본다. 과연 누구의 인식이 사실에 더 가까운 것일까? 미국 사람들은 수백만을 굶어 죽인 지도자가 핵폭탄을 개발한다는 사실을 도무지 이해하기 곤란할 것이다.
 이번 워싱턴 방문은 한·미 관계에 문제가 있음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문제는 어느 한쪽만의 잘못은 아니다. 필자와 며칠 동안 같은 방을 쓴 동료 정치학자는 한국에서 나온 각종 여론 조사를 미국 사람들이 제대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연구를 시작해야겠다고 말했다. 미국이 한국을 인식하는데 불필요한 왜곡을 교정해주기 위한 좋은 방법이다. 또 다른 한국 학자도 미국인들의 반한 감정이 서서히 가시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려하며 보다 적극적인 조치와 연구가 있어야 하겠다고 말했다. 필자도 동감하는 생각들이다. 다차원에서 한·미 관계의 복원 노력이 필요하다.
 북한 핵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한국은 반드시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 발전시켜야 한다. 미국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나라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이 확고하게 유지된다면 북한 문제의 해결은 한국 주도의 통일을 의미할 수 있다. 통일을 이룩한 후에도 한·미동맹은 유지되어야 한다. 한·미동맹이란 인위적인 장치는 지정학 때문에 한국이 영원히 당면해야할 고통을 제거해 주는 안전판이 된다. 중국, 러시아, 일본 등 강대국에 영원히 둘러싸인 한국이 미국과 동맹을 맺을 경우 주변 강대국들은 결코 우리를 가볍게 보고 업신여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춘근(자유기업원 부원장)
■한반도 유사시 韓美작전계획 종류와 주요 내용
 최근 북한 핵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 국방부가 북한 정권의 붕괴를 유도하기 위한 작전계획(OPLAN) 5030의 초안을 마련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실제로 한미 양국은 북한의 선제공격과 우발적인 도발 등에 대비한 다양한 전쟁계획을 수립해놓고 있다. 그중 핵심은 ‘작전계획(작계) 5027’로 전시작전권을 갖고 있는 미국이 주도적으로 작성하며 1, 2년마다 개정판이 나온다.
 작계 5027은 1급 군사기밀이지만 미국의 군사전문사이트 글로벌 시큐리티(www.globalsecurity.org)가 3월 일부 내용을 공개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작계 5027은 ▲1단계=미군의 신속 전개 억제 전력 배치 ▲2단계=서울 이북지역에서 북한군 남침 저지 ▲3단계=북한 주요 전투력 격멸 뒤 북진 ▲4단계=평양 고립 ▲5단계=한국 주도의 통일 등의 순으로 짜인 것으로 알려졌다.
 작계 5027상 한미연합군은 유사시 대규모 증원병력(미 지상군 69만명, 4개 항모전단)의 도착 때까지 약 30일간 북한군의 공격을 막아내야 한다.
 한편 ‘작계 5027 98년판’은 기존 ‘방어개념’에서 벗어나 북한 정권의 제거를 목표로 북한군의 전쟁기도가 포착되면 주요 군사목표를 선제타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9·11테러 직후 작성된 2002년판에는 대량살상무기(WMD)를 개발하는 북한의 김정일에 대한 암살 작전과 함께 미국의 신안보 독트린에 따라 한국과 상의 없이 북한과 전쟁을 치를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 수립 중인 2004년판에는 이라크전처럼 정밀 폭격기술을 활용, 특정목표를 공격하는 방안과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한 미사일방어(MD)체제 구축 문제가 반영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1차 북핵위기 때인 94년 작성된 ‘작계 5026’은 북핵 시설과 지휘부를 제한적으로 선제타격하는 내용. 선제타격을 받은 북한이 휴전선에 집중 배치한 장사정포와 야포를 동원해 반격하는 것에 대비하기 위해 첨단 폭격기와 요격미사일 등을 한반도에 배치하는 게 골자다. 실제로 미국은 1994년 당시 F-117 스텔스 전폭기와 토마호크 미사일로 북한 영변핵시설을 정밀타격하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다.
 작계 5029는 북한 붕괴대비계획으로 경제난, 쿠데타 등으로 인한 북한 난민의 대량유입 등 북한 체제의 붕괴에 대한 구체적인 대처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작계 5030은 미국의 대북 군사제재 방안을 명시한 것으로 경제 외교적 제재가 실패할 경우 ‘마지막 카드’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한반도 작전계획(OPLAN)의 종류와 내용>
◆종 류(작성연도)와 주요내용
▲작계 5026(94년)
   북핵 시설 정밀선제 타격,북 반격 대비 첨단전력 한반도배치
▲작계 5027(74년 작성 이후1, 2년마다 수정)
   ·작계 5027=전쟁발발시 미군 69만명 증원, 북한군 격퇴
   ·작계 5027-98=북 확실한 도발징후시 선제공격
   ·작계 5027-02=김정일 제거,한국과 상의없이 북 선제공격가능
   ·작계 5027-04=북 미사일 공격대비 미사일방어(MD)체제 가동
▲작계 5029(90년대)
   난민유입 등으로 인한 북 체제 붕괴로 인한 돌발사태 대비
▲작계 5030(수립 중)
   예고 없는 대규모 기동연습과 근접정찰 등 무력시위를 통해 북한 내부 붕괴 유도        /출처:미 군사전문사이트 글로벌 시큐리티
■작전계획 5027, 이대로 좋은가?/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2002년 12월 1일)
1. 작전계획 5027의 변천 : 남침 '방어'에서 북한 '점령'으로
 미국의 윈윈전략이 군사 작전 계획으로 구체화된 것은 작전계획(OPLAN) 1003과 5027이다. 작계 1003은 대이라크 전쟁을, 작계 5027은 대북한 전쟁을 상정해 마련된 것이다. 이 가운데 작계 5027은 한미연합사의 기본적인 전쟁 계획으로 유사시 한미연합군의 군사 작전과 미국의 증원 계획 등이 담겨 있다. 2년마다 개정되는 작계 5027은 군사기밀로 묶여 있으나, 적지 않은 내용은 이미 한미 군관계자들과 언론을 통해 알려져 있다.
 문제는 당초 북한의 남침을 억제, 격퇴하는 수준에서 마련되었던 작계 5027이 탈냉전 이후 대단히 공격적인 성격으로 바꿔오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전쟁 직후에 마련된 작전계획은 북한의 남침시 북한을 38선 이북으로 되돌리는 방어전략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후 미국은 1973년 '전진 방어(Forward Defense)' 전략을 채택해 유사시 북한의 개성까지 점령하는 방향으로 작전계획을 일부 수정했다. 이에 대응해 북한은 야포를 비롯한 주요 군사력을 38선 인근으로 전진배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때까지 한반도 유사시 북한을 무력 점령하는 계획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작계 5027에 '북한 점령 작전'까지 포함되기 시작한 시점은 90년대 초부터이다. 한미연합군은 작계 5027-92를 통해 유사시 한미 해병대가 원산 상륙작전을 펼치는 계획을 포함시켰다. 이 작전은 북한의 남침을 격퇴하고 북진하는 한미 보병의 북진 작전과 함께 평양을 포위하는 개념하에 마련된 것이다. 작계 5027-92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북한의 공격 징후가 포착될 경우 전쟁 발발 '이전'에 한미연합군을 전쟁준비태세로 격상시키는 내용을 포함시킨 것이다.
 미국과 한국 군부는 94년 2월초 북미간의 핵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을 때, 한반도 유사시 단시간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북한을 군사적으로 통일한다는 '작전계획 5027-94'를 언론에 공개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1단계로 신속전개가 가능한 억지력을 강화하고, 2단계로 북한의 서울 이북 남침을 저지하는 것과 함께 북한의 후방을 파괴하며, 3단계 북한의 주요 전력을 격멸시키고 원산 등에서 대규모 상륙작전을 전개한 이후, 4단계로 평양을 고립시키고 점령지역에서 군사통치를 실시하고, 마지막 5단계로 한반도를 한미동맹의 주도하에 통일시킨다는 것이다. 이로써 한미연합군의 작전계획은 냉전시대 북한의 남침 격퇴에서 유사시 북한을 점령하는 방향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냉전 시대에는 북한이 소련, 중국 등과 동맹관계에 있었고, 이들 나라들이 동북아 세력균형의 와해를 의미하는 대북한 무력 통일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크게 고려되었던 반면에, 탈냉전이후 이러한 고려 사항이 사라졌다는 것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탈냉전 이후 미국의 대한반도 군사 작전 계획의 변화는 미일동맹에서도 나타난다. 1994년 전쟁 위기 당시 때 사용할 수 없었던 일본의 군사기지를 한반도 유사시 사용하는 것을 명문화하고 일본 자위대의 역할 확대를 추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은 작계 5027-96에 이러한 내용을 포함시키고 1996년 미일 신안보선언, 1997년 신가이드라인, 그리고 1998년 주변사태법 등을 통해 이러한 계획을 관철시켰다. 이를 통해 미국은 한반도 유사시 일본을 기지로 사용하고 후방에서 일본의 병참 지원을 받으며, 한반도 전쟁이 일본으로까지 확대될 조짐을 보일 경우 자위대의 참전까지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작계 5027상의 또 한번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던 시점은 1998년이다. 이 개정판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이전의 작계가 주로 북한의 남침을 상정한 것이라면, 5027-98에서는 예방 전쟁의 개념을 도입한 '선제공격'을 채택했다는 점이다. 즉, 북한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확고한 증거가 포착될 경우, 북한의 야포와 미사일, 공군 기지 등을 '선제공격을 통해 파괴시킨다'는 계획이 포함된 것이다. 또한 이전의 상륙작전을 더욱 구체화해 미국의 육해공군이 합동 상륙 작전을 통해 북한의 허리를 두 동강 내 북한 점령을 신속하게 한다는 계획도 포함되어 있다.
 이와 같은 대단히 공격적인 성격의 작전 계획이 1998년 10월 9일 미 해병대 부사령관인 레이몽드 아이어에 의해 일부 공개되면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북한은 한미연합군이 침략전쟁 계획을 세웠다며 북한은 이에 대응해 한미연합군의 침략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공격할 권리가 있다고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당시가 미국 정보기관에 의해 금창리 핵의혹 시설 의혹이 제기되고 북한이 대포동 1호(광명성 1호) 시험 발사를 하면서 미국 내에서 북폭론이 제기되던 시점이었다는 것을 고려할 때, 한반도 위기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다.
 2000년도에 포함된 작계 5027 계획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미국의 한반도 증원 전력의 대폭 확대이다. 미국은 1990년대 초에는 48만명, 1990년대 중반에는 63만명으로 증원군의 규모를 늘린데 이어, 2000년 개정된 작계에서는 증원군을 69만명까지 늘리기로 한국과 합의했다. 또한 이 개정판에서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야포에 대응한 전력 증강 계획도 포함되어 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작계 5027에 또 한가지의 중대한 내용을 담았다. 유사시 북한 지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제거할 목적 하에 특수전을 비롯한 '군사적 계산'을 포함시킨 것이다.
2. 작계 5027의 핵심 내용
 탈냉전 이후 작계 5027의 변천 과정을 보면 크게 3가지 두드러진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는 냉전시대 북한의 남침시 이를 격퇴하고 휴전선 이북으로 되돌림으로써 한반도의 현상유지를 재건하는 것에서, 유사시 북한을 무력으로 점령하는 계획이 공식화되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미국의 증원 전력을 대폭적으로 강화시켰다는 점이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미국은 한반도 증원군의 규모를 48만→63만→69만으로 늘려왔다. 이 과정에서 또 한가지 주목해야할 점은 병력 이동에 비해 무기 및 장비 수송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해 한반도에 미리 주요 무기와 장비를 배치해놓는 '사전배치(preposition)' 전략을 채택하고 실행해오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위험하면서도 가장 두드러진 세 번째 특징은 '예방 전쟁'의 개념 하에 '선제공격'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1994년 위기 이전에 '북한의 남침시'를 상정한 한미연합군의 작전계획이 '북한의 공격 징후 포착시'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북한의 공격 징후 포착이란 북한의 탱크나 야포의 대규모 이동 등 북한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확고한 징후를 의미한다. 이는 북한의 공격 징후 여부를 판단할 정보를 갖고 있는 나라가 남한이 아닌 미국이라는 점에서, 또한 북한의 도발에 대한 미국의 해석이 갈수록 자의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쟁에 휘말릴 수 있는 근본적인 위험성을 안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작계 5027의 변천 과정에서 반영된 미군의 한반도 전쟁 목표는 1998년 당시 미 해병대 부사령관이었던 레이몽드 아이어 발언에서 잘 나타난다. 그는 1998년 10월 9일 미 정보기관의 후원 하에 서울에서 이뤄진 비공개 기자 간담회에서 "우리(한미연합군)가 준비태세를 끝내면, 그들(북한군)은 어떠한 종류의 군사 행동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모두 죽일 것이다"라는 발언을 한 바 있다. 그는 또한 한미연합군은 북한의 기능을 완전히 마비시키고 김정일의 통치를 종식시켜, 남한의 통제 하에 북한을 재조직할 수 있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이러한 내용은 아이어의 비공개 브리핑에 참석했던 리처드 핼퍼린 전 뉴욕타임스 도쿄 지국장을 통해 처음 알려졌고, 이 브리핑에 참석한 10명의 다른 저널리스트들이 셀리그 해리슨에게 확인해준 내용이기도 하다.
 한미연합군이 이러한 공격적인 작전계획을 수립하게된 배경은 북한의 남침 위협의 증가 때문이라고 미군 관계자들은 설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판단의 근거가 북한의 한반도 공산화 전략이 아닌 '자포자기'식 남침이라는 가정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즉, 경제적 재앙 때문에 나날이 낡아가고 있는 무기로 무장한 북한의 1백만 대군이 이왕 망할 바에는 "무기를 잃기 전에 써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것 같다"는 미군 관계자들의 판단이 작계 5027의 개정을 가져온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또 한가지 주목할 점은 한미연합군은 북한의 군사력을 물론, 국가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마비시키기 위한 세부적인 공격 목표물을 지정해놓고 있다는 점이다. 대북한 주요 공격 목표물은 휴전선 인근에 배치된 야포, 탱크, 장갑차 등과 탄약 등 군수지원 물자 시설 및 이동 통로, 교각과 교차로, 북한 증원군의 이동로, 공군 기지 및 해군 시설, 야전 사령부 및 지휘통제 시설, 통신망, 전력 시설, 평양의 주요 국가 시설 등이 망라되어 있다. 특히 유사시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북한의 야포 전력을 무력화시킨다는 계획하에, 북한의 야포가 지하 요새에서 빠져나오기 전에 B-1, B-2, B-52 등의 폭격기를 동원해 야포를 지하에 매몰시키는 것을 최우선적인 작전으로 삼고 있다. 유사시 북한의 야포 전력이 대단히 위협적인 것이 사실이지만, 다련장 로켓을 제외한 대다수 야포가 낡고 사정거리가 짧은데다가 지하에 은폐되어 있어 초기에 제압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즉 미국은 북한의 야포가 지하시설에서 나와 발사 준비를 갖추기 전에 전폭기와 미사일 등을 동원해 "야포를 땅에 묻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이 본토에 있는 B-1, B-2, B-52 폭격기 등을 한반도에 동원하는 시간은 24시간이 채 걸리지 않고 남한과 일본 괌 하와이 등에 배치된 전투기·전폭기를 동원하는 데는 이보다 훨씬 짧은 시간 내에 가능하다는 점에서 미국의 이와 같은 작전계획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핵미사일과 크루즈 미사일 등을 장착한 잠수함과 함대지, 함대공, 함대함 미사일 등으로 무장한 이지스함 배치도 수일 내에 가능하다.
 한국과 미국의 해병대가 주축을 이룰 대북한 상륙 및 북한 '두 동강 내기' 작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계 5027-98에서는 유사시 육해공 상륙 작전을 통해 북한의 허리에 해당하는 청천강-원산선을 두 동강 냄으로써 북한 점령을 조기에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이 작전에는 미국의 오키나와 주둔 해병대는 물론 캘리포니아와 노스 캐롤라이나 주둔 해병대도 참여하게 되며, 초기 작전에는 한국의 해병대가 원산 상륙 작전을 펴게 된다.
 또한 한미연합군은 북한의 남침을 사전에 경고하는 시간을 10일에서 3일로 대폭 단축해놓고 있는 상태이다. 이는 일면 북한의 전방 배치 군사력이 짧은 시간 내에 남한을 공격할 수 있다는 판단이 주요하게 작용한 것처럼 보이지만, 미국의 대북한 군사 행동의 사전 고려 시간이 대폭 단축되었다는 점에 오히려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미군기지가 미국의 대규모 증원군을 수용할 정도의 규모가 되지 않기 때문에, 미국의 증원군 가운데 대부분은 일본, 특히 오키나와를 경유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미일 신가이드라인과 주변사태법이 통과되기 전에는, 미국이 일본 기지를 사용하는 것은 법적, 정치적 문제를 야기할 소지를 안고 있었다. 1994년 한반도 전쟁위기 이후 변화되어온 미일동맹의 성격을 주목해야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탈냉전 이후 미국과의 새로운 방위지침을 통해 일본은 한반도 유사시 일본 내 기지 사용은 물론, 무기를 제외한 병참 지원과 일본이 위협받는다고 판단될 경우 자위대의 파병까지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미일동맹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는 1998년 10월 24일부터 11월 2일까지 동해 등에서 실시된 미국의 함대전투실험 '델타' 훈련이다. 이 실험에서는 사상 최초로 미국 7함대의 기함인 `블루릿지'가 일본 요코스카 기지에서 직접 훈련을 지휘했다. 이는 미국 7함대의 거점인 요코스카 기지가 한반도 유사시 단순히 후방지원뿐만 아니라 전선의 지휘거점이 될 수 있다는 점과 이 훈련이 1998년 미일간에 신 방위협력지침이 마련된 이후에 일본의 기지가 실전지휘의 핵심이 될 수 있다는 보여주는 것이어서 주목을 끈 바 있다. 또한 이 훈련에 미군 이외에 최초로 한국군이 참여했다는 점, 대북한 상륙 작전의 주력 부대인 오키나와의 제3해병 원정군이 동원되었다는 점, 그리고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한 전역미사일방어체제(TMD) 훈련이 포함되었다는 점 등이 눈에 띠는 대목들이다.
3. 대북한 선제공격 유혹
 미국의 유력 경제지인 월스트리트저널은 금창리 핵의혹 시설에 대한 북미간의 협상이 한참 진행되던 1999년 3월 2일자 사설에서 느닷없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나섰다. 선뜻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주장을 하게 된 배경에는 미국이 북한 핵시설에 대한 선제공격을 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주한미군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햇볕인가, 달빛인가?"라는 사설에서 알 수 있듯이,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과 이에 끌려다닌다는 클린턴 행정부에게 잔뜩 독설을 퍼붓고 나서, 이 신문은 다음과 같은 무서운 예언을 했다.
 "최근 미국은 (한국 정부의) 포용정책에 질질 끌려다니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정권은 바뀌게 된다. 그리고 미래의 정부는 의회와 국민으로부터 강하게 행동하고 위험으로부터 미군을 철수시키며, 미국에까지 다다를 수 있는 미사일이나 핵무기와 같은 북한의 위협을 제거하는 조치를 취하라는 강한 압력을 받을 것이다."
 당시 상황은 위와 같은 월스트리트저널의 주장을 단순히 한 신문의 주장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1999년 3월 3일 노로타 호세이 방위청 장관은 북한 미사일에 대한 내각의 질의를 받고, "만약 환경이 명확하다면, 일본은 (북한의 미사일 시설에 대해) 선제공격을 할 수 있는 헌법적인 권리를 갖고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이 발언에 대해 북한과 중국은 물론, 당시 한국의 국방장관이었던 천용택 역시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호세이 장관의 발언 며칠 뒤 미 하원 청문회에 출석한 존 틸러리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은 북한 핵의혹 시설에 대한 선제공격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나는 '선제'라는 표현을 쓰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의 핵프로그램이 결실을 맺도록 허락해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다"며, 선제공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98년 10월 아이어 부사령관 등이 군사기밀에 해당하는 작계 5027-98 내용을 일부 기자들에게 브리핑한 이유에 대해 셀리그 해리슨은 일종의 '심리전'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는 2000년 5월 26일 아이어를 만나 작계 5027-98을 기자들에게 브리핑한 이유를 물었다. 이에 대해 아이어는 "만약 북한이 이것을 위협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면, 나는 무지 행복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즉 선제공격을 포함한 공세적인 작전계획을 언론에 흘림으로써, 북한의 위협적인 행동을 억제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군사적 일방주의적 세계관은 주지하듯이 부시 행정부 들어 절정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군의 대북 심리전이 효과를 봤다고 보기는 어렵다. 작계 5027-98의 내용을 접한 북한은 거의 매일 같이 비난 성명을 쏟아 냈다. 특히 북한은 선제공격 권리가 미국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전쟁에는 전쟁으로 맞서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연일 천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북한의 대응은 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미국이 대북한 고사 전략을 고골화하고 있다는 강한 불신과 함께, 선제공격을 포함한 결사항전의 의지를 천명할 때 자주권과 생존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이 강하게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작계 5027-98에서 선제공격 가능성을 포함시킨 것은 한반도의 군사 현실을 고려할 때, 대단히 위험한 성격을 갖고 있다. 특히 북한군의 대규모 이동을 확고한 남침 징후로 해석할 경우, 오판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북한의 입장에서도 한미연합군이나 미군의 대규모 이동이나 전력 증강을 북침의 신호로 해석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오류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즉, 상대방의 군사적 이동이나 전력 증강을 침략의 신호로 해석할 경우, 우발적인 무력 충돌의 가능성을 더욱 높이게 되는 것이다.
 한미연합군의 작전통제권 내에 있는 군을 동원해 북한을 공격하려고 할 경우, 한국과 미국 대통령 사이의 합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한미연합군의 작전통제를 받지 않는 미 공군 7사단이나, 한반도를 책임 구역에 포함시키고 있는 미 태평양 사령부가 북한을 공격하려고 할 경우에는, 지휘 계통상 미국 대통령의 재가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추진할 경우 주로 공군력이 활용될 것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한국 대통령이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을 막을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부재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