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출근길? - 세계일보 블로그
"국회 어디에서 근무합니까, 저는 열린우리당 출입하는 세계일보 XX입니다", "저는 복기왕 의원실에 있는 XX입니다", "저는 김동철 의원실에 있는 보좌관 XX입니다"
저는 요즘 너무 살맛납니다. 한마디로 신이 납니다. 매일 매일 최소한 1∼2명은 새로운 사람을 사귀기 때문입니다. 국회까지 오는 출근길은 이렇습니다. 도봉산역에서 국철을 타고, 종로 3가에서 하차, 5호선을 갈아 타고 여의도역에 내립니다.
그러곤 택시를 타고 국회의사당을 가는데, 아침 출근길 여의도역 주변은 20여명 정도가 한줄로 서서 택시를 기다리는 상황입니다. 택시를 타기 위해 그야말로 전쟁을 벌이는 역이 바로 여의도역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국회에 근무하는 사람이지요. 여의도역에서 택시를 타고 기자실에 오는 게 벌써 수개월. 그래서 최근 제가 택시를 탈 순서가 되면 오른손을 들어 “국회 가실분, 같이 가시죠”라며 동승하면 많은 사람을 사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물론 택시비는 기본 요금밖에 안나오지만 택시 기사에게 미안해서(여기,저기 내려줘야 하는 관계로) 반드시 2000원을 제가 주고 내리죠. 같이 탄 사람들은 돈은 얼마 안되지만, 괜히 기자에게 신세진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고, 그러면서 명함도 주고 받고...
오늘 아침은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택시를 같이 탄 사람(여직원)이 “평소 사람 사귀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나 봐요”, “아니 바쁜 시간이니 같이 가면 좋은 거죠. 뭐(기자)”. “기자님 다음에 꼭 우리 사무실에 들러주세요. 차 한잔 꼭 드리고 싶어요” 정말 요즘은 진짜 진짜 살맛납니다.

보통 사람들은 정치판을 X판이라고들 얘기합니다. 17대는 누가 뭐라하고 해도 정치개혁이라는 국민들의 여망속에 ‘출범’한 국회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입니다. 시급히 처리해야 할 민생 법안들이 있는데도 국회가 10여일씩 파행을 겪고 있으니 더욱 그럴것입니다. 그러나 17대 들어와 정치판에 뛰어든 기자가 볼 때 곳곳이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입니다. 과거 한나당을 잠깐 출입했기 때문입니다.  단면이긴 하지만 정치가 달라지고 있는, 간단하게 말하면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들을 소개할까 합니다. 주관적일 수 있으나 향후 18대,19대 들어가면 정치판은 확연히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반장들 물먹었다?=최근 반장(정치부에선 당 출입기자 고참을 반장이라고 부름)들에게 모처럼 저녁 약속 제의가 들어왔다. 노무현 대통령 측근들이라고 하는 의원들이 부른 것이다. 모처럼 삼겹살집으로... 소주를 좀 돌리고 나서 의원들이 2차를 잡아놓았다고 해서 장소를 옮겼습니다.
반장들은 굳이 2차 갈 것없이 여기서 끝내자고 했으나 한사코 한잔 더하자고 해서 장소를 옮겼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곳에 갔더니 의원들은 한사람도 없었고,  반장들만 집결해 있었습니다. 어느 반장왈 “완전히 물먹었구만. 누가 2차 가자고 했나...”
바로 다음날 어느 회사 반장이 당일 참석한 의원중 ‘대장’(나이순)에게 왜 그랬느냐고 하니 그 의원 왈 “술도 취했고, 다음에 한번 더 만나기 위해 ‘토켰다’“라고 얘기하더랍니다. 예전엔 반장들을 굉장히 무서워 했다는데. 초선들의 경우 반장들한테 말도 제대로 못붙였다는데.

##함바식당이 붐빈다=며칠전 세계일보 기자들이 저녁을 먹기 위해 국회 함바식당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가을바람을 등지고 은행잎을 밟으며 함바식당에 들어갔습니다. 들어서니 A신문 기자들이 건너편에 앉아 있었습니다. 모 정당 부대변인과 함께 하는 자리로 이 부대변인이 저녁을 사는 자리였던 것 같았습니다. 다른 쪽에선 모의원실에 있는 사람들이 벌써 김치 콩나물국을 맛있게 먹고 있었습니다.
세계일보 기자들은 다른 쪽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10여분 지났을까. B회사 기자 전체가 함바식당으로 들어왔습니다. 조금뒤 C신문 기자들도 몽땅 들어오는 것입니다. 국회 함바식당 가격은 4000원. 그런대로 먹을 만한 곳이긴 하나 4개 신문사 기자들이 국회 함바식당을 이용하는 경우는 그동안(16대)의 ‘예’에 보면 극히 드문일입니다. 타사 기자왈 “함바식당이 거의 구내식당 됐잖아...”.


##술먹지말고 영화보러 가죠=최근 세계일보에 모 의원에게서 제의가 들어왔다. 술먹지 말고 오늘 국회출입 기자들(열린우리당)과 시네큐브에서 ‘비포어 선셋’이라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보러 가자는 제의였다. 좋다고 했다. 부장에게 보고하고 오후 6시30분에 시네큐브로 갔다. 우리가 조금 일찍 도착했고, 조금 늦게 도착한 의원과 보좌관 등 모두가 차한잔을 나누고 영화관에 들어갔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에겐 참으로 오랜만의 문화생활이었다. 관람을 끝내고 인근 바에 들어가 가볍게 맥주를 한잔하며 정치 전반에 대한 토론을 2시간여 가까이 했습니다. 유시민이가 어떻고 김용갑이가 어떻게 국가보안법이 어떻고,여당의 4대개혁법안이 어떻고... 김모 기자왈 “형, 술먹는 것보다 이게 훨씬 좋네요. 그렇죠”

##동영상 메시지=며칠전 한나라당 김희정(부산 연제구)의원이 이메일을 보내왔다.  국회 과기정위 소속인 김 의원은 이번 17대 국감에서 초선으로서 열심히 했다는 평가를 받은 사람입니다. 또 최연소 국회의원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언론을 좀 탓다고 봐야죠. 김 의원의 메시지는 이랬다.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니 참 부족한 점이 많았던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할 것이니 채찍질 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자신을 PR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늘 초선의 마음가짐을 유지하겠다는 다짐의 메시지인 것 같아 새롭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서로간의 수수작용(사람간 주고받는 마음)에 비하면 너무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지난 해 11월16일 서포터즈의 눈물을 뒤로하고 프로축구 수원 삼성 감독직을 그만두고 그라운드를 떠나는 날 만났으니, 거의 1년만이었다. 4일 밤 서울 강남의 조그만 음식점에서 김호 전 감독을 만났다. 오후 6시30분에 만나기로 했는데, 장소를 정확히 찾지 못해 헤매는 바람에 기자는 6시27분에 도착했다. 그래도 기자가 빨리 도착했다 싶었는데, 음식점에 들어서니 구석 자리에 앉은 흰머리를 한 ‘노친네’ 한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
“오랜만입니다. 김 선배(소시때 기자도 축구를 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비슷한 고향이라서 선배라고 부름). “옥형 진짜 얼마만인교.. 빨리 앉으소”. 그렇게 시작된 만남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밤 12시를 넘겼다.
김호(60) 전 감독. 아마추어와 프로축구 무대에 있을 때 많은 별명이 그에게 따라다녔다.  고졸 감독, 프로축구 최다승 감독, 외로운 승부사, 만년 야당, 아마추어 최다우승 감독(9차례 우승), 프로축구 최다 우승감독(13차례), K리그 최다승 감독(188승 136무 151패)... 그는 20년간의 감독생활을 접고 지난해 11월 16일 대구 FC와의 경기를 끝으로 그라운드를 떠났었다. 절대로 냉혹한 승부세계에 돌아오지 않겠다며 그의 고향인 경남 통영으로 돌아간 그는 실제로 승부세계에 돌아오지 않았다.
국내외에서 팀을 맡아달라며 섭외가 들어왔지만 뿌리쳤다. 후배들을 위해서, 후배 양성을 위해서였다. 그렇지만 축구와의 인연은 끊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가 학교 후배인 진의장 통영시장과 함께 통영을 ‘축구의 메카’로 만들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다. 수원 삼성을 떠난 이후 그는 고향에서 지난 해 겨울, 한국 중국 일본 등 3개국이 참가하는 국제축구대회를 유치했고, 현재는 매주 2∼3회 숭실대 총장의 요청으로 이 대학에서 축구기술 자문역을 해주고 있다.  그가 늘 얘기하던 ‘인생 2막’을 철저히 지켜가고,준비해 가고 있는 것이다.
                                     "스승이 없었으면 오늘의 그는 없었다”
김 전 감독은 경남 통영 두룡초등학교와 통영중을 거쳐 부산 동래고에 입학, 당시 감독이었던 고 안종수씨(1977년 작고,현재 수원삼성 안기헌 단장의 아버지)를 만나면서 축구에 눈을 떴다. 중학교 시절까지 센터 포워드로 뛰었던 그에게 포지션(오른쪽 풀백)을 바꿔준 것도 안씨였고, 김호를 군제대(해병대 출신)후 제일모직으로 영입해 본격적인 축구수업을 시켰던 것도 안씨였다.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 센터 포워드로 맹위를 떨쳤던 안씨의 지도 덕에 김호는 이후 1970년대 한국대표팀 부동의 풀백으로 9년간 태극마크를 달았다. 김 감독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도 안씨다. 그가 스승의 기억이 아른거리거나 보고플 때 부르는 하얀목련은 어느새 ‘18번’이 돼버렸다. ‘하얀 목련이 필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 아픈 가슴 빈자리에...’.노래방에 갈때면 꼭  이노래로 마무리한다.       “
                                    "국내에서 생소한 공간축구 첫 도입했다"
김 감독은 국내에 가장 먼저 공간축구 개념을 도입한 사람이다. 공간축구는 미드필더 간격을 좁히며 허리에서부터 상대를 조여가는 ‘압박축구’를 말한다. 김 감독은 1994년 미국월드컵감독 때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공간축구를 들고 나왔다. 주위에선 포기하라고 했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다. 미국월드컵에서 그의 기대만큼 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그가 거둔 성적은 2002년 한일월드컵 이전까진 가장 좋은 기록(2무1패)이었다.
김 감독은 이때부터 ‘외곬’, ‘야인’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유난히 학맥과 인맥을 중시하는 축구판에서 ‘공만 잘 차면 됐지’라는 생각에 대학행을 거부한데다 축구계의 발전을 위해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곧은 성품 때문이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감독 제의가 있었을 때도 “대한축구협회가 변하지 않는 상황에선 맡을 수 없다”며 고사했던 게 대표적인 사례다.
                                         “수원 삼성에 쏟았던 9년 후회없다”
김 감독은 프로감독 고별전을 하루 앞둔 지난해 11월 15일, 새벽까지 9년동안 자신을 응원해준 수원의 서포터스와 술잔을 기울였다. 한 팬은 “절대로 떠나지 말라”고 했고, 또다른 팬은 “나중에 다시 와달라”며 울먹이기도 했다. 김 감독은 “인생의 참맛을 아는 50대를 수원에서 보낸 게 자랑스럽다”고 당시 말했었다. 김 감독은 1995년 2월 재독교포인 윤성규 단장의 제의로 수원과 인연을 맺었다.
김 감독은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명문구단 10년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첫 성과는 창단 1년 만인 1996년 준우승으로 표출됐다. 그는 1998년 정규리그 정상에 오르며 프로에서 첫 우승컵을 거머쥐었고, 2001년과 2002년 아시안 클럽선수권과 아시안슈퍼컵 2연패까지 삼성에서 무려 13번의 우승컵을 손에 넣었다.
                                          “영원한 축구인으로 남고 싶다”
요즘도 그에게 감독 제의가 들어온다. 시즌중이라 국내 프로팀에서 오는 경우 없다고 한다. 외국팀에서 제의가 오는 경우는 드러 있다고 온다. 그러나 이제는 승부세계에 나서지 않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러나 축구발전을 위해서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란다.
우선 그는 그라운드에 있을 때 생각했던 것처럼, 축구계를 완전히 뜯어고치기 위해 정몽준 회장(현재 무소속 국회의원)에게 축구발전을 위한 직언을 하기 위한 ‘지도자출신 협의회’를 만들 생각이란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요즘 접촉중이라고 했다. “내가 이바닥에서 자란 사람인데, 축구 발전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기여하게 된다는 일을 하는 그 자체가 축구인의 역할이지...”
                                         “정몽준 회장, 반드시 제역할 해야”
”현재 한국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본프레레 감독의 축구는 어떤가요”(기자). 본프레레 감독 축구 스타일을 어떻다고 얘기하기는 이르지요.  무엇보다 대한축구협회가 달라져야 합니다. 협회가 축구를 위해서, 축구발전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정 회장을 위한 ,조직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한마디로 협회가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정 회장도 달라져야 하고...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이라는 분이 FIFA에서 일어나는 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어떤 사안에 대해서 적극 대처하지 못하는데 그게 무슨 부회장이요. 정 회장이 축구가 아니라 다른 것에 더 관심을 갖는 것 같애. 그러면 안되는데.
◆김호 전 감독 프로필
▲생년월일:1944년 11월24일▲체격:177㎝, 80㎏▲가족관계:부인 최영숙(59)씨와 2남,장남은 최근 결혼 ▲종교:없음▲술·담배:소주 2병, 흡연 안함▲출신교:경남 통영 두룡초교→통영중→부산 동래고▲선수경력:제일모직(64∼68년), 국가대표(65∼73년)▲지도자 경력:동래고 감독(75년) 한일은행 감독(83∼87년) 현대호랑이 축구단 감독(88∼91년) 미국월드컵대표팀 감독(92∼94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95∼2003년)▲주요 경력:국민훈장 석류장, 98·99년 한국프로축구 감독상 수상, AFC선정 이달의 감독상(97년 8월, 99년 8월) K리그 188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