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정부의 세수원은 대충 스무 가지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1)땅세 (2)집세 (3)소금세 (4)관세 (5)인삼세 (6)금광세 (7)어류세 (8)모피세 (9)담배세 (10)통행세 (11)숲,벌목세 (12)조합세 (13)각종 면허세 (14)광업세 (15)인구세 (16)선박세 (17)소가죽세 (18)종이세 (19)저당세 등이었다고 합니다.
우선 지세, 즉 땅세는 조선 전역의 341개 행정구역이 관청에 관내의 모든 경작 가능한 땅과 구역이 표기된 지도를 갖고 있었습니다. 관청은 이 지도를 토대로 얼마나 많은 산출량이 나오는지를 가늠했고 법정 세율은 10%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정확한 세금 징수를 위해 각 경작지의 상태는 관청의 책에 엄격하게 기입됐고, 이를 기반으로 한 세율은 그 해 날씨가 좋던 나쁘던, 그 땅이 경작이 되고 있던 방치되고 있던 상관없이 적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산출량을 속여 세금을 포탈하려고 하거나 일을 하지 않고 땅을 놀리려는 백성들을 단속하기 위해 그런 듯 합니다만 좀 불합리 했던 것 같네요.
이렇게 땅에서 거둬들인 세금이 연간 800만원 정도였다고 합니다. 환전하면 미화 200만-300만 달러 정도.
집세는 서울과 서울의 서쪽, 남쪽 지방을 제외하고 모든 집이 60전 정도의 세금을 내야 했다고 합니다. 이 또한 집의 크기나 상태에 개의치 않은 고정액이었다고 하네요. 연간 총 세수는 50만원 정도. 서울이나 일부 지방이 면세였던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소금세는 실제 생산량에 따라 차등 부과됐습니다. 즉 종량세로 4%. 이는 곡물에 부과되는 10%에 비해 적은 것처럼 보입니다만 소금을 만들어내는 것은 매우 고단한 일인데다 여기에 쓰이는 도구도 비쌌다고 합니다. 그래서 연간 생산량에 비하면 연료값도 부담되는데다, 당시 소금은 오직 봄과 가을에만 상품화해 시장에 내다팔 수 있었기 때문에 4%도 매우 부담됐다고 합니다. 이렇게 거둬들인 세금은 총 9만원 정도.
조선 특산품인 인삼은 판매가의 20-25%를 세금으로 내고 나머지는 주인이 가졌습니다. 매년 수확량에 따라 정부 세수는 15만원에서 300만원 정도까지 다양.
모든 광물은 정부 소유였습다. 그리고 어떤 개인도, 아무리 자기 땅이라고 해도, 당시 농무부의 특별 허가 없이는 채광을 할 수 없었습니다. 허가를 얻어 광산을 연 뒤에는 전체 수익의 60% 정도(금광의 경우)를 세금으로 내야 했습니다. 이렇게 거둬들인 세수는 변동폭이 매우 컸는데 어느 해는 50만원까지 갔다가 어느 해는 10만원 정도까지 떨어졌다고 합니다.
금보다 싼 구리의 경우는 이익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정부는 30%만 세금으로 거뒀습니다. 값이 더 싼 철광의 경우 9%를 징수했구요.
어업은 국고의 상당부분을 차지했는데 세금은 잡힌 물고기의 양이 아니라 배에 부과됐다고 합니다. 선박세는 그래서 그물의 크기와 선원의 수 등에 따라 10등급으로 나뉘었고, 또 상대적으로 그 금액이 적었는데 조선은 해군을 보유하지 않아 유사시엔 어선을 전선으로 동원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조선에 수군이 있었는데?
모피는 조선은 중요한 수출품이었습니다. 그래서 모피는 정부의 독점 산업으로 여겨졌고, 때가 되면 관청의 허가를 얻은 사냥꾼들이 정기적으로 사냥을 나갔고 거기서 얻은 모든 수확물이 정부가 사갔다고 합니다. 한 번은 황해도 주민 하나가 잡은 호랑이 가죽을 직접 제물포까지 운반하고 외국인에게 팔다 걸려 한바탕 시끄러웠는데 이 사냥꾼은 외국인으로부터 정부 수매가의 6배를 받았다고 합니다.
무역을 하는 상인들은 입국하는 항구에서 세금을 내야 했는데 한 짐당 3전 정도였다고 합니다.
조선의 숲 역시 모두 왕가 소유였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허가 없이 나무를 자를 수 없었는데, 허가를 득해 나무를 잘라 팔 때는 세금으로 3% 정도를 내야 했습니다.
소가죽은 특별한 세수원이었고, 그 가죽은 3등급으로 메겨졌는데 등급에 따라 20, 16, 12전으로 세금을 거뒀다고 합니다.
서울의 여러 동업조합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정기적으로 세금을 내진 않았지만 대신 여러 형태의 정부행사를 후원해야 했습니다.
주류에는 세금이 없었습니다. 술을 사고 파는 데도 허가도 필요 없었습니다. 하지만 술을 만드는데 쓰는 엿기름에 약간의 세금이 붙었다고 합니다. 1전 정도.
정기적인 세금 외에 정부는 여러가지 산업에 대한 면허를 팔았습니다. 예를 들어 전당포 면허의 경우 큰 가게일 경우 한달에 2원 정도를 면허세로 내는 정도.
부동산 거래 수수료는 얼마였을까요? 요즘에 비하면 아주 싸고 관리가 잘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중개사들은 집을 거래할 때만 중개를 했습니다. 땅의 거래는 이해당사자끼리 직접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하네요.
중개사에게 주는 수수료는 집 구매가의 1%였습니다. 수수료는 또 파는 사람이 지불했고 집을 사는 사람은 거래가 진행되는 동안 중개사에게 일정량의 담배만 공급해 주면 됐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관습입니다.
현재 미국의 중개사들도 집을 사는 사람에게는 수수료를 한 푼도 받지 않습니다. 파는 사람이 파는 가격에서 5%를 주면 되고, 요새 부동산 경기가 아주 안좋다 보니 중개사가 5%를 받은 뒤 다시 집을 판 사람에게 일정액을 돌려주는 리베이트가 성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만 이상하게 부동산 수수료를 높게 내고 있는 것인가?
또한 조선시대에는 각 지역에 중개사 조합이 있어서 중개사가 집 가격으로 장난 치거나 중개료 웃돈을 받으면 바로 적발해 처벌했다고 합니다.
이밖에 정부는 아시는대로 세금 외에 각종 채소와 과일 등을 진상품을 받았습니다. 그 중 풍산 배, 남양 감, 수원 호두, 포은 대추. 광주 담배, 고창 순무 등이 최고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진상품의 양은 법으로 정해져 있지 않았지만 관습상 정해진 양과 질에 못미칠 경우 해당 지역의 관리에게 큰 일이 닥쳤습니다. 문책을 당한거지요.
이밖의 진상품으로는 미역, 말린 김, 진주, 갑오징어, 대구 등의 해산물과 면과 아마사, 모시, 부채, 병풍, 돗자리, 상, 장, 종이, 사람의 머리카락, 비단, 모피, 말, 모자, 두건, 붓, 먹, 초, 호랑이 가죽, 사슴 뿔, 산삼, 꿀, 생강, 도자기, 약초, 자수품, 악기, 산호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남대문 사진입니다. 지금은 불타버렸죠. 몇 번의 전쟁과 식민 침탈도 견뎌낸 남대문을 어이 없이 불태워 버린 우리들은 정말 선조와 후손들에게 큰 죄를 지은 듯 합니다.
남대문은 도성의 정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도성은 어떻게 건축되었을까요. 책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1392년 새 왕조가 창건됐다. 새 수도 주변에 성벽을 쌓으라면 명이 내려졌다. 19만명의 장정이 봄철 두 달 동안 작업을 했다. 9만명의 장정이 또한 가을 두 달 동안 작업을 해 놀랄만한 건축물이 완공됐다. 새 성벽은 20피트의 높이에 9마일 길이로 흉벽이 있었고, 8개의 거대한 문이 있었다."
사진을 보니 옛날에는 남대문 담벼락에 바로 가게가 붙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당시 그런 가게들은 두 종류가 있었다고 합니다. 문을 연 가게와 닫은 가게.
보통 가게, 문을 연 가게는 진열대 한칸 정도 크기였다고 합니다. 노점이었죠. 길 위에 좌판을 열고 손님은 상품을 직접 들고 살핀 뒤 살 수 있었습니다.
더 큰 가게는 보통 닫힌 가게로, 비단이나 면, 아마사, 모시, 신발 등을 팔았는데 이 가게는 상품을 내놓고 보여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신 손님이 가게에 들어가서 원하는 것을 찾으면 방안이나 창고에서 물건을 가지고 나와 보여주는 시스템이었죠. 외국인에던 이 책의 저자에겐 매우 이상한 풍경이었다고 합니다. 어떤 흉포한 상인은 한 목의 비단을 보여준 뒤 다른 것을 더 보여달라고 하니 "이게 맘에 안들면 당신에겐 맞는게 없다"면서 거절했다고 합니다.
서울의 상가는 간판도 없었다고 합니다. 대신 '삐끼'가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큰 가게의 점원들은 거리에 나와 지나가는 행인들을 붙잡고 가게로 들어와서 물건을 보라고 호객행위를 했다고 하네요.
광화문입니다. 지금 자리를 옮기는 공사 중이죠? 예전에는 해태상이 이렇게 앞으로 나와 있었나봅니다. 지금으로 치면 정부청사 쯤 되는 거리인가요?
패망한 왕조의 궁전. 인걸은 간데 없고 잡초만 무성합니다.
다양한 조선의 다리들
여기는 수원 화성이라고 합니다.
*이 포스트에 담긴 사진들은 모두 'The passing of Korea'(Hulbert, Homer B.)와 'The Tragedy of Korea'(F.A. McKenzie)라는 책에서 인용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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