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향의 나르시스와 외향의 우울 사이
2012년 12월26일 오후 일본 도쿄도 나가타초 일본 국회. 총리 선출을 위한 특별국회에서 安倍晋三(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가 제96대 일본 총리로 선출됐다. 그는 전후 총리를 한 뒤 물러났다가 다시 총리가 된 두 번째 인물이 됐다. 아베는 이날 개각을 단행한 뒤 취임 기자회견을 가졌다.
“국익을 지키는 외교, 주장하는 외교를 되찾지 않으면 안됩니다. 중일 관계, 한일 관계, 그리고 일본의 외교안보의 기반인 미일 관계에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미국과 러시아, 인도 , ASEAN국가 등 세계지도를 내려다보는 시점에서 전략을 생각하는 게 필요합니다. 종합력으로 외교를 전략적으로 전개하겠습니다. 무엇보다 미일동맹의 신뢰관계를 재구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일본 외교의 기축인 미일동맹의 인연을 다시 강화해 나가는 것이 일본 외교안보 재건의 첫걸음임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총리로서 국민의 생명과 영토, 아름다운 바다를 지켜간다는 결의를 보여 가고 싶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센카쿠제도 앞바다에서 해상보안청과 자위대 제군이 일본의 바다와 하늘을 지키고 있습니다. 일본의 안전보장은 단순한 하나의 것이 아니며 지금 거기에 위기도 있습니다. 새롭게 국가안보 강화를 책임진 각료를 세웠습니다. 사령탑이 되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설치 등을 내각에 올리고 외교안보체제 강화에 노력하겠습니다.”(安倍晋三, 2012.12.26)
그의 총리 선출은 이미 예고돼 왔다. 그가 이끄는 자민당이 10일전인 12월16일 중의원 선거에서 선거 공고 전 118석에 불과하던 의석을 무려 294석으로 크게 늘리며 230석에서 57석으로 몰락한 민주당에 압승을 거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내 야당과 진보적인 지식인뿐만 아니라 한국과 중국 등 주변 동아시아 나라도 그의 재등장을 우려했다. 대체로 일본 내 우경화와 군국주의가 급진전되고 동아시아 전반에 긴장감이 커질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 Jean-Pierre Lehmann 명예교수는 “일본은 나르시스(자기도취)적이고 내향적으로 변하고 있는데, 아베 총재가 이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방현덕, 2012.12.7)고 우려했다.
특히 총선 기간과 총리 취임 직후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헌법 개정을 통한 국방군 창설, 위안부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담화’ 등을 비롯한 과거사 관련 담화의 전면 수정하겠다는 그의 주장은 적지 않은 우려를 낳았다. 아베 총리가 2013년 초 기존 과거사 관련 담화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새 ‘아베 담화’를 내겠다고 하자 미국 <뉴욕타임스>조차도 2013년 1월3일 ‘역사를 부정하려는 일본의 또 다른 시도’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범죄를 부정하고 사과를 희석하려는 시도가 일본의 짐승 같은 전시 지배로 고통을 겪은 한국, 중국, 필리핀 등의 분노를 촉발할 것”이며 “특히 아베의 수치스러운 충동은 북한 핵 문제 등 지역 이슈에서 중요한 협력관계를 위태롭게 할 것”(박현진, 2013.1.5)이라고 우려했다.
우익 색깔이 짙은 아베의 재등장은 ‘잃어버린 20년’ ‘일본화’ 등의 말처럼 일본 경제가 침체하고 국제사회에서 영향력도 퇴조한 일본의 위기감을 배경으로 한다는 분석이다. 고미 요지 <도쿄신문> 편집위원은 최근 칼럼에서 “아베가 자민당 총재로 뽑힌 것은 일본인 마음속에서 ‘강한 일본’에 대한 동경이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2012.12.1)이라고 지적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의 모습은 버블붕괴 직후인 1990년대와는 또 다른 모습이라는 분석이다. ‘고노 요헤이 담화’를 주도한 고노 요헤이 전 중의원 의장조차 2012년 12월12일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동서냉전이 끝나 좌파 주장의 근거가 약해지면서 보수가 좌파를 개의치 않고 자유롭게 발언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며 “(일본 정치의) 우경화 경향이 역력하다”(박형준, 2012.12.13)고 진단했다.
1990년대의 일본과 관련해 노벨상 문학상 수상자인 大江健三郞(오에 겐자부로)는 1994년 12월7일 스톡홀름에서 가진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일본의 신비성을 강조한 川端康成(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아름다운 일본’론을 비판하며 ‘애매모호한 일본’이라고 지적했다. 헌법 제9조로 상징되는 不戰(부전)을 맹세했으면서도 헌법 개정과 영구평화 원칙제거 움직임이 꿈틀거리는 일본의 이중적인 1990년대를 비판한 것이다(한겨레, 1994.12.9).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의 일본은 1990년대의 ‘애매모호한 일본’에서 전후 체제가 완전히 탈각된 ‘아름다운 나라’로 포장된 ‘강한 일본’으로 가는 도정에 서 있다. 그 중심에 바로 아베 신조가 있는 것이다.
물론 아베가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자신의 이념과 신념을 곧바로 국정으로 연결시켜 추진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고 전문가는 전망한다. 자신의 사상과 이념의 실현보다 정권의 성공을 우선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和田春樹(와다 하루키)는 다음과 같이 명언했다.
“아베의 심중에는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신념에 따른 정치를 하고 싶다는 욕망과, 부활한 자민당 정권의 중심인물로서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다투고 있다. 당분간은 후자를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한창만, 2013.1.1)
그럼에도 우리는 아베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현재 일본의 향방은 누가 뭐라고 해도 그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키 175cm에 몸무게 70kg. 혈액형 B형. 좋아하는 음식은 하이라이스와 불고기, 라면, 아이스크림, 수박’ 등과 같은 그의 프로필을 넘어 아베의 진면목을 찾아가야 하는 이유다.
<참고문헌>
安倍晋三(2012.12.26). 安倍内閣総理大臣 就任記者会見. [首相官邸] 홈페이지.
http://www.kantei.go.jp/jp/96_abe/statement/2012/1226kaiken.html
고미 요지(2012.12.1). <월드리포트> 아베 신조 총재의 비밀약(藥). [파이낸셜뉴스].
http://www.fnnews.com/view?ra=Sent1801m_View&corp=fnnews&arcid=201212010100003270016058&cDateYear=2012&cDateMonth=11&cDateDay=30
박현진(2013.1.5). NYT “아베 과거사 부정은 중대 실수”. [동아일보]. 6면.
박형준(2012.12.13). 고노 “日 우경화, 벼랑 끝으로 가고 있다”. [동아일보]. 19면.
방현덕(2012.12.7). 레만 교수 "韓, 동북아서 리더십 발휘해야". [연합뉴스]. 09:24 송고.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2/12/07/0200000000AKR20121207045800002.HTML?did=1179m
--(1994.12.9). 오에 노벨문학상 수상연설 요지. [한겨레]. 6면.
한창만(2013.1.1).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제언> <1>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북한-미국·일본 정상화가 최우선… 6자 협의체, 민간차원 구성도 대안". [한국일보].
http://news.hankooki.com/lpage/world/201212/h2012123121011622450.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