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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비전향장기수 리인모 사망-인민장으로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는 누구인가?

 

논설고문. 수필가 서호련

비전향장기수 리인모(89)씨의 생은 한민족이 간직한 비극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1917년 10월 함경남도 풍산군에서 화전민의 유복자로 태어난 리씨는 일본 동경공업고등학교에 다니다 중퇴했을 정도의 인텔리였지만 학업 중단 후에는 고향에서 공사장 인부로 일하면서 해방을 맞았고, 해방 후에는 노동당에 입당하면서 본격적으로 공산주의 활동에 나섰다.6.25전쟁 중 리 씨의 행적에 대해서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북쪽에서는 인민군 종군기자로 전선취재를 담당했었다고 주장한 반면 리 씨의 검거 당시 재판기록을 보면 경남도내 인민군 점령지역에서 의용군을 강제 모집해 전선에 투입하고 9.28 서울수복 후에는 지리산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한 것으로 되어있다.

경남도당 선전부장 대리로 일하다가 그 역시1952년 대성골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빨치산 토벌대에 의해 포로가 되어 징역 7년을 선고받고 59년 만기 출소했지만 61년 간첩혐의로 다시 구속돼 15년형을 선고받았다. 76년 만기가 지났지만 전향서를 쓰지 않아 88년 10월까지 복역했다. 34년간 옥살이를 한 것이다. 출옥 후 경남 김해에서 농사를 짓는 김원상씨의 집에서 지내왔다. 그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91년 월간 ‘말’지를 통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면서 부터다. 그 뒤 서울에서 열린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을 취재하러 온 북한 중앙방송 기자가 그의 부인 김순임씨(80)와 외동딸 현옥씨(59) 등 북녘 가족의 답장과 사진을 남측 취재진에 전해주면서 송환문제가 이슈화되자 김영삼 정부에서 93년 그를 전격 송환하게 된다. 휠체어에 실려 판문점을 넘어가던 그의 모습은 TV로 중계되었고, 북한 TV에서도 ‘통일영웅’으로 연일 보도 했다. 북에서 그의 영웅실적은 소설과 영화, 엽서와 우표에 이르기까지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고, 그의 모교인 파발인민학교(양강도 김형직군)는 ‘이인모 인민학교’가 되었다.

  16일(2007.6) 사망한 비전향장기수 리인모(89)씨의 생은 한민족이 간직한 비극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리인모씨 문제가 불거진 것은 1991년 국내 모 월간지에 가족을 그리워 하는 심정을 담은 글을 실으면서부터이며 제5차 고위급회담 때 서울에 온 북측 기자가 리씨 부인의 답장을 남측 보도진에게 전달하면서 가족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정부는 1992년 7월 7.7선언 4주년을 맞아 남북 간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해 이산가족의 희망지역 정착을 제의했고 리씨는 그 대상으로 포함됐다. 이어 1993년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남북관계를 염두에 둔 ’인도적 차원’의 전격적인 결정으로 리씨는 북한으로 송환될 수 있었다. 당시 우리 정부는 리씨가 북한으로 송환되기는 하지만 법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점을 감안해 ’장기방북’이라는 형식을 취했으며 리씨가 소지하고 있던 주민등록증을 회수하기도 했다.리씨는 북송된 후 북한 당국에 의해 ’의지와 신념의 화신’, ’통일의 영웅’ 등으로 찬양되면서 대대적인 환영과 함께 극진한 대접을 받아왔다. 고(故) 김일성 주석은 리씨가 송환된 지 한 달이 채 안된 4월15일 자신의 생일날 직접 리씨를 병문안하고 노동당 당원증을 수여했다.그를 소재로 한 우편엽서와 우표가 발행됐고 고위간부들이 사용한다는 봉화진료소에서 특별한 진료를 받아오던 리 씨는 북한에서는 이례적으로 신병 치료차 미국에 다녀왔으며 ’김일성훈장’, ’영웅칭호’와 ’국기훈장 1급’을 받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각종 문화예술작품의 소재로 떠올라 그를 다룬 영화 ’민족과 운명’(제11∼13부)이 제작됐고 리씨가 썼다는 ’당신만 있으면 우리는 이긴다’, ’신념과 의지의 찬가’ 등의 시에 곡이 붙여져 가요로 보급됐다.또 그의 모교인 파발인민학교(현재 량강도 김형직군 소재)를 ’리인모인민학교’로 개명하는 조치가 취해졌고 북한은 그를 ’혁명가의 표본’으로 내세워 전체 북한 주민들이 따라 배우도록 정책화하기도 했다. 그는 평양시 보통강구역 서장동에 있는 고위간부들에게 제공되는 2층짜리 단독주택에서 부인인 김순임씨와 살아왔으며 슬하에 외동딸 리현옥씨 부부, 외손자와 손녀가 각각 1명씩인 것으로 알려졌다. 딸 리현옥씨는 평양의 한 중학교 교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2004년 인천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발표 4돌 기념 우리민족대회’에 북측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하기도 했다.한편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고 그해 9월2일 남한 당국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비전향장기수 63명을 판문점을 통해 북한에 송환하면서 리 씨는 남쪽에서 오랜 기간 옥살이를 해온 동료와 재회할 수 있었다. (입력 : 2007.06.17 09:34)

북측 발표 "리인모열사-.18일 인민장으로 치러

1993년 3월 판문점을 거쳐 북송된 비전향장기수 리인모(89)씨가 16일( 2007.6.16) 사망했다. 북한방송에 따르면 “노동당 중앙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내각은 17일 공동으로 리씨의 부고를 발표하고 전 조선인민군 종군기자이고 비전향장기수인 리인모 동지가 남조선의 감옥에서 당한 고문의 후과(후유증)로 16일 7시에 89살을 일기로 애석하게 서거했다고 전했다.

부고는 이어 "리인모 동지는 조국의 통일과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쳐 견결히 싸운 신념과 의지의 화신이고 불굴의 통일애국투사"라며 "리인모 동지는 비록 서거했으나 그가 지녔던 고결한 혁명정신과 당과 혁명, 조국과 민족 앞에 세운 그의 공적은 길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리씨의 시신은 인민문화궁전에 안치됐으며 17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조문객을 받은 뒤 18일 오전 8시에 발인할 예정이다.

북한은 리씨의 장례를 '인민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하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위원장,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부위원장으로 하고 김영일 내각총리,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 고위 당.정간부 57명이 참여하는 장의위원회를 구성했다. 특히 장의위원회에는 6.15공동선언 7주년 기념 민족통일대축전 북측 위원장인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이 포함돼 있어 이번 행사에 참가하고 있는 남측 대표단의 조문 여부도 주목되었다.

한편 리인모씨는 북한군 문화부 소속 종군기자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체포돼 34년간 복역한 후 1988년 출소했으며 5년 후 '장기방북' 형식으로 북한으로 송환됐다. 북한은 북송 당시 건강이 좋지 않았던 리씨를 위해 고위간부들이 사용하는 전용병원인 봉화진료소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으며 1996년 5월에는 미국을 방문해 진료를 받기도 했다.

리씨의 가족으로는 부인 김순임씨와 외동딸 리현옥씨 부부, 외손자와 손녀가 각각 1명씩인 것으로 알려졌다. 딸 리현옥씨는 평양의 한 중학교 교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2004년 인천에서 열린 '6ㆍ15 공동선언 발표 4돌 기념 우리민족대회'에 북측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장용훈 기자 jyh@yna.co.kr 서울=연합뉴스)

참고-동아일보 2013.1.29 사회면/ 18년 전 이인모씨에게 포섭돼 밀입북-이적행위한 50대구속;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이상호)는 18년 전 밀입북해서 북한 체제에 동조한 혐의(국가보안법상 잠입, 탈출, 회합, 통신, 찬양, 고무 등)를 받고 독일에 장기 체류했던 조영삼씨(54)를 최근 구속 기소했다고 27일 밝혔다.

조씨는 1993년 북송된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 씨로부터 1995년 2월에 초청엽서를 받고 독일과 중국을 거쳐 밀입북한 뒤 이적 행위 등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 씨는 비전향 장기수에 대한 월간지 기사를 본 뒤 그들을 돕기로 마음먹고 1991년 11월부터 빨치산 전력자가 운영하던 경남의 오리농장 일을 도왔다. 1992년 1월 농장 인근에 거주하던 이인모 씨를 처음만난 조 씨는 거동이 불편한 이 씨의 간병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조씨는 1995년 8월 11일부터 그해 9월 6일까지 북한에서 이 씨를 만나고 김일성 동상에 헌화한 뒤 금수산문화궁전에 있는 김일성 시신을 참배한 것으로 조사됐다. 연방제 통일과 국보법 폐지 등에 관한 결의문을 채택하고 기자회견을 하는 등 7회에 걸쳐 북한에 동조한 사실도 드러났다.

방북 뒤 조 씨는 1995년 9월 6일 독일로 가 지난해 말까지 장기 불법 체류했고 이로 인해 공소시효는 정지됐다. 독일 체류 중 망명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 씨는 검찰 조사에서 “한국에 있는 노부모를 만나고 독일에서 태어 난 아들을 한국에서 키우기 위해 귀국을 결심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에 따르면 현 정부 들어 검거된 간첩은 모두 35명으로 참여 정부 때(23명)보다 50% 이상 늘었다. 이중 탈북자 위장 간첩은 총 14명이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이인모,북에서는 통일영웅일련지 몰라도 아직도 북과는 적대채제이다. 한국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젊은세대들이 막연한 환상이나 충동에 이끌려 북한채제를 동경하거나 동조하여 사회를 불안케 하고 결과적으로 국가를 해롭게 하는 이적행위를 해서는아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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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이야기 | 2015/12/16 21:52 | DEL | REPLY

비전향장기수 이인모노인은 알다시피 시대의 피해자입니다~!!! 북한에서는 영웅대접을 받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그를 빨갱이 공작원으로밖에 취급안받을정도이니 말이 안나오죠~!!!! 더군다나 그가 생전에 살았던 평양시 보통강구역 서장동의 개인주택을 유투브 동영상으로 봤는데 내부는 그렇게 호화로운편도 아니었으며 집크기도 그렇게 큰편도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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