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펀드 Refund와 캐쉬백 Cashback. 미국에서 상점을 이용하면서 편리하다고 느낀 두 가지 제도이다. 이 두 제도만으로도 미국을 왜 소비자 천국이라고 하는지 실감할 수 있다. 몇 만원을 지불하고서는 현금영수증을 발급해 달라고 했더니 점원이 "현금영수증 발급을 원하면 계산 전에 미리 요청해야 한다고 써놓은 문구를 못보았느냐"며 따지듯 대꾸하는 우리나라 구멍가게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리펀드는 전에 블러그 글로 소개한 것처럼, 산지 두 달된 화장품까지 환불해 준다. 너무 큰데도 불편을 감수하고 몇 차례 신은 신발도 문제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환불이나 반품제도가 많이 정착됐다고 하지만, 겉봉을 뜯거나 흙이 묻은 신발은 엄도를 낼 수도 없다. 하지만 미국에서 두 물건 다 리펀드를 해 본 적 있다. 일부 소비자가 물건을 무조건 싹쓸이 했다가 집에 가서 입어 보고 리펀드를 요청하는 식으로 악용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미국 상점을 이용할 때 리펀드와 캐쉬백 제도를 알고 이용하면 무척 편리하다.
리펀드만큼 편리한 게 캐쉬백이다. 처음에는 캐쉬백이 무엇인지 몰라 제대로 활용을 못했다. 물건을 고르고 계산대로 가서 신용카드나 데빗카드로 결제하면 단말기에 "총액이 00달러가 맞느냐",'"캐쉬백을 원하느냐"는 질문이 나온다. 한 번은 캐쉬백을 한국에서처럼 포인트적립으로 생각하고 'Yes'를 누른 적 있다. 그랬더니 다음 화면에 '10', '20', '50' 같은 숫자들이 나와 취소를 해 버린 경험이 있다. 미국 상점들이 제공하는 캐쉬백은 한국 가게들이 해 주는 포인트적립이 아니라 현금인출서비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즉 은행 창구나 현금인출기를 이용하지 않고서도 자기 계좌에서 현금을 찾을 수 있는 서비스이다. 상점으로서는 캐쉬백을 해 주면 현금을 고객에게 미리 내줬다가나중에 고객의 은행계좌에서 그 금액을 찾아가는 것이므로 그 기간 이자비용만큼 손해이지만 자기네 고객에 대한 서비스 차원에서 해 주고 있다. 미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거의 현금 쓸 일이 없다보니 현금을 갖고 다니지 않아 낭패를 보는 경우가 가끔 있다. 이럴 때 근처 가게에 가서 물건 사면서 캐쉬백을 이용하면 된다. 캐쉬백을 이용하면 영수증에 자기가 산 물건 외에 현금 서비스가 합쳐져 총금액이 적힌다. 수수료가 따로 없으니 소비자는 굳이 은행을 찾거나 현금인출기에서 수수료를 내고 현금을 찾을 필요가 없다.
더람에 있는 한국식품점 가게 주인은 리펀드처럼 캐쉬백도 악용하는 이들도 있다고 소개했다. 근처에 사는 흑인이나 히스패닉들이 급전이 필요해 딱하게 부탁하면 물건을 사지 않았는데도 캐쉬백을 해 주곤 했는데, 나중에는 너도나도 해 달라고 해서 지금은 아예 서비스를 중단했다는 것.
캐쉬백을 이용할 때 조심할 게 있다. 고객이 찾는 금액을 점원이 세서 건네주기 때문에 셈 과정에서 지폐가 한 두장 빠질 수 있으니 그 자리에서 반드시 확인해 봐야 한다는 점이다. 셈이 느린 점원을 만나면 특히 그렇다. 한 번은 100달러를 캐쉬백하는데 흑인 남자 점원이 10달러짜리가 몇 장 부족하다고 해서 1달러 지폐도 괜찮다고 했더니, 속터질 정도로 몇차례 셈을 반복하더니-물론 세는 걸 모두 지켜봤다-결국 집에 와서 보니 10달러짜리 한 장이 부족했다. 실수보다는 고의에 가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너니까 얘긴데, 선거 푯말에 내 얼굴 사진을 집어넣을 생각이야. 어때? 그러면 유권자들이 내가 이상하게 생긴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겠지?” 지난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채플힐 Chapel Hill 시장 선거에 출마한 친구 케빈 울프 Kevin Wolff가 밝힌 선거운동 비책이었다. 뭔가 거창한 전략을 소개할 줄 알았는데...... 시장 선거에 출마한 이유도 한국에서 듣던 정치인들의 그 것과 달랐다. “지금이라도 누군가 시장 후보로 나선다면 난 사퇴할 생각이다. 시민들에게 대안을 주기 위해 출마했기 때문이다. 단독 후보가 나서 4선에 성공한다면 독재나 다름없어.” “깨끗한 정치를 펼치겠다”, “머슴처럼 유권자를 위해 일하겠다”, “정치를 개혁하겠다” 등등의 그 것처럼 거창하지는 않지만, 그 친구가 출마한 이유는 뚜렷하고 분명하다. 그는 정치라고는 해본 경험이 없다. GM에서 13년간 엔지니어링과 회계, 관리 업무를 하다가 변호사로 전직해 특허전문으로 활동해 온 그이다. 그렇다고 채플힐 지역기반이 탄탄한 것도 아니다. 몇 년전 버지니아주에서 이사해 왔기 때문이다. 2005년 출마했을 때에도 같은 이름을 쓰는 현 시장 케빈 포이 Kevin Foy에게 4289표(77.78%) 대 1178표(21.36%)의 압도적인 표차로 낙선했다. 조용한 선거, 소박한 선거운동
지난해 친구 케빈의 선거운동을 도와주면서 미국 지방선거 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소도시 시장 선거라서 그런지-그렇더라도 채플힐이 속한 오렌지 카운티 내 세 도시 시장과 커미셔너, 교육위원회를 뽑는 선거였다-분위기가 소란스럽지 않고 혼탁한 모습도 없었다. 채플힐에서 선거가 임박했음을 알려주는 건 시내 주요 도로변에 세워진 작은 후보 캠페인 푯말이 고작이다. 전지 반장 크기의 푯말에는 후보자 이름과 후보가 출마한 직책 정도가 적혀 있을 뿐이다. 지역신문인 채플힐뉴스에 가끔 후보들에 관한 소식이 실리기는 하나 주목을 끌 만한 크기로 소개되지는 않는다. 케빈의 선거운동을 보면 시장 선거운동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주요 도로 주변에 푯말을 세우고 시내 중심가에 서서 또는 집집을 돌아다니며 A4 반쪽짜리 홍보물을 나눠주거나 지지를 호소하는 우편물을 보내는 게 고작이었다. 특히 후보자는 미리 선거관리위원회에 선거비용으로 3000달러를 넘길지, 아닐지 신고하는데-3000달러를 넘으면 나중에 회계보고를 해야 한다-그는 3000달러 이하만 쓰겠다고 신고했다. 특허전문 변호사로서 버지니아주에 사무소까지 두고 있어 경제력도 상당히 있는 친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학교 총학생회 선거도 300만원으로는 어림도 없을 일이다. 유권자에게 보내는 편지 5600장을 접고 봉투에 넣어 스탬프를 찍고 우표를 붙이는 일도 그의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우리 식구 네 명이서 했다. 이 비용이 예상보다 많이 들어 3000달러 미만으로 신고한 걸 나중에 바꿔야 했다. 하루는 그와 함께 채플힐 팀버라인 Timberlyne 지역을 한나절 돌아다녔다. 유권자들을 만나 홍보물을 나눠주면서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내게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받아온 유권자 등록명부를 한 부 건네줬다. 거기에는 유권자 이름과 주소, 소속당, 이전 선거 투표 여부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그날 케빈과 난 200가구 이상을 돌아다닌 것 같다. 투표일이 임박하자 그는 조만간 유권자들에게 선보일 새로운 게 있다고 했다. 나름대로 신선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던지 “Between you and me"라며 잔뜩 뜸을 들인 게 바로 앞에서 말한 얼굴사진이 들어간 푯말이었다. 우리나라 선거벽보나 공보물에는 오른손을 펴서 내밀거나 주먹을 불끈 쥐거나 두 손을 삼각형으로 모은 그런 사진을 집어넣는 게 상식인데 아직까지 미국에서는 ‘Elect Kevin Wolff MAYOR’ 정도의 글귀만 써넣고 있다.
미국 언론의 정파성은 익히 알려진 바이다. 케빈도 언론의 정파성에 대한 불만을 늘어 놓았다. 채플힐뉴스는 시의 지원을 받는 신문인데, 자신에 대해서는 악의적인 기사만 내보내면서 노골적으로 현직 시장 편을 들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채플힐뉴스를 읽어보면 실제로 그랬다. 신문은 후보들을 소개하는 글에서 현직 시장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써놓고서는 도전자에 대해서는 ‘질문을 보냈으나 답변을 해 오지 않았다’고만 소개해 놓는다. 그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자신에게 질문을 보내오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각 후보의 선거비용에 대한 기사에서는 케빈의 캠페인 푯말을 노스캐롤라이나가 아닌 버지니아주에서 제작해 오면서 얼마를 들였다는 식으로 적시해서 케빈이 토박이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식으로 현직 시장 편을 들었다. 케빈의 노력에도, 그리고 나의 작은 도움에도 11월6일 실시된 선거에서 그는 2005년에 이어 다시 낙선했다. 케빈 울프 1803표(29.20%) 대 현직 시장인 케빈 포이 4333(70.17%). 투표율이 15% 안팎으로 매우 낮다 보니 고정표가 견고한 기성 정치인이 유리할 수 밖에 선거전이었다. 하지만 그는 선거과정에서 자기 얘기를 충분하게 했다면서 낙담하지 않았다. 지난 선거에 비해 득표율이 8%포인트 가량 올라 30% 가까이로 끌어올린 자체에 만족했다.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경험
미국 사회에서 우리같은 외국인은 항상 객체일 수 밖에 없다. 누군가 말이라도 걸어오면 언어에 대한 부담감에 움츠려들기 십상이다. 하지만 케빈의 선거운동을 도와주면서 주체로서 색다른 느낌을 가졌다. 영어실력을 떠나 친구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려면 어떻게든 유권자에게 다가가야 했기 때문이다. "Kevin Wholff for Mayor"라면서 다가서는 내게 보인 미국인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본체만체 지나가거나 슬쩍 피해가는 사람, 정당 선거가 아닌 시장 선거인데도 소속 정당을 물어보는 사람, 내 친구를 찍겠다는 사람, 자기는 민주당원인데 공화당원은 찍지 않겠다는 사람 등등. 투표권을 가진 한 교포 미국인 부부도 만났다. 미국의 지방 선거문화를 살짝 맛보면서 외국에서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활동해 보는 좋은 기회였다.
미국에 와서 사귄 케빈 Kevin Wolff네는 가족처럼 가깝다. 그는 나보다 8살이나 많다. 하지만 둘 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비슷한 나이의 두 아들을 둬서인지 만날 기회가 많았다. 우리 큰 아이가 4학년, 둘째가 2학년이고 케빈네 큰 아이 해리슨이 3학년, 둘째 벤이 2학년이다. 케빈을 알고 지내게 된 것도 지난해 가을 우리 큰 아이와 해리슨, 우리 둘째 아이와 벤이 레인보우축구단 같은 팀에서 운동한 게 계기가 됐다.
케빈은 지난해 10월 우리 아이들이 미국의 할로윈데이를 경험하도록 자기네 아이들과 함께 동네를 돌아다니자고 제안했다. 그 때 아이들은 땀에 흠뻑 젖도록 동네를 돌아다닌 끝에 셀 수 없을 정도의 캔디와 초콜릿을 얻었다. 나도 얻은 게 있다. '취급하다', '다루다' 정도로만 알던 'Treat' 단어의 다른 쓰임새다. 'Trick or Treat'(해꼬지 당할래? 아니면 한턱 낼래?)이라는 말을 통해 Treat이 '대접하다'는 뜻으로도 쓰인다는 걸 알았다.
지난해 11월6일 채플힐 시장 선거에 출마한 케빈의 선거운동을 도운 건 미국 사회에서 이방인인 내게 색다른 경험이었다. 사실 미국 사회에서 우리 같은 외국인은 문화적, 언어적 문제로 언제나 수동적, 피동적일 수 밖에 없다. 길을 걸어가다 누가 말이라도 건네오면 움츠려들기 마련이다. 주체라기 보다 객체이다. 하지만 채플힐 중심가인 프랭클린스트리트에 서서, 팀버라인 지역의 주택가를 돌아다니면서 케빈의 선거홍보물을 나눠주는 나와 현지인의 상황은 역전돼 었다. 내가 주체이고 그들이 객체이다. "Kevin for mayor"라고 접근하는 나에게 보인 현지인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그냥 무심히 피해가는 사람, "소속 정당이 어디나"고 묻는 사람, "케빈을 잘 아는데 그를 찍을 것이다"는 사람...... 케빈이 현직 시장인 또 다른 케빈(Kevin Foy)에게 1664표(27%) 대 4,431(72%)로 참패했지만 미국의 선거문화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시장 선거 출마자들이 선거운동에 몇 백만원만 쓰는 점도 한국적 선거문화에서 보면 신기했다. 선거우편물을 발송하기 위해 두 아들까지 동원해 전단지를 접어 봉투에 넣고 풀칠하고 우편 소인을 찍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한국이었다면 애들한테 그런 일을 시켰을까).
케빈 가족과의 만남은 선거문화 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와 미국인의 모습을 가까이 경험하는 기회였다. 문화적 차이도 많이 느낀다. 처음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할지, 신고 들어가도 되는 건지 몰라 망설인 적 있다. 추수감사절 저녁식사에 초대받아 갔을 때에는 어떤 식으로 식사가 진행되는지 몰라 긴장하기도 했다.
케빈과 만나면서 미국 사회에 '더치페이' Dutch Pay와 '주고받기식' give and take 문화만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선입견이었음을 알았다. 지난해 겨울 우리 가족과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을 때 나로서는 당연히 우리 가족 요금은 내가 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8명 영화 관람료 전부를 자기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영화를 보고 시내 박물관을 갔을 때 입장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Today is my treat"이었다. 할로윈데이 때 수없이 들은 그 'treat'이다.
얼마 전 랄리에 있는 프랭키 Frankies 라는 놀이시설에 갔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이 게임을 할 수 있도록 25달러씩 카드에 넣어주고 저녁식사도 우리가 나설 여유도 주지 않고 자기네가 결제해 버리는 것이었다. 굳이 '주고받기'로 해석해 보려고 한다면 지난해 선거운동 자원봉사를 해 주고 그리고 4월에는 부인 메리가 카운티 커미셔너에 출마했는데 그 때에도 잠시 도와준 것에 대한 '한턱내기' Treat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것보다는, 친구끼리는 꼭 더치페이나 기브앤테이크 만을 고집하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물론 나의 경험은 아주 개인적인 것일 뿐이어서 미국 사회와 미국인의 보편적인 모습을 보았다고 확장해 결론지을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어느 사회이든지 직접 경험하고 들여다 보지 않고 영화나 글을 통해서만 쌓인 상식으로 재단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은 유효한 것 같다.
이번에도 케빈네와 미국 독립기념일 연휴를 맞아 버지니아주 윌리암스버그로 2박3일 휴가를 가기로 했는데 정산을 어떻게 하는 게 예의일지 벌써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