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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페스토는 중앙일보만의 성과? [기본카테고리]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매니페스토(국민에 대한 계약으로서의 정책공약)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인기 투표식으로 이뤄지는 우리 선거 풍토를 정책 대결로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인물론에 치우치는 듯한 서울시장 선거도 정책론으로 방향이 바뀌길 기대해 본다.

한편으로는 최근 벌어지는 매니페스토 운동을 보면서 착잡함도 느낀다. 마치 매니페스토 운동이 중앙일보가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한 제도인 것처럼 포장되는 데 대한 착잡함이다. 그러면서도 중앙일보가 참 신문을 잘 만든다는 생각도 한다.

 
세계일보는 지난해 4월 4.30 재보선을 앞두고 정책 선거가 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이미 매니페스토 운동을 벌였다. 4월14일자 1면,2면,3면, 4월15일자 1면,2면,3면에 보도된 [탐사보도-열린우리,한나라 총선공약 점검] 시리즈가 그것이다.

세계일보는 이 기사를 통해 국내에 생소한 매니페스토라는 용어를 소개하고 매니페스토의 요건으로 SMART(S:구체성, M:측정가능성,A:달성 가능성,R:적절성, T:시간계획성)를 제시했다.
 

당시 세계일보 보도가 나간 뒤 열린우리당 원혜영 정책위의장은 각 정책조정위의 전문위원에게 세계일보 보도를 첨부해서 총선 정책공약의 이행실태를 긴급 점검하도록 하고 공식 회의에서 이행 실태를 한국 정당사상 처음으로 공개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이 2002년부터 정책공약 이행을 점검, 2003년 주요 정당이 매니페스토를 하게 만든 것처럼 세계일보 보도가 한국 정치보도사상 정책선거로 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격려도 많았다.

실제로 선관위도 정책선거와 정책정당 육성을 위한 제도개선에 적극 나섰다. 중앙선관위 박기수 사무총장은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자청, 후보 공보물를 정책집으로 바꿔 배포하는 방안과 선관위 홈페이지의 정책공약 비교사이트에 공약게재를 의무화하는 방안, 그리고 평상시에도 정당간 정책토론회 활성화하는 방안 등 정책선거 활성화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대를 앞서 살다 빛을 보지 못한 인물이 사후 평가를 받는가 하면, 너무 시대정신(?)을 읽지 못하고 시장에 너무 일찍 출시했다가 손해만 보는 것처럼, 세계일보 보도는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우리 사회 상황, 정치 현실에서 너무 앞서 나간 보도였을까?

기자들의 모임인 한국기자협회도 세계일보 기사를 홀대했다. 지난해 5월 세계일보가 기자협회에 신청한 이달의 기자상 선정에서 세계일보 기사는 미역국을 먹었다. '매니페스토'니 'SMART'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터니 당연한 일이었을까. 네이버로 매니페스토를 검색해 봐도 세계일보 보도 이전에 이를 본격적으로 거론한 기사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런데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중앙일보가 매니페스토를 상품(?)으로 들고 나왔다.

호응도 대단하다. 정치권에서 매니페스토 운동에 호응하고 나서고 시민단체들도 기다렸다는듯 세미나다 뭐다 여느라 분주하다. 경쟁지들도 중앙일보 이슈를 따라가는 데 대해 마뜩찮아 하면서도 점점 매니페스토가 뭔지, 스마트가 뭔지를 소개하면서 대세에 동참하는 분위기다.

그리고 기자협회는 지난 2월 중앙일보의 기사를 185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부문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우직하게 기사만 쓸 줄 알지, 세련되지 못해서 상품으로 만들어 내지 못한 결과인가?


posted at 2006/04/06 14:09:00 댓글(3) l 트랙백(0) l 스크랩
두 아들이 사는 법 [기본카테고리]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5살이던 아들 녀석이 받은 감동이 무척 컸던지 축구광이 됐습니다.
대~~한 민 국을 그렇게 외치더니 머리 속엔 온통 축구 생각 뿐인가봅니다.
 
집에서 둥글다는 것은 죄다 차고 다닙니다.
그래서 차범근축구교실을 보내고 있습니다.
제법 축구선수다운 면모를 보이지 않나요..
차두리선수와 사진 찍을 기회도 갖고................
 
 
큰 아들은 곧잘 기자 아빠 흉내도 냅니다.
녀석에게 기자는 웃도리 주머니에 펜을 꽂고 신분증을 목에 매고 다니는 모습으로 비쳐졌나봅니다.
기자놀이를 하겠다면서 무더운 한 여름날 엄마한테 주머니 달린 옷을 달라고 졸라 기자 흉내를 냈다더군요.
 

둘째 아들놈은 축구에 영 관심이 없습니다. 축구 유니폼을 입혀놓아도 자세가 안나옵니다.  형은 열심히 뒤에서 축구하고 있는데 이 녀석은 음료수에 더 관심있습니다.
 
 
하지만 아들만 둘인 엄마 아빠에게 이 녀석은 딸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자태를 뽐내보기도 하고...............

 
 
원숭이 흉내를 내면서 가족을 즐겁게 만들어 준답니다.
 


posted at 2005/07/15 17:35:00 댓글(6) l 트랙백(0) l 스크랩
욕심버려 큰걸이루는 김승규 장관 [기본카테고리]
 

 “왜 건강문제를 숨기시지 않으셨습니까?. 서울지검장으로 가시고 난 후에 수술받으셔도 되지 않으셨습니까?”
 “서울지검장으로 가서 수술받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어.”

 지난 2000년 7월10일 검사장급 인사로 수원지검장에서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김승규 현 법무부장관(국정원장 내정자)은 그런 검사였습니다. 정치적인 판단이라고는 눈꼽만큼도 할 줄 모르고, 인사철이면 검찰내 정치적인 역학관계를 기자를 통해서야 전해 듣는 그런 검사였죠. 별로 티나지 않는 자리만 돌아다닌 경력에 아는 기자도 별로 없으면서.

 당시 국민의 정부 집권 전반기에서 후반기로 꺾어지던 시기였으니 지금의 참여정부와 시기적으로 비슷했습니다.
 이번 국정원장 내정 배경으로 언론에서는 ‘호남 민심달래기’ 등의 분석을 내놓고 있는데 제가 보기에는 ‘무색무취한 법조인으로서 국정원 개혁을 계속 이끌 수 있는 인물’이라는 분석이 가장 정확한 것 같습니다. 호남 민심달래기는 부수적인 효과일 뿐일 겁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서울지검장은 검사라면 누구나 올라보고 싶어하는 자리입니다. 대검찰청 중수부장과 공안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지검장은 이른바 ‘검사장 빅4’ 자리로 불렸는데 중수부장이나 공안부장을 마치고, 검찰국장을 마치고 가는 자리가 서울지검장이었습니다.  고검장 승진을 0순위로 예약하는 자리라서 역대 서울지검장은 99%가 승진했습니다.
 그런 자리를 김승규 수원지검장은 포기했습니다.

 이 얘길 들으면 기자를 아는 김각영 전 검찰총장이 언짢아 하실지 모르겠지만, 당시 김승규 검사장이 건강상 이유만 아니었다면 김승규 검사장이 서울지검장이 됐을 겁니다. 두 분 다 따뜻한 양지 보직보다 빛나지 않은 자리에서 묵묵히 검찰을 지키신 훌륭한 분들인데, 당시 국민의 정부 출범 집권 후반기로 넘어가는 상황에서 검찰 사정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기에 정권 측으로서는 호남 출신 검사들이 한명이라도 아쉬운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TK(대구-경북)와 K1(경기고) 출신이 검찰 인사를 서로 돌아가면서 좌지우지하던 시절 호남 출신은 ‘지역안배’ 차원에서 몇 명이 어렵게 검찰 상층부까지 살아남아 있어 희소가치는 그만큼 컸죠.

  당시 김 검사장은 건강진단에서 배속 혹이 발견됐는데 인사를 기다렸다가 간단히 떼내기만 해도 될 것을,  스스로 몸상태가 좋지 않다고 알려 서울지검장 자리를 고사했습니다. 서울지검장 자리가 눈앞인데 굳이 불리하게 작용할 병을 알리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정치적인 계산도 못하고 기자를 통해서나 검찰내 인사 얘기를 전해듣던 쑥맥같은 검사였기에 가능했던 것 아닌가 싶네요. 정치적 티끌이 끼지 않은 그런 검사말입니다.
 
 1999년 2월 당시 법조계는 이른바 대전법조비리사건으로 온통 떠들썩했습니다. 대전지역 이모 변호사가 판사와 검사들에게 술대접하고 사건을 싹쓸이 수임한다는 것이었죠. 당시 대전MBC 보도로 사건이 불거진 뒤 대검찰청 감찰부가 감찰에 나섰습니다. 당시 감찰부장이 바로 김승규 국정원장 내정자였습니다. 

 감찰과정에서 당초 보도내용과 달리 검사들이 사건을 소개하고 돈을 받거나 향응을 제공받는 사례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김 감찰부장은 공직기강 차원에서 법조계의 오랜 관행이라지만 전별금을 받거나 함께 술을 마신 것만으로로 사표를 받아낼 정도로 추상같은 징계를 단행했죠. 그 유명한 심재륜 고검장의 항명 파동이 일어난 것도 어찌보면 이같은 추상같은 징계가 정치적으로 차기 검찰총장을 둘러싼-심 고검장은 당시 유력한 검찰총장 후보군에 속해 있었죠-음모로 해석되면서 일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당시 하루는 감찰부장실에 들렀습니다. 김 감찰부장이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고개가 숙여지는 분이 있어 마음이 괴롭다”며 눈물을 비치시더군요.
 이모 변호사로부터 전별금조로 받은 100만원을 도서상품권으로 바꿔 여직원과 청사방호원 등에게 나눠준 것으로 드러난 당시 법무부 윤동민 보호국장을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국민적 공분이 들끓던 상황이라서 그런 정황을 참작해 줄만한 여건이 아니었습니다. 털면 털수록 먼지가 나는 대신 고개가 숙여지는 동료 검사에게서 사표를 받아야 하는 고민을 그렇게 기자에게 드러낸 것입니다.

 당시 사표 요구에 “사표를 내야할 만큼 비리를 저질렀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조직을 위해 물러나겠다”면서 “벚꽃처럼 사라지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검찰은 떠난 윤동민 보호국장은 이후 김&장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최근 김우중 전 대우회장의 변호인단을 이끌면서 화제의 인물로 등장하더군요.
 
 김승규 법무장관의 부인 김미자씨도 공직자 아내로서 존경할 분입니다.
 2000년 1월은 옷로비사건으로 떠들썩하던 시절입니다. 법무장관, 행자부 장관 등 고관대작의 부인들이 떼지어 강남을 몰려다니면서 수 백만원짜리 모피를 걸쳐보고 입어보고 하면서 빚어낸 사건이죠. 

 당시 김 검사장의 부인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던 제가 김 검사장 방을 찾아갔습니다. 사회복지시설인 용인 샘물의 집 등을 찾아 죽음의 문턱에 선 어려운 노인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편안히 모시게 위해 ‘호스피스’ 자격증까지 따서 봉사하는 김 검사장 부인의 이야기를 기사로 쓰기 위해 도움을 부탁하기 위해서였죠.

“검사장님. 사모님 얘기를 기사로 쓰고 싶은데 도와주시죠”
“집사람이 안할라고 할텐데.”
“사회에 봉사활동이 널리 퍼지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모님같은 분의 얘기를 소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설득좀 해주시죠.”
“한번 얘기는 해보지”
며칠 뒤 찾았을 때 그러더군요. “절대 쓰지 말아달라고 하더라”
posted at 2005/06/16 10:42:00 댓글(3) l 트랙백(0) l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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