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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더치페이 문화만 있는건 아니었다. [기자 단상]

 미국에 와서 사귄 케빈 Kevin Wolff네는 가족처럼 가깝다. 그는 나보다 8살이나 많다. 하지만 둘 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비슷한 나이의 두 아들을 둬서인지 만날 기회가 많았다. 우리 큰 아이가 4학년, 둘째가 2학년이고 케빈네 큰 아이 해리슨이 3학년, 둘째 벤이 2학년이다.
 케빈을 알고 지내게 된 것도 지난해 가을 우리 큰 아이와 해리슨, 우리 둘째 아이와 벤이 레인보우축구단 같은 팀에서 운동한 게 계기가 됐다.

 케빈은 지난해 10월 우리 아이들이 미국의 할로윈데이를 경험하도록 자기네 아이들과 함께 동네를 돌아다니자고 제안했다. 그 때 아이들은 땀에 흠뻑 젖도록 동네를 돌아다닌 끝에 셀 수 없을 정도의 캔디와 초콜릿을 얻었다.
 나도 얻은 게 있다. '취급하다', '다루다' 정도로만 알던 'Treat' 단어의 다른 쓰임새다. 'Trick or Treat'(해꼬지 당할래? 아니면 한턱 낼래?)이라는 말을 통해 Treat이 '대접하다'는 뜻으로도 쓰인다는 걸 알았다.

 지난해 11월6일 채플힐 시장 선거에 출마한 케빈의 선거운동을 도운 건 미국 사회에서 이방인인 내게 색다른 경험이었다.
 사실 미국 사회에서 우리 같은 외국인은 문화적, 언어적 문제로 언제나 수동적, 피동적일 수 밖에 없다. 길을 걸어가다 누가 말이라도 건네오면 움츠려들기 마련이다. 주체라기 보다 객체이다.
 하지만 채플힐 중심가인 프랭클린스트리트에 서서, 팀버라인 지역의 주택가를 돌아다니면서 케빈의 선거홍보물을 나눠주는 나와 현지인의 상황은 역전돼 었다. 내가 주체이고 그들이 객체이다.
 "Kevin for mayor"라고 접근하는 나에게 보인 현지인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그냥 무심히 피해가는 사람, "소속 정당이 어디나"고 묻는 사람, "케빈을 잘 아는데 그를 찍을 것이다"는 사람......
 케빈이 현직 시장인 또 다른 케빈(Kevin Foy)에게 1664표(27%) 대 4,431(72%)로 참패했지만 미국의 선거문화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시장 선거 출마자들이 선거운동에 몇 백만원만 쓰는 점도 한국적 선거문화에서 보면 신기했다. 선거우편물을 발송하기 위해 두 아들까지 동원해 전단지를 접어 봉투에 넣고 풀칠하고 우편 소인을 찍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한국이었다면 애들한테 그런 일을 시켰을까).

 케빈 가족과의 만남은 선거문화 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와 미국인의 모습을 가까이 경험하는 기회였다. 문화적 차이도 많이 느낀다. 처음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할지, 신고 들어가도 되는 건지 몰라 망설인 적 있다. 추수감사절 저녁식사에 초대받아 갔을 때에는 어떤 식으로 식사가 진행되는지 몰라 긴장하기도 했다.

 케빈과 만나면서 미국 사회에 '더치페이' Dutch Pay와 '주고받기식' give and take 문화만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선입견이었음을 알았다.
 지난해 겨울 우리 가족과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을 때 나로서는 당연히 우리 가족 요금은 내가 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8명 영화 관람료 전부를 자기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영화를 보고 시내 박물관을 갔을 때 입장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Today is my treat"이었다. 할로윈데이 때 수없이 들은 그 'treat'이다.

 얼마 전 랄리에 있는 프랭키 Frankies 라는 놀이시설에 갔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이 게임을 할 수 있도록 25달러씩 카드에 넣어주고 저녁식사도 우리가 나설 여유도 주지 않고 자기네가 결제해 버리는 것이었다.
 굳이 '주고받기'로 해석해 보려고 한다면 지난해 선거운동 자원봉사를 해 주고 그리고 4월에는 부인 메리가 카운티 커미셔너에 출마했는데 그 때에도 잠시 도와준 것에 대한 '한턱내기' Treat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것보다는, 친구끼리는 꼭 더치페이나 기브앤테이크 만을 고집하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물론 나의 경험은 아주 개인적인 것일 뿐이어서 미국 사회와 미국인의 보편적인 모습을 보았다고 확장해 결론지을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어느 사회이든지 직접 경험하고 들여다 보지 않고 영화나 글을 통해서만 쌓인 상식으로 재단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은 유효한 것 같다.
 
 이번에도 케빈네와 미국 독립기념일 연휴를 맞아 버지니아주 윌리암스버그로 2박3일 휴가를 가기로 했는데 정산을 어떻게 하는 게 예의일지 벌써 걱정이다.

posted at 2008/07/02 10:41:00 댓글(0) l 트랙백(0) l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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